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1단계 지배구조 개혁안이 18일 통과됐다. 이 개혁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멕시코, 터키 등 4개 신흥경제국의 IMF 지분을 그 경제규모에 맞게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IMF는 이날 총회에서 한국, 중국, 멕시코, 터키 등 4개국의 지분 확대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마감한 결과 지분 기준으로 90.6%가 이 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IMF 이사회가 실제 지분이 할당 지분보다 밑도는 한국 등 4개국의 지분을 총 지분의 1.8%로 늘리자는 결의안을 의결한 후 이달 1일부터 이날까지 총회에서 이 의결안에 대한 찬반투표가 진행됐다.
이에 따라 IMF는 1947년 업무를 시작한 지 6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지배구조 개혁을 단행하게 됐다. IMF는 1945년 설립된 이후 회원국 수가 184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럽 등 35개 설립가맹국이 자국의 경제규모와 상관없이 높은 지분을 갖고 IMF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지배구조 개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은 IMF의 향후 행보는 역시 미국, 유럽 중심의 기형적인 지배구조로 비판받고 있는 세계은행(WB)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계은행은 IMF를 뒤따라 미국과 유럽 외의 다른 국가들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IMF의 개혁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를 지낸 바 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17일 "미국만이 비토권(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쿼터 조정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IMF는 1944년에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1945년에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로서 세계경제를 감독하고 금융위기에 처한 경제에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해주는 것을 그 설립목적으로 한다. IMF 정책은 184개 회원국들이 각각 출자한 재원에 따라 할당받는 지분에 따른 투표로 결정된다. IMF는 5년에 한 번씩 각국의 지분 할당량이 적정한 지에 대해 검토한다.
지배구조 개혁…미국만 비토권 가진 상황에서 가능할까?
현재 IMF의 개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국제 금융위기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쳤던 IMF의 기능을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첫 번째 개혁안인 IMF의 지배구조 개선안은 다시 2단계로 나뉜다. 이번에 총회에서 통과된 1단계 개혁안은 총 쿼터를 1.8% 증액하고 이 증액분을 할당 쿼터보다 실제 쿼터가 작은 국가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이 개혁안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 중국, 멕시코, 터키 등 4개 신흥경제국이다.
이번 1단계 개혁안이 현재의 왜곡된 지분 할당 상황을 바로잡는 소극적인 의미의 개혁이라면, 2단계 개혁안은 184개 회원국 모두를 상대로 각국의 경제력에 맞게 지분을 재조정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개혁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회원국들은 2008년까지 각국의 경제력을 측정하고 이에 따라 지분을 배분하는 새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 공식을 어떻게 만들지를 놓고 각 회원국들 사이에서 이견이 분분하다. 브라질은 대외계정 계산시 '변동성(variability)'을 고려하는 공식을 채택하자고 주장하는 한편 아르헨티나는 유로존 안에서의 교역은 이 공식을 산출하는 데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쿼터 증액분을 쿼터가 부족한 나라들에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벨기에는 IMF에서 가장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부터 당장 쿼터를 증액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집트 등 신흥 강국들이 IMF 지배구조 개혁을 2단계로 분리해 실시하는 것이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이같은 2단계 지배구조 개혁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 국가들을 포함한 23개 국가들(지분율 9.4%)이 1단계 지배구조 개혁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제 IMF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요구 할 것
IMF의 두 번째 개혁안은 IMF가 그동안 금융위기가 발발한 후 '사후약방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던 것에서 앞으로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 세계 환율 감시 기능과 같은 '위기 방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개혁 방향은 일차적으로 IMF로부터 돈을 빌리고자 하는 국가들이 사라지면서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IMF의 역할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진 데 대한 대응으로 비춰진다.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겪은 한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가혹한 조건을 단 IMF 구제금융을 받은 후 '다시는 IMF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겠다'며 외환보유를 확대해 왔다.
IMF로 하여금 '위기 방지 시스템'을 갖추게 한다는 구상은 미국, 영국 등 주요 경제선진국들의 대규모 무역적자와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규모 무역흑자가 빚어내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이 언제든지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IMF의 인식과도 연관돼 있다.
많은 IMF 소속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위기의 증후가 후진국들이 아닌 선진국들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지난주 에드 볼스 영국 재무장관이 지적했던 것처럼 글로벌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은 IMF의 채무국이 아니라 채권국인 미국과 영국 등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이 불균형을 빚어내는 주범으로 몰아가며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은 선진7개국(G7) 등 선진국 클럽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박을 가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런 문제를 IMF라는 국제금융기구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것이 IMF 개혁의 한 축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IMF 지분 확대, 어떤 의미?
이날 IMF의 1단계 지배구조 개선안이 통과되면서 우리나라의 IMF 지분은 0.764%에서 1.346%로 증가했고, 지분율 순위도 184개 회원국 중 28위에서 19위로 상승했다.
IMF의 지분 확대와 함께 우리나라는 1조8400억여 원을 IMF 계정에 추가로 출자해야 한다. 이 자금은 외환보유액에서 출자되며, 출자 후에도 무수익 자산으로서 외환보유액에 포함된다.
지난 1955년 0.14%의 지분을 받고 IMF에 가입했던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이에 맞는 지분을 할당받아 IMF 안팎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IMF 지분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의 IMF 이사국 지위 유지 기간도 현재 8년 중 2년에서 8년 중 4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IMF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금융위기가 발발할 경우 IMF로부터 빌려올 수 있는 차입금의 규모도 72억 달러에서 135억 달러로 늘어나고 차입조건도 개선된다. IMF 구제금융 조건을 결정하는 것이 지분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IMF 지분이 부족해 신용등급의 추가적인 하락, 자금지원 시기의 지연, 추가 수수료 지불 등과 같은 희생을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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