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한 지 두 달이 지난 4월 26일, 인권운동사랑방은 새로운 매체로 다시 인권을 고민하는 이들 앞에 섰다. 매주 수요일 발행될 <인권오름>은 <인권하루소식>의 치열함은 고스란히 간직하되 좀 더 넓고, 깊은 시각을 보여줄 전망이다. "오늘 초라하지만 값진 <인권오름>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더욱 낮게, 더욱 깊게, 더욱 긴 호흡으로 인권을 올리는 데 작은 힘 보태겠습니다."
<프레시안>은 인권운동사랑방과 제휴해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인권운동의 시각과 분석을 접할 수 있도록 <인권오름>의 일부 기사를 매주 전재한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 없는 이 땅의 인권 현실이 나아질 수 있도록 독자들의 깊은 관심을 부탁한다. 첫 번째 전재할 글은 최근 미군기지 이전 때문에 강제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평택 사태'에서 제기되고 있는 '평화적 생존권' 개념의 의미를 짚는 목소리다. <편집자>
신속기동군화 및 이를 위한 군사변환 등 이른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로 말미암아 한반도가 전쟁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이전이 용산기지의 수평 후방이동이 아니라 신속기동군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 확대이전이라는 점에서 평택 주민은 물론 전 국민적 항의가 거세어지고 있다. 나아가 이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평화권 또는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평화적 생존, 모든 인권의 출발
평화적 생존권은 이러한 평화주의를 인권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평화주의에 기초하여 침략전쟁을 부인하지 않으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는 것처럼 침략전쟁이 난무하여 인간의 평화적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고, 평화적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 사람이 죽거나 죽을 상황에 처한 상황에서는 사생활의 자유니 거주이전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자유와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전쟁을 하지 않도록 국가권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평화적 생존권이다. 국가가 전쟁을 대외정책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인권의 이름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평화적 생존권, 우리 헌법도 보장해
평화적 생존권이야말로 인권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평화란 무엇이며 평화적 생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우선 평화가 무엇이냐도 사실은 논쟁거리 중의 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좁게 해석하지만, 평화학이나 정치경제학 등에서는 '빈곤, 기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야말로 진정한 평화라고 넓고 근원적으로 해석한다. 넓은 의미의 평화 개념을 취하는 것이 근본적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인권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새로운 권리, 즉 제3세대의 권리로서의 평화적 생존권이 마치 모든 인권을 가리키는 포괄적 인권 개념으로 변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좁게 특정하여 보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적 생존이란 일단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생존하는 것으로 하되, 매우 좁게는 전쟁과 군대 없이 평화적으로 생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평화적 생존의 개념에 기초하게 되면 평화적 생존권은 징병거부권을 핵심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넓게 해석하면 전쟁과 군대 없이 평화적으로 사는 것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을 위한 기본권 침해 없이 사는 것, 전쟁 위험에 처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생존할 권리까지 포함하게 될 것이다. 일본 헌법의 경우, 전문에서 "우리는 전세계의 국민이 평등하게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경우는 어떨까. 평화적 생존권이 헌법적 근거가 있는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있는가 하는 것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행 헌법에는 명문의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헌법의 권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생명권과 알권리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래적 권리이듯이, 평화적 생존권 역시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경시해서는 안 될 제3세대의 인권인 것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제37조 1항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향상시키는 권리임을 생각한다면 비록 헌법에 열거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경시되어서는 안 될 인권인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월 23일 평택주민들이 낸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도 헌법 제10조와 제37조 1항으로부터 평화적 생존권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 기본 내용은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여 평화적 생존권의 권리성을 인정한 바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국가에 대한 방어권
이를 종합하여 보면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국가에 의한 침략전쟁의 부인, 집단적 자위권의 부인, 군비보유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 저해 행위(무기수출)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적 생존 저해 행위(징병제)의 배제,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재산수용, 표현자유 제한) 금지, 전쟁 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현행 우리 헌법의 규정과 체계를 고려하여 본다면, 현행 헌법 제5조는 37조 1항과 더불어 평화적 생존권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평화적 생존권은 침략전쟁의 부인, 개별적 자위권의 인정과 문민통제권 등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이를 대내외적인 측면으로 표현하면, 대내적으로는 침략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과 본질내용 침해에 대해 금지를 요구할 권리,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가담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 군사외교정책이 전쟁위험을 유발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를 의미한다. 대외적으로는 타국에 대하여도 자국을 전쟁 위험에 끌어들이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 등을 포함한다 할 것이다.
평화적 생존권 외침은 서울에서도 울려퍼지고 있다
평화적 생존권의 효력은 국가에 미친다. 즉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국가권력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을 방어하는 권리다. 평화적 생존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평택기지 건설을 위해 토지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수용하려 하는 경우 이러한 간섭의 배제를 국가에 대하여 요구하는 권리다.
또한 평화적 생존권은 타국에 의해 전쟁위험에 처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거부할 대국제적인 방어권이기도 하다. 평택에 미군기지가 확장 이전되면서 평택 주민들 사이에서는 평택 미군기지가 중국 등 외국을 염두에 둔 신속기동군 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휩쓸리게 될 위험성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라고 항의하고 있다.
평화로운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공지의 사실'이 평택기지반대운동을 통해 다시금 환기되고 있는 4월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호(2006년 4월 2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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