이번에는 2003년에 체코 공화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자. 앞글(1회)의 표현과 어투는 물론 그 내용까지 이번 글에 반복된다는 점에 대해 미리 용서를 빈다. 앞글은 가상의 상황에 대한 것이고 이번 글은 실제 상황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두 상황의 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필자의 무딘 글 솜씨만 탓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미국인 로널드 라우더와 체코의 노바TV
1990년대 초에 공산주의 체제가 종식된 이후 새로이 나라 건설을 하느라 바쁜 체코 공화국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분야 모두에 대해 민영 방송국 설립을 허가하기로 결정하고, 한정된 수의 방송국 설립허가를 따기를 원하는 민간 지원자들을 모집한다. 체코인인 블라디미르 젤레즈니(Vladimir Zelezny)는 이 기회를 활용해 체코의 지식인들 몇 명과 함께 CET21이라는 작은 회사를 만들어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허가를 따낸다.
한편 미국의 화장품 재벌이자 공산주의 몰락 이후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중유럽 나라들의 방송과 매체 시장 진출을 노리고 '중유럽 미디어(Central European Media Enterprise: CME)'라는 회사를 설립한 미국인 로널드 라우더(Ronald Lauder)는 재빠르게 1993년에 젤레즈니와 접촉했다. 중유럽 전체로 도약할 발판을 체코 공화국에 마련할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라우더는 흥정에 성공했다. 그는 TV 방송국 설립에 필요한 자본을 댔고, 그 돈으로 젤레즈니는 방송 설립허가를 무형자산으로 갖고 있는 CET21에 대한 지분을 늘려 이 회사를 완전히 자기소유로 만든다. 그 대신 젤레즈니는 자신의 지분에서 나오는 의결권을 항상 라우더의 회사인 CME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사하기로 약조했다. 이리하여 체코 최초의 민영 영어 텔레비전 방송인 '노바TV(TV Nova)'가 생겨났다.
노바TV를 운영하는 회사인 CNTS(Ceska Nezavisia Televizni Spolecnost)의 지배소유구조는 약간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라우더의 CME가 압도적 지분(2000년 당시 93%)을 갖고 있었고, 그 나머지인 약간의 지분을 CET21과 체코의 한 은행이 나누어 갖고 있었다. CET21의 경우는 지분 중 60% 이상을 젤레즈니가 가지고 있었고 그는 명시적으로 CME에 절대적 충성을 서약한 바 있기에 사실상 이 회사 전체가 라우더와 그의 회사 CME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젤레즈니는 CNTS의 CEO가 된다.
그 뒤 노바TV의 행보는 극적인 성공과 극도의 비난이 엇갈리는 과정이었다. 노바TV는 체코 방송위원회 등의 규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미국식 오락프로와 섹스 및 폭력물 등으로 공격적인 편성을 하는가 하면 뉴스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사업상의 이익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CME가 미국 나스닥에 제출한 회사설명서(prospectus)에는 당연히 언론 편집의 독립성과 공정성 및 공공성을 존중한다고 씌어 있었지만, 이는 실제와 다른 것이었다.
그 결과 1996년이 되면 노바TV는 체코 인구의 70%가 즐겨 시청할 정도가 됐다. 광고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갖게 된 CNTS는 1996년 1~9월 중 노바TV 방송국 운영비용으로는 600만 달러를 지출하는 데 그쳤지만 세전 수익은 7000만 달러나 거두었다(체코 잡지 <튀덴(Tyden)> 1997년 1월 13일자).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CME는 우크라이나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방송시장에도 진출했고, 나스닥에서 CME의 주가는 한없이 치솟았다. 1996년에 <파이낸셜타임스>는 2000년경이 되면 약 30억 달러에 달하게 될 동유럽의 광고시장을 CME가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라우더와 그의 회사 CME의 이러한 성공은 체코 국내에서 큰 반발에 부딪혔다. 엄청난 돈이 국외의 초국적 기업으로 빠져나간다는 것 외에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체코 사회의 문화적 기풍을 정면으로 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체코 방송위원회는 수 차례에 걸쳐 규제를 제대로 지킬 것을 종용했으나 이미 막강한 사회적 권력을 갖게 된 노바TV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되레 정규 방송시간 중에 사장인 젤레즈니가 나와 정부와 관료들을 가리켜 "국부유출이 어쩌고 하는 해묵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이미 CME는 노바TV 외에도 라디오방송국, 잡지, 신문 등의 매체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적 권력으로 변해 있었다. 1999년 4월에 행해진 여론조사에 의하면 체코 국민들의 40퍼센트는 체코의 언론자유가 사라졌으며, 이런 답변을 한 이들 중 상당수는 그 원인을 매체가 외국인들에 의해 소유돼 있다는 데서 찾았다.
1997년 4월 17일 젤레즈니가 체코 의회에 출석해 CME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상업 텔레비전 방송인 노바TV를 통해 '프리마TV(Prima TV)'를 인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을 때 그의 성공신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프리마TV의 대주주인 체코의 국영은행이 노바TV에서 내건 조건에 응함으로써 주식매매에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 직후 체코 의사당에서는 거의 난장판에 가까운 대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발표된 대로라면 체코의 민영 TV 방송은 사실상 CME에 전부 장악당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신한 젤레즈니에 대한 라우더의 역공
그러나 성공담은 여기까지이며, 이후의 이야기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체코 사회에서 일급의 거물로 성장한 젤레즈니가 라우더와 CME를 배신하고 독자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관계가 악화된 라우더와 CME는 1999년 3월에 젤레즈니를 해고해버린다. 하지만 방송국 설립허가를 보유한 회사는 CET21이었고, 이 회사에 대해서는 젤레즈니가 홀로 6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젤레즈니는 이름만 바꾼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계속 노바TV를 운영하는 한편, CME나 CNTS로부터의 서비스 구매를 중단하고 일체의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이른바 '내부인수(internal takeover)'를 거행한다. 졸지에 방송국을 빼앗기게 된 라우더와 CME는 체코 사법기관에 3억 달러 규모의 고소를 하지만, 체코의 재판소가 젤레즈니와 같은 정치적 거물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부터 라우더와 CME는 아예 체코 정부를 사냥감으로 삼기 시작한다.
라우더와 CME 측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체코 정부는 방송사의 문제는 독립기관인 방송위원회 소관이므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공언했다. 이에 라우더와 CME는 노바TV의 원래 지배소유구조를 회복시켜 줄 것을 방송위원회에 요청했지만, 방송위원회는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노바TV의 일에 휘말릴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사이에 젤레즈니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에게 자신의 보유주식을 이전시켰다.
이런 젤레즈니의 행동은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체코 국내의 법원에서 라우더와 CME가 승리하여 노바TV의 원래 지배소유구조를 회복시키라는 명령을 받아낸다 해도, 젤레즈니의 손에 남은 주식은 이미 극히 소량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젤레즈니의 주식 이전을 방송위원회가 승인하였다는 것이 또 다른 빌미가 되었다. 이제 라우더와 CME는 감독소홀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자로 체코 정부를 몰아세우기로 작정한다.
라우더와 CME는 각종 양자 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ies: BITs)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investor-state claim) 조항에 호소하여 체코 정부를 국제 중재기관으로 끌고 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체코 정부의 감독소홀이 결국 자신들이 체코에 투자한 자산의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했고, 결국 이는 사적 소유물의 '수용(expropriation)'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라우더와 CME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먼저, 1991년 발효된 네덜란드와 체코 사이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이용할 수 있었다. CME는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와 네덜란드 모두에 기반을 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또 미국과 체코가 1958년에 맺은 조약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CME의 소유자인 로널드 라우더가 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두 가지 모두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라우더와 CME가 각각의 투자협정을 이용하여 따로따로 체코 정부를 상대로 5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기로 한 것이다.
이리하여 로널드 라우더 개인이 시작한 소송의 국제 중재재판이 런던에서, CME가 시작한 소송의 국제 중재재판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각각 시작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로널드 라우더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광고를 실어 체코가 얼마나 투자자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곳인지, 그래서 투자자들이 얼마나 체코를 멀리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홍보했다. 하지만 판세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2001년 2월 암스테르담의 국제 중재재판에서 벌어진 CME와 젤레즈니 개인 간 소송에서 CME는 부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 전혀 없으며, 따라서 CME 쪽이 제기한 배상 요구는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곧이어 9월 초 런던에서 벌어진 라우더와 체코 정부 사이의 재판에서도 재판관 만장일치로 체코 정부는 문제된 거의 모든 쟁점에서 책임이 없으며 따라서 배상의 의무도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중재법정의 배상 판결
그런데 2003년 3월에 CME와 체코 정부 간 소송의 스톡홀름 중재재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스톡홀름 중재법정은 CME가 체코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의해 피해를 입었으며, 따라서 체코 정부는 3억50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는 체코 국내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체코 정부가 이미 두 건의 소송에 100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한 데 이어, 이제는 3억5000만 달러라는 훨씬 더 큰 부담이 정부재정에 얹혔다. 체코는 인구 1000만 명,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의 작은 경제다. 이 나라에서 3억5000만 달러는 나라 전체 의료보험의 1년 예산에 맞먹는 금액이며,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추면 이는 영국이라면 105억 달러, 독일이라면 140억 달러나 마찬가지인 부담이었다. 게다가 체코 정부는 이미 3억6000만 달러 정도의 기록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졸지에 정부적자가 두 배로 늘어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지불이 늦어질 때는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재정악화로 인한 국가신인도 등의 문제도 불거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체코 정치가들은 군말 없이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배상금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유는? 가뜩이나 라우더의 국제적 캠페인으로 악화된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서 체코의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외교장관 키릴 스보보다(Cyril Svoboda)가 말한 대로 '국제적 평판(reputation abroad)'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막대한 돈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논의가 들끓었지만, 정부에서는 각종 부가가치세를 늘리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두 건의 소송 비용으로 나간 돈 외에 라우더와 CME에 갖다 바칠 배상금까지 체코 국민들이 물어내게 된 것이다.
체코 국민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라우더와 CME의 성공담은 수많은 다른 나라의 국제 투자자들로 하여금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를 이용해 체코 정부로부터 큰돈을 뜯어내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있는 일본 노무라 금융법인의 자회사인 살루카 투자(Saluka Investments)는 이미 2000년에 벌어진 'IPB 은행' 파산 과정에서 자신들이 당한 차별을 이유로 10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례들에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CME 사건에 고무되어 체코 정부에 으름장을 놓는 등 기세를 올렸다. 이것이 2003년 체코의 풍경이었다.
이런 체코의 사례는 몇 개의 작은 나라들과의 FTA를 거쳐 이제 미국이라는 경제대국과의 FTA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외국자본에 의한 지배소유구조의 복잡한 변형, 방송의 공공성 파괴, 이로 인한 국내의 사회적 분란과 동아시아 차원의 시장구조 변동….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것들은 굳이 FTA라는 형식적 틀이 없어도 자본의 지구화로 달려가고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이미 마주쳤거나 언젠가는 한 번씩 마주치게 될 문제일지 모른다.
여하튼 앞의 1회와 이번 2회의 이야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반부의 기막힌 반전이다. 초국적 미디어 기업과 지역 및 국내의 미디어 산업 간 각축전 및 이전투구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일상이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FTA나 양자 간 투자협정(BIT)을 맺은 나라들의 경우 그 이전투구의 흙탕물이 엉뚱하게도 정부, 그리고 나아가 국민 전체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바로 그러한 조약이나 협정 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라는 희한한 제도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지난 5월 19일 <프레시안>의 보도('미국기업에 한국 제소권 보장' ☞ 바로가기)를 통해 우리는 한사코 숨겨 온 한미 FTA 협상안에 바로 이런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부인하지 않고, 대신 이 제도는 이미 정부가 성사시킨 몇 개의 다른 FTA에도 포함되어 있고, 또 세계적으로 모든 투자협정이나 FTA에 포함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 실제 이 제도가 활용되어 소송이 벌어지는 건수는 많지 않기에 그 위험성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첫째, 이 제도가 마치 거의 성문법에 가깝도록 국제적으로 안착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1990년대 초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처음 생겨난 이 제도는 이후 숱한 비판과 저항에 부딪히면서 1990년대 지구정치경제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앞으로 보겠지만, 1990년대 말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 추진되던 다자간 투자협정(MAI)이 결국 결렬된 데도 이 제도에 대한 논란이 큰 역할을 했으며, 최근에 체결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AUSFTA)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의 거센 반대여론에 의해 결국 이 제도에 관한 조항은 빠지게 되었다. 나아가 미국 내에서조차 이 제도를 명시한 NAFTA 11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이런 여론을 이끈 인물은 다름 아니라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존 케리(John Kerry) 상원의원이다.
둘째, 실제 소송의 건수가 적고 규모도 작으므로 이 제도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과장이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 제도로 인해 멍들고 있는 나라는 체코뿐만이 아니다. 2003년 현재 파키스탄 정부는 스위스 회사 SGS, 이탈리아 회사 Impreglio, 터키 회사 Bayinder 등에 의해 각각 수억 달러의 소송에 걸려 있고, 그 배상요구 총액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유엔 산하기관인 UNCTAD는 지난 1997년 이후 2004년까지 이 제도로 인한 국제적 소송 건수가 8배로 증가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UNCTAD의 '투자기술사업개발국' 국장인 소방(Karl P. Sauvant)은 2004년도 보고서에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각국 정부는 투자협정 협상에서 대단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논평했다.
한미 FTA 전반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지적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전대미문의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의 세부내용을 뜯어보면 실로 포복절도할 만한 부조리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은 그런 세부사항 하나하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로 한미 FTA에 관한 토론이 발전돼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야말로 그러한 세부사항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며, 한미 FTA의 성격과 그 결과의 예후를 보여줄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는 결코 몇 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돈 계산으로 찬반을 논할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는 1990년대 이후 구조적 변화를 보여 온 지구정치경제 체제의 본질적 성격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의미심장한 것이고, 지난 10년 간의 여러 경험들에서 숱한 문제점과 모순을 드러낸 것이며, 단순한 경제적 사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보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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