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이 유난스런 폭염의 행진이 지구 온난화의 한 징표라는 것은 이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 한 방울 만나지 못하고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지낸 지가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건 세상일이건 우리는 그저 이 더위를 피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더위를 견디기 위한 내면적 건강을 위해 우리는 온전히 '몸으로' 이 무참한 폭염을 감당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떠올리고, 그의 비통하고도 억울한 옥살이를 생각한다.
곧 있으면 8.15 광복절 특사가 발표될 것이다. 집권여당의 의장이 재벌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약속했다. 대통령의 최측근들, 이를테면 안희정, 신계륜 씨 등이 이번에 사면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그러나 이 땅의 도덕적 양심과 사회정의에 가장 예민한 지점에 서 있는 김성환 위원장이 배려되는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김성환 위원장은 지금 1년6개월의 수감기간 동안 벌써 세 차례나 벌인 단식과 고혈압으로 병사동에 수감되어 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가르쳤지만, 그는 지금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삼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김성환 위원장이 수감된 과정은 이제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삼성일반노조를 결성하여 삼성의 무노조경영, 노동자 탄압에 맞서 10여 년간 싸워 왔고, 결국 '업무방해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다시 삼성SDI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실을 알리다가 '명예훼손'이라는 이름으로 실형 2개월을 선고받았고, 애초의 3년을 합쳐 3년2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사이 그를 가두기 위해 삼성 재벌이 얼마나 집요하게 애썼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화끈하게 고백했다. 언젠가 황우석 씨의 연구실을 찾아가서는 대뜸 '감전됐다'고,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다'면서(실은 '사술'로 드러났다) 이마에 주름살 굵게 그으며 부담스러울 만치 환하게 웃던 노 대통령은 가끔은 '심하게' 솔직해서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그가 했던 이 말,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는 표현 역시 삼성을 염두에 놓고 보면 두 말이 필요 없는 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삼성에 대한 존경심과 자발적 복종의 의지로 가득하다. 이 땅 청년들의 최고의 기쁨은 '삼성맨'이 되는 것이다. 박지성 선수가 벤치를 박차고 경기장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선망과 열등감의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그 프리미어리그의 절대강자 첼시의 선수들은 가슴팍에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 삼성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뛰어다닌다. 할리우드의 선남선녀 배우들도 삼성이 만든 최고급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지 않은가.
삼성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경쟁력 있는 삼성의 물건들을 팔아주기 위해 희생되는 경쟁력 없는 존재들, 이를테면 농업과 중소기업들이 누려야 할 본연의 가치, 그리고 그들이 지켜져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밥과 된장을 먹지 않고 휴대폰과 반도체와 벽걸이형 텔레비전과 자동차를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 몇 개의 '초일류'들의 독주로 인해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이 땅 삶터의 자립의 기초를 염려해 보았는가.
삼성은 또한 이 사회의 정신적 타락의 중추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논리와 이것이 수용되는 현실 속에는 돈만 많이 준다면 노동자로서의,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은 뭉개져도 좋다는 극히 절망적인 인간학이 깔려 있다. '법 앞의 평등'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 거짓말이 되었다.
삼성이라면 어떤 위법, 탈법을 저질러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그들은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시끄러워지면 돈을 좀 풀어서 온 국민을 '어르는' 치욕스러운 작태를 그들은 서슴없이 자행한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가져야 하고, 잘못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법 앞에서 공평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이 자명한 상식을 삼성은 거부한다. 그래서 김성환과 같은 사람은 제 일신을 바쳐 싸우는 것이다.
의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
김성환 위원장은 유신독재가 막바지로 치달아갈 때 이른바 '의식화 서클'을 출입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스스로 대학에 가지 않았고, 대신 의식 있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대학생들을 들뜨게 했던 영화 <철의 노동자>의 실제 무대였던 인천 '한독금속'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인천에서 최초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그와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개 학출(대학생 출신)이었을 테고, 그들이 하나둘씩 현장을 떠날 때에도 그는 선반공으로 현장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일하던 이천전기가 삼성의 하청계열사로 편입될 때 그는 삼성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었다. 삼성은 그 회사를 매각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해고자가 된 그는 그 뒤로 10여 년간 사적인 삶을 반납하고 오로지 삼성과 맞서 싸우는 공적인 생애를 살았다.
이 싸움을 통해 그가 얻을 수 있었던 제 삶의 유익은 무엇이었을까. 설혹 우리 노동운동의 마지막 성역으로 남은 삼성에 노동조합의 깃발을 꽂은 최초의 운동가라는 영예가 남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인간'들의 나라에서 그로서는 국민경제를 망치는 주적이라는 악선동의 표적이 된 것에 따르는 고통이 더 컸을 것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도덕적 타락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이 마당에 그의 투쟁은 유행이 지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아내 임경옥 선생은 지금도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0만 원의 셋집에서 세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새벽과 오후 두 타임의 우유배달을 하면서 힘겹게 옥바라지를 한다. 김성환 일가의 삶은 차라리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애에 가깝다.
김성환을 석방하라!
그가 부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올해 2월, 나는 지인들과 함께 면회를 간 적이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가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던졌던 말들은 지금도 나에게 고마운 감동으로 남아 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어느 벗의 재빠른 노력으로 녹음해둔 그의 이야기 중 일부를 이 자리에서 풀어본다.
"제가 삼성을 두고 물신(物神)이라 말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은 삼성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신이 다 장악하고 있는데, 못하는 게 없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노동조합을 하나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 물신에 맞선 인간성의 회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저들의 본색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가진 가치관이란 것이 돈을 들이밀면서 이 땅 사람들을 속물화시키는 거 아닙니까. 자기들 눈높이에 이 사회를 맞추는 거거든요. 돈으로 다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온 국민을 교육시켜요. (…) 지금은 내가 힘이 없지만 다음을 위해서는 저 막강한 권력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지더라도 바위에 계란을 집어 던져서 바위가 깨지진 않지만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다시 할 수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면회가 끝나고, 김성환 위원장은 옥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푸른색 수의를 입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새삼 가슴이 찡 하고 아파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형편없는 사회가 그래도 사람 사는 땅으로 지탱하는 것은 김성환 위원장과 같은 의인들이 무지, 악행, 폭력으로 점철된 이 땅을 온 힘으로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금 영등포 교도소 병사동에서 옥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을 보내는 김성환 위원장. 그의 죄는 이 땅의 실질적 지배자 '삼성'에 무릎 꿇지 않은 죄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앞에서 우리 사회는 과연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이번 8.15 광복절 특사에 얼마나 많은 재벌과 권력자들의 이름이 오를지 모르지만, 그들이 양껏 사면을 받아 이제 자신들 범죄의 마지막 흔적조차 싹싹 지워버릴지라도, 김성환 위원장은 풀려나야 한다.
나는 인간의 양심과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구한다. 김성환은 정당하다, 김성환을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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