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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뚫겠다는 사람들, 도대체 아는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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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천성산 뚫겠다는 사람들, 도대체 아는 게 뭔가"

김곰치의 '천성산 유량조사단' 통신 〈5〉

지난번에 이어 손문 부산대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인터뷰를 계속 싣는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곰치 씨는 "지난 2004년 지율 스님 단식 때 관계부처도 현재처럼 천성산을 뚫는 노선이 아니라 우회해서 지나가는 노선을 대안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고 폭로해 주목된다. 이미 2004~5년 100일 단식 때 <프레시안>은 경제성이 훨씬 높고 환경 훼손도 덜한 우회 노선을 왜 정부가 주목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혹(2005년 1월 28일자)을 제기했었다. <편집자>

-지율스님의 계곡 유량 조사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공동조사 마지막 전체회의 속기록을 보면, 홍성철 교수님도 그 말씀 하셨더라고요. 가장 간단한 지표 유량조사도 왜 안 하고 있느냐, 공단에서 꽂아놓은 것은 수위 조사뿐이고, 그것도 유속 느린 웅덩이에 꽂아 놓았더라. 그건 거의 아무 의미가 없잖습니까. 저는 홍 교수님 말씀이 너무 지당하다고 생각되고요.

대동아파트 저수지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난 한달 새 100mm 이상 비가 왔는데 지금도 말라 있단 말이죠. 물이 왜 저수지 밑바닥으로 빠질까, 저는 그 저수지가 고산 늪지의 한 축소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우리 보고서에 다 들어 있을 겁니다. 결론은, '대동아파트 문제는,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새로운 조사가 필요하다. 지난 3개월 안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요. 보고서를 쓰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 저도 대동아파트에 한 번밖에 못 가봤어요. 주민들한테 다시 상세히 물어볼 필요도 있겠고요."

-주민들은 공단과 보상 협상을 해야 되니까, 근데 공단이 제시하는 협상 조건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운 좋게 저는 대동아파트에서 용감한 주민 한 분을 만나서 다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근데 <프레시안>에 대동아파트 기사가 나가자 주민대책위원회 다른 분들이 격렬하게 항의전화를 하셨는데, '왜 지하수 고갈이라고 표현하느냐, 물 부족이다. 왜 허락도 없이 우리 아파트 사진 찍었느냐' 등등 공단 사람이 할 말을 하더라고요. 공단에서 밖에다 소상하게 알리면 보상을 안 해준다, 이렇게 나왔던 것 같고, 주민들은 당연히 겁이 날 것 아닙니까.

"그게 정치 아닌가요. 정치가 그렇죠. 제가 경험한 옛날 얘기 하나 하면요, 박사과정 때,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앞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지하수 두 개를 뚫었어요. 서민들이 사는 연립주택이다 보니까 우리는 우물을 쓰고 있었거든요. 근데 우물이 말라버렸어요. 그럼 새로 짓는 아파트 측에서 보상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민들이 수도를 넣으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해 달라, 요구하니까 안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그냥 드러누웠어요. 레미콘 못 들어오게 하고. 그러니까 나중에 보상을 해줬어요.

대책회의를 하는데, 주민들 겁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이. 부산대 지질학과 지질학 박사가 한 명 산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어요. 수도만 해주면 해결되는데, 그걸 안 해줍디다. 왜 그러느냐, 그런 전례를 만들면, 다른 데서도 빗발치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는데, 돈을 더 내놔라, 이런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 공사와 관계없다, 하고 발뺌도 하죠. 그래서 법적으로 추적자 실험을 하려고 했는데, 돈이 엄청 들어요. 우리 집 애 하고 할매, 마누라 하고 온 동네 사람들 같이 가서 레미콘 못 들어오게 누웠어요."

"정부에서도 우회노선 검토 시도한 적 있다"
▲ 손문 부산대학교 교수(지구환경시스템학부) ⓒ김곰치

-오는 길에 택시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부산의 물만골 밑 동네에 사신데요. 샘이 있어 큰 물통으로 긴 줄을 서서 식수를 받아 썼는데, 올봄부터 거의 물이 나오지 않는대요. 비가 와도 마찬가지고요. 주위에 도로공사 말고는 딱히 인위적 변수가 없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러면서 지하수 마르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하세요. 대동아파트 지하수 문제도 공단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장기간 조사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하를 안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제 생각은 그래요. 어떤 공사든지, 터널공사를 하면, 지하수든 뭐든 환경에 영향이 있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천성산은 국가적 이슈가 돼서 그렇지, 나중에 금정산 같은 경우는, 동래 온천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고속철도 16㎞가 지나가면 온천이 마를지 몰라요. 제가 온천이 마를 수 있다고 논문도 하나 적은 게 있어요. 그렇듯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발을 하면, 문제가 생기게 돼 있는데, 철저히 좀 하자, 이거예요."

-철저히 하면요, 천성산 금정산은 아예 터널을 못 뚫게 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노선은 정치적인 면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주를 거쳐 오는 것 말예요. 저도 옛날에 반대하기도 했었죠."

-제가 알기로, 지율스님이 세 번짼가 단식할 때, 관계부처에서 연락을 해 왔답니다. '14㎞ 터널을 뚫으면 산에 치명적인 훼손이 온다고 스님이 주장을 하시고, 우리도 그런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5㎞ 정도 터널을 뚫고 산을 살짝 치고 가는 우회노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스님이 긍정적으로 답변을 했어요. 치명적 훼손은 피할 확률이 아주 높아지지 않습니까. 관련자들이 긴급회의를 했어요. 경찰청장이 회의결과를 듣는다고 그날 퇴근을 안 하고 있을 정도였대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오케이' 했는데, 당시 공단 본부장이 끝까지 반대를 해서 그 제안이 무산된 적이 있거든요.

본부장이 왜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는가, 다 해놓은 설계비용 손실 때문인가? 그 자리서는 '전례를 만들면 안된다'라고 했다는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터널을 뚫어야 공사 단가가 세고 총공사비가 많지 않겠습니까? 옆으로 치고 나간다면, 주민들 보상비가 더 많이 들 테고요. 천성산에서 내원사 소유의 땅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그 땅 지하를 뚫고 가는 보상비가 300만 원이래요. 그 산정 근거도 참 궁금한데요, 아무튼 공단의 경제적인 이유와 어떤 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터널을 뚫어야만 되는 게 아닌가. 교수님 말씀처럼 철저한 사전조사를 한다고 하면, 터널을 뚫으면 안 된다고 나올 테니까, 공단은 진실을 은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저는 이렇게 봅니다.


"예, 그런 면이 있을 수 있겠네요. 크게 또 보면, 우리나라가 그간 개발 위주로 해오면서 산업구조에서 건설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거든요. 사회간접자본(SOC)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도로 잘 해놓은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별로 없어요. 차 몇 대 안 다니는 데도 4차선 확장하고 하는 게, 참 문젠데, 근데 우리나라가 그런 SOC 사업 안하면, 제가 생각하기에, 실업자가 엄청 늘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산업구조도 좀 바뀌어야 해요. 괜히 뚫고 있는 데 많잖아요. 한번씩 보면 기가 찬 게,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기차 두 대 오는데, 기찻길 뚫고 있어요. 그런 데 많아요.

근데 제 입장에서 보면, 저도 사랑하는 후배가 있고 제자가 있고, 다 건설 쪽에 나가 있거든요. 그 친구들은 일이 없어 죽겠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국토 온 구석에 다 망해가고 있어요."

-참, 큰일입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외국에 나가 플랜트 사업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정치하는 사람은 또 그렇겠죠. 공사업체 쪽 사람들에게 살 자리 마련 안 해주면, 지지를 잃겠고.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많아요."

"천성산 지하구조, 화분 같이 생겼다"

-말씀 잘 들었고요, 제가 여기 오면서 인터뷰 기사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이미 속기록에 있는 선생님 말씀이 제목이더라고요. 대성늪 시추조사를 통해 '늪지의 기적, 우리가 밝혔다' 하는 기분이라고 하셨잖아요. 화분과 비유를 하셨고요, <프레시안> 독자들을 위해 속기록의 그 대목을 소개하면, "화분에다가 맨 밑에 자갈 넣고 모래 넣고 흙과 유기물 넣듯이, 천성산의 늪 아래도 그런 형식이다, 만약에 늪 밑이 지하로 연결되지 있지 않으면, 비가 오면 위에 있던 유기물이 다 썩든지 전부 다 씻겨나가서 홍수 때는 다 나가야 되는데 지금 이 늪 지역 아래가 썩지 않고 습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화분이 있는데 화분 밑에 구멍이 없으면 위에 다 썩어버린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올 때는 늪 밑에 구멍이 있어 군데군데 잘 빠져나가야 되지 않는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제 천성산 고층 늪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 늪에, 더 높은 데서 물을 대주는 계곡이나 개울 수로가 없나요?


"있죠. 강우가 있고, 졸졸 내려오는 개울이 있고, 또 용출수가 있겠고. 이 세 가지가 물을 대고 있죠. 속기록의 대목을 다시 말하면, 고산지에 늪이 어떻게 있는가, 우리도 참 논란이 많았었는데, 늪의 지하구조가 딱 화분 같이 생겼어요. 늪 아래쪽에 구멍이 송송 나 있고. 비가 오면 물이 밑으로 빠지고, 그래야 안 썩겠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 밖으로 넘치면 늪에 있던 토양분이 밖으로 배출이 될 텐데, 안 되게끔 희한한, 물이 잘 빠지는 아주 기가 찬 화분 구조로 돼 있구나. 그래서 지하수 하고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거죠."

-특히 대성늪이 밑의 마사, 즉 모래층이 크고, 근데 다른 늪은 마사층이 얇지 않습니까? 그런 단면도를 본 적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우리가 시추를 대성늪밖에 못했습니다. 무제치늪은 대신 탐사를 했어요. 지하에 전기를 보내는 방법이죠. 지하가 건조하면, 안에 물이 없으면, 전기가 잘 안 통하겠죠? 그렇게 전기비저항 실험을 하면 지하구조가 나오거든요. 시추를 못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무제치늪이나 대성늪이나 구조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무제치늪에 탐사를 할 때, 측선을 잘못 잡았어요. 늪 전체로 측선을 길게 잡았어야 하는데, 돈도 없고, 환경훼손 우려도 있고."

-대성늪은 최근에 다녀오신 분 말이 시추조사만으로도 말라버렸다고 하시던데요.

"그러니까요. 복구를 잘해야 되는데, 시추업자들이. 요즘은 복구기술도 많이 좋아졌긴 해요."

"지구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아까 말씀하신, 현장에 가 있는 많은 후배나 제자들이 복구사업에 용역을 많이 받으면 안 됩니까?(웃음)

"그건 돈이 안 됩니다.(웃음)"

-근데 가치관만 바뀌면, 돈이 안 될 이유가 없잖습니까. 더 보람찬 일일 텐데.

"원래는 법적으로 시추업자가 복구를 하게 돼 있어요. 대성늪 시추 뒤처리는 좀 알아봐야겠네요. 그래도,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지하수나 온천 찾는다고 굴착기 사가지고 오만 데를 다 뚫고 안 나오면 그냥 가버리거든요. 지하에 구멍을 뚫어놓으니까 오염수라든지 지하로 바로 들어가버려요. 환경부가 10년 전부터 폐공복구 사업을 하고 있을 거예요. '폐공을 신고하십시오' 크게 포스터도 붙여 놓았더라고요. 일단 구멍을 막아야죠. 지표수가 땅에 스며들 때, 수백 년 수천 년 걸리거든요. 오염수가 들어가더라도 서서히 순환이 되면 정화가 된다고요. 흙에, 점토광물의 특성이 흡착력이거든요. 균이라든지 불순물을 흡착시켜요. 거기만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정화가 돼요."

-예, 솔직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값진 말씀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한국사회에서, 또 우리를 둘러싼 천지자연이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디쯤이 적당한지, 결국 자연 안의 존재라는 인식이 많이 필요한 시대라고 저는 생각을 하구요. 선생님이 연구를 하시면서, 땅이라는 것, 땅속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될수록 어떤 신비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신비라는 말이 학자세계에서 달가운 말은 아닌 줄 알지만, 근데 우리가 큰 신비를 만나면 겸손해지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병이 드는 것도 너무 신비한 일인데, 병들고 자기 인생을 안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병들면 겸손해지고, 또 나중에 죽을 때는 제가 알기로는 다 참회하고 죽더라고요. 선생님께서 땅속 공부를 쭉 해 오시면서, 이번 공동조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연구인생이 많이 남았지만, 학자로서 우리를 떠받치는 땅속 세계의 신비감, 이런 것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땅이라는 게, 고체 지구라는 게, 학문적으로 보면, 지구의 역사 그 자체예요. 46억 년 전부터 시작된 지구 역사 기록이죠. 우리가 그걸 최대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거죠. 단순히 지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왜 알아야 되냐면, 산업혁명 후 인간사회가 급격히 발전해 왔는데, 저는 곧 '지구환경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한번 보세요. 지구가 46억 년 되는 기간에, 운석이 떨어지고 하는 일 외에 이 정도 격변이 없었거든요. 인간이라는 것이 나타났고, 지구환경에서 예전에는 인간생물의 중요성은 별로 없었는데, 자연에 기대서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제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빠르게 격변을 일으키고 있죠.

지구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지구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안 줘요. 지구는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있어요. 근데 너무 건드리는 인간들이 많아요. 지금이야 석유로 자동차가 달리지만, 만약에 오존층이 터지고 여러 사태가 번져나가면, 완전히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지금 시스템에서 자연적인 재앙, 지구의 재앙은 불 보듯 뻔할 거예요."
▲ 손문 교수는 천성산 늪을 물에 적신 스펀지에 비유했다. ⓒ김곰치

-공감합니다. 근데 너무 거시적이고요, 땅속 세계에 관련하여 그런 말씀을 다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는 게 구조지질학이니까, 단층이나 지질, 이런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천성산 조사할 때, 저는 사실 보조 역할이었죠. 제가 지질구조를 밝혀 보이면, 지하수 하시는 분들이 잘 해석해주기를 바랐죠. 그런데 짧은 조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특히 지하수는 조사기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거든요, 불행히도 지하수 쪽에서 의미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잘 안 나왔어요.

어쨌든 신비로움을 느낀다는 쪽으로 말해본다면, 제가 공부할 때, 초창기에는 산을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계곡을 다니고 때로 산돼지, 뱀도 만나고. 석·박사 할 때는 일주일에 3, 4일은 산을 타면서 조사를 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어렵고 힘들기만 했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이제는 구조지질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산을 보면 산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지구는 살아 있어요. 우리가 현재 시간대의 눈으로 봤을 때 지구는 정적인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거든요. 2억 년 전에 호주에 붙어 있던 인도가 쭉 올라가다가 5000만 년 전에 유라시아와 충돌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졌지 않습니까. 그런 움직임이, 그 과정이 산을 가면 보이고 느껴지죠. 정적인 게 아니라, 아주 다이내믹하다, 지구는 살아 있다, 이런 걸 느낀다는 게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천성산 터널 뚫겠다는 사람들, 그들이 아는 게 뭔가

인터뷰를 마치고, 손문 교수의 연구실을 나와 부산대 정문으로 걸어 내려갔다. 사흘 전, 나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친구한테 전화를 했었다. 손문 교수 인터뷰에 앞서 이런저런 배경지식을 얻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디든 지하 밑 100m든 200m든 지하수가 있기 마련인데, 근데 쭉 흐르다가 산을 만나면 모세관 현상으로 산을 타고 같이 올라간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럼 지하수가 산을 넘어갈 수도 있겠네?

예전에, 계곡물이 문득 신기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매일매일 조금 조금씩 적절한 양으로 산의 습도를 유지하면서 물을 흘려보내나. 최소 100m 밑에 지하수가 있다고 했을 때, 산을 타고 오르는 지하수는 갈수록 지표와의 거리가 짧아질 것이다. 산이란 게 한번 융기해 생기면, 흙이 계속 씻겨 내려가고 그래서 산 곳곳의 바위가 드러나는 것일 테다. 근데 지하 암반은 지표에 비해 구조와 위치를 유지하는데 산이 계속 깎여나가다 살짝 노출된 게 암반 위의 지하수 용출 샘이고 또 계곡의 흐르는 물이 아닐까.

손문 교수는 "어느 정도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위로 올라가지만, 지표수와 같이 중력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아래로 갑니다. 뭐든지"라고 한다.

빅터 샤우버거가 생각난다. 그는 물에 관한 한 가히 시적인 학자다. 냉엄한 관찰의 눈도 가졌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라'라는 말에 더 잘 해당할 위인이다. "그의 책에 물이 산을 넘는 사례가 많이 나와요. 우리 옛 어른들 말에도 '물은 산을 넘는다'라는 것이 있죠. 제가 천성산에서 많이 경험했고요. 운동 흐름이 있다면 당연히 반운동 흐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지율스님이 언젠가 내게 해준 말이다.

'지하수가 산을 넘는다'라는 말에 나는 자꾸 끌린다. 이를 테면, 물만골에 특별한 건설공사가 없는데 샘과 계곡이 말랐다고 택시기사가 의아해 했지만, 산의 건너편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오래 전에 공사가 있었고, 결국, 마침내, 물만골의 샘까지 말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 많은 구간에서는 아직도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밖으로 배수하기도 하고 또 청계천으로 옮겨 흐르게 하기도 한다. 한번 뚫은 터널에서는 물이 계속 밖으로 흘러나온다. 물만골의 물마름은 민원이 제기되어야 하고, 원인을 규명하자면 광역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래 전, 지하강 지도를 만들자는 어느 언론의 제언도 있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보다 사태파악이 명확해질 것이다. 그런데 지하강 지도에 대해 손문 교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운전자들이 길과 길은 통하게 돼 있다고 하듯이 어쩌면 백두산 밑을 흐르는 지하수가 천성산까지 오지 않겠느냐, 물었을 때, "금정산 산성마을에 비가 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동래 온천까지 오는 데 5000~6000년 걸릴 것"이라고 손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지하수 유속도 한없이 느린 데가 있고 또 지표수 못지않게 빠른 데가 있을 것이다. 폭포와 세찬 계곡수와 느림보 강 하구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허만하 시인의 시에서 읽었는데, 어느 사막의 경우, 지표 강이 어느 순간 지하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불같은 태양에 맞서는, 강의 생존적 몸부림인지 모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신비감, 또는 다 알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존재적 상태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모른다!'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힘찬 선언 중 하나다. 모른다라는 우리 인간의 실존적 상태,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구호인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어떤 이에게는 "우리는 모른다!"가 자기를 둘러싼 만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선언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제어되지 않는 인간사회가 보다 세려한 움직임으로 돌아오게 하고, 리듬을 타게 하고, 아니 인간사회의 운동이 아름다운 춤이 되도록 하는 귀한 깨우침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모른다'라는 말을 나는 언제부턴가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천성산 터널을 뚫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이 아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다음 회 천성산 통신에선 훼손된 천성산 대성늪으로 찾아가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철도시설공단 측 환경공동조사 연구자도 곧 인터뷰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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