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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시설공단의 버르장머리 고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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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버르장머리 고쳐주세요"

김곰치의 '천성산 유량 조사단' 통신 〈3〉

부산 지하철 1호선은, 교대역을 지나 동래역으로 가다보면 눈이 아주 시원해지는 구간이 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선 기차는 왼편으로 금정산을 보여준다. 동래, 명륜동, 온천장, 부산대 앞, 장전동, 구서동까지 금정산 산줄기와 함께 기차가 달린다. 부산 지하철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눈에 안기는 것만 보면 금정산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아버지는 "주택은 집 고치는 재미로 산다"고 하시는데, 동감이다. "수도가 끊기면 고층에서 똥을 비닐에 싸서 밖으로 던진다"는 아파트, 서른일곱이 되도록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아파트에서 살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제(4월 22일), 양산시 웅상읍 대동아파트에 가보니, 여기라면 한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산이 너무 가까웠다. 천성산이었다.

지하철에서 산을 봐도 기분이 좋은데, 밤새 어둠으로 깨끗이 몸을 씻은 산을 아파트 작은 방이나 베란다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오전에 비가 잠깐 왔는데, 천성산 일대는 허연 수증기를 풍성하게 감고 있었다. 별천지 같았다.

비가 왔는데도 마른 못은 물이 찰지 모르고

▲ 경남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대동아파트. 총 996세대가 사는, 상당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로 가까이 갈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는 없었다. 카메라로 대동아파트에 걸린 플래카드를 찍었다. 단지 오른편 끝에 가서 멀리 보이는 터널의 입출구도 찍었다.

슈퍼마켓에 들어가 이장님이 어느 동에 사는지 물었다. 여주인은 알지 못했다. 40대 사내가 뭘 사러 왔다가 "이장님은 왜 찾으세요?" 하고 묻는다. "대동아파트 지하수가 터널공사로 고갈되었다면요? 공단과 협상을 하고 있는 줄 아는데, 좀 알아보려고요." 같이 밖으로 나왔다. "이장님은 그런 거 잘 몰라요. 제가 더 잘 알아요. 며칠 전에도 공단 사람들과 제가 협의를 했는데요."

총 996세대로 돼 있는 대동아파트에는 주민 대의원회의가 있고, 지난 1월 26일 지하수 물탱크가 바닥을 드러내는 일로 따로 비상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사내는 두 회의 모두 참여하고 있었다.

"공단은 지하수 고갈이 갈수기 때문이라 했죠? 근데 그 후 비가 꽤 왔잖아요? 물탱크 6개 중 4개가 아직 고갈된 상태라면서요?" "아뇨, 지금 탱크는 꽉 차 있어요. 급히 수도를 연결했어요. 물은 써야 하니까. 지하수와 수돗물을 섞어 쓰고 있어요. 지하수 펌프가 1호기부터 6호기까지 있는데, 3개는 거의 물이 안 나와 꺼져 있고, 나머지 3개가 조금씩 돌아가고 있어요."

비상대책위 위원장을 만나는 게 좋겠다고 사내가 권한다. 사내는 정인구 씨. 위원장이 근무한다는 아파트 옆 공장으로 향했다. "아파트 오른편에 개울이 참 좋았는데, 그것도 말랐어요. 가는 길에 저수지가 있어요. 작년 여름만 해도 제가 낚시를 했는데, 지금 물이 하나도 없어요."

못에 가보니, 물이 있었던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저기 가운데 나무 보이죠? 반쯤 죽은 것 같이 허름한 나무, 저기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겨울 갈수기 때 물이 마르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바싹 바닥까지 드러나는 일은 없었어요."

"오늘도 비가 왔고, 그새 꽤 큰 비가 왔었잖아요!" 부산 일대에 100mm가 넘는 비가 온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못에 물이 하나도 없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바닥으로 물이 빠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물이 빠질까. 바닥 밑의 공간, 즉 지하수 공간이 비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에 못물이 일정 정도 유지되었던 것은, 알고 보니, 밑에서 받쳐주는 지하수의 상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용출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용출 통로가 못 바닥에 있는데, 이제는 비가 와 못으로 물이 흘러들어도 그 통로로 빠져나간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신문 보도에서 지하수가 고갈되어 소방차가 왔고 집집마다 식수를 받아가는 사진만 보았는데, 대동아파트 지하수 고갈은 심각한 상태였다.

못의 완전한 고갈을 보건대, 지하수층의 고갈과 공백이 상당한 규모다. 아파트가 들어선 지반 밑 지하수층도 고갈과 공백이 있을 것이다. 수도가 연결되어 물은 불편 없이 쓴다지만, 고갈 상태가 계속 진전되면, 아파트 건물의 안전성도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제 뭐라고 하나요?" "개인적으로는 미안하다고 해요. 근데 밖으로는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 만날 그 소리죠."

공장을 찾아가는 길에 텃밭이 있다. 대동마을 유치원에서 아이들 교육용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란다. 거기서도 터널 입출구가 보인다. 정인구 씨는, 터널이 아파트 단지와 1.6㎞ 떨어져 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훨씬 가까워 보였다. "정확히 1.6㎞래요."

마을 위의 터널은, 고속철도 본선 터널은 아니다. 14㎞의 장대터널이기 때문에 본선을 향해 직각으로 파 들어가는 터널이다. 공사 현장으로 차량이나 인원이 쉽게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곳 말고도 영산대 쪽, 덕계 쪽 등 몇 군데에서 본선을 향해 직각 터널을 뚫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 1월에 올라가보니 100m 정도 굴진해 있었고, 본선 쪽은 지금 1㎞ 정도 뚫고 들어갔을 것이라고 한다.

공장 문은 열려 있지만, 위원장은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주말이라 고향에 가 있다고 한다. 정인구 씨는 나중에 부위원장을 만나면 될 것이라 한다. 직책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그걸 요령 있게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천성산은 알고 있다. 젖줄의 비밀을"

▲ 아파트에서 터널은 1.6㎞ 떨어져 있다.
아파트 단지로 다시 돌아왔다. 단지 중앙에 다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천성산은 알고 있다. 젓줄의 비밀을." 청년회에서 걸어놓았다고 한다. '젓줄'이 아니고 '젖줄'인데.

"작년에 엄청 가물 때도 물 걱정은 없었거든요. 제가 입주 초기에 아파트에 들어왔고, 9년째가 돼 가는데,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어요." 수도를 연결시켰지만, 가구당 28만 원 가량 설치비를 낸다고 한다. 펌프 전기세와 정화비 등 가구당 3000~4000원을 내왔는데, 이제는 수도요금이 3만~4만원이 나온다. 내가 말했다.

"일본은, 자연수를 쓰다가 공사로 물이 끊겨 수도를 연결하면, 30년 수도세 보상을 한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어디 그렇습니까. 보상금도 안 준다고까지 하는데요." 아파트가 처음 들어설 무렵, 주변 지역에 상수도 시설 자체가 없는 형편이라 자체적으로 지하수를 개발했다고 한다.

아파트 사이로 터널 입·출구를 또 멀리 보는데, 이상하다. 터널 위치가 훨씬 높은데, 왜 저지대 지하수가 고갈된 걸까. "왜 그러냐 하면, 지표에서 흘러들어가는 물은 건수라고 해서 지하수로 안 칩니다. 암반 밑에 형성돼 있는 게 지하수인데, 물줄기가 있어요. 저 산 밑으로 100m든 200m든 산의 높낮이를 따라 물줄기가 사람 핏줄처럼 흐르고 있어요. 지하수를 이용할 때, 물줄기를 찾든지 물이 모이는 데를 팝니다. 근데 터널을 하다 보면, 줄기가 끊겨요. 막히거나 딴 데로 물이 빠지기도 하고요. 지하수층에 물이 새로 공급되지 않으니까 고갈이 되는 거겠죠."
그럴듯하다.

정인구 씨가 계속 말한다. "저기 산 보세요. 널찍하게 펼쳐져 있죠? 물줄기가 저기서부터 내려오는데, 중간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요. 진동부터 아주 심해요. 발파작업 할 때 진동규제가 있는데, 아파트에서 느껴지는 진동이라고 하면, 가까운 수맥은 훨씬 심한 충격을 받겠죠. 밤에 주민들 잠도 못 잘 정도였어요. 103동의 경우, 소음 때문에 시끄럽고 집이 흔들리고, 벽면이 균열된 곳도 있어요. 작년 여름에 항의를 하러 많이 올라가기도 했어요."

진동으로 수맥의 연약 부위부터 탈이 났다는 거다. "우리 아파트 지하수 수맥을 구성하는 것은, 저 산비탈 있죠? 저기부터 산 능선 흐르는 데까지, 저 '바운더리' 안에 있는 수맥이 다 아파트 지하수와 연결돼 있어요. 물이 끊기고 일주일쯤 지났나? 읍사무소 읍장실에서 긴급 회의를 하는데, 현대건설 쪽 소장하고 부장이 지도를 펴 놓고 공사장과 아파트가 1.6㎞나 차이나고, 고도도 300m 차이난다, 공사하고는 절대 상관없다, 그래요. 제가 뿔다구가 좀 났어요. 자, 다시 지도 봐라. 산 모양이 어떻게 생겼노? 우리 아파트 여기 있고 너그 터널 여기 있제. 지하수 개발하는 업체 찾아가서 한번 물어봐라. 지하수 바운더리가 산 정상에서 시작해가지고 삼각형으로 내려와서 그 안의 것은 다 관련이 있다. 너그들이 산의 제일 중심부에서 터널 뚫으면서 왜 관련이 없다 하노, 항의했어요."

"그러니까 뭐라 하던가요?" "아무 말도 못하죠. 이번 일 겪으며 제가 지하수 공부 좀 했어요. 터널공학 책 3권, 발파공학 3권. 너그 진짜 전문가 델꼬 온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도 책 좀 보고 왔다, 누구 말이 맞나 보자, 그날은 이러고 말았어요. 발파공학 책 보면요, 진동이 아파트에서 느껴지면, 그건 지진이 일어나는 정도의 진도예요. 그 정도라면 진동 전달속도가 엄청 빠른 거라고요. 발파를 할 때는 전달 속도가 5m/sec 정도로 느리게,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해요."

진동을 상쇄시키는 시차 발파도 있다. 그러나 공기에 맞춰야 한다는 결과지상주의가 있어 그런 규칙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터널 안에서 물이 24시간 쏟아진다

▲ 아파트 바로 옆 저수지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인구 씨는 "환경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공장의 집진기를 취급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81학번이다. "요새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너무 일이 없어요. 인체에 해로운 환경에는 설치를 완벽하게 해야 하는데, 법이 있어도 자금 형편이 어려우면 다 할 수가 없거든요. 공장에 가보고 힘든 상황이다 싶으면, 이거 하지 말고 직원들 돼지고기나 사주라고 말하고 말아요." 그는 현실 이해에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인지 몰라도, 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했고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어느 지도교사의 말에 충격을 받고 문학을 포기했지만, 이제 와 sf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자주 생긴다고 한다.(나는 그에게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꼭 읽어볼 것을 권했다.) 아무튼 수맥이나 터널 공사를 두고 하는 그의 말이 미덥게 들려왔고, 한때 문학청년이라는 말까지 듣고 나도 정체를 밝혔다. 단순히 취재 온 것이 아니라, 천성산 유량 조사단이 결성되었고, 15명 중 한 명의 단원이기도 하다고. 지율스님 근황도 전했다. 대뜸 그가 묻는다.

"지율 스님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그럼요, 살아나셨어요." 이제 그는 지하수가 아니라 터널 유출수 이야기를 한다.

"저 위 터널만 해도 하루 평균 200t이 빠져나와요. 공사를 하면 물이 계속 고여 드니까 밖으로 빼내게 돼요. 저도 현장에 항의하러 갔다가 터널에 들어가 봤는데요.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 소나기가 오면 와이퍼로 닦잖습니까. 터널 안이 그 정도로 습도가 높아요. 터널에 들어가는데, 물기 있는 공기가 유리에 부딪치니까 뿌옇게 돼가지고 와이퍼를 쉴 새 없이 돌려요. 하루 빼내는 물이 200t이라지만, 공기 중의 물도 팬으로 돌려 빼내는데, 만만찮은 양일 거예요. 팬 소음도 103동에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지금도."

터널 안이 소나기가 24시간 쏟아지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이 충격이다. 큰 물줄기가 터져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 말고도, 사방 벽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터널 안의 허공을 향해 물이 거의 발사되듯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솔직히, 나는, 아파트 위 터널에서 유출되는 양이 하루 200t이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대동아파트는 생활용수로 하루 700t의 물을 8년 넘게 써 왔는데, 중간에서 200t 빠져나갔다고 지하수가 이리 고갈될까. 수맥이 막혀 물길이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200t보다 훨씬 많은 유출수인데 공단이 수치를 줄였다는 의심이 든다. 2심 법정에서 '물 하나도 안 샌다'고 증언한 사람들인데, 주민들에게 하는 그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집수지에서 조사했다니까, 그건 정확하겠죠"라고 정인구 씨는 말하지만.

오후 5시 넘어 대동아파트로 왔고, 벌써 저녁이 되었다. 정인구 씨와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아파트를 나와 2차선 도로를 걷는데, 그는 sf 소설 이야기를 다시 하고, 무한소 무한대 이야기를 하며 세계의 불연속성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말한다. 사고가 대단히 복잡한 사람이다. 우리는 숯불갈비집에 들어갔다. 술을 따랐다. 한 잔, 두 잔, 석 잔….

물이 좋아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대책위 부위원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잡다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40분쯤 지났을 때, 전화가 왔다. 아내의 전화다. 집에 다녀와야겠다 한다. 그가 고깃집을 나서자, 우리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던 듯 주인 아주머니가 말하기 시작했다. 대동아파트에 사는데, 관리비가 평소보다 5만 원 가량 더 나왔다, 근데 지금 수도를 섞어 물을 공급하는 게 진짜 맞냐고 확인해 온다. 물이 끊겨 한 주일 가량 난리도 아니었다며 근데 자기는 장사하느라 그 후 소식을 잘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가, 돈 가치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교통도 불편해요. 이 멀리까지 누가 와 살겠어요. 근데 물이 좋아 사람들이 들어와 있거든요. 친정 어머니도 이따금 오시면, 너그 집은 딴 건 몰라도 공기하고 물은 최고다, 늘 그러세요. 물맛이 달지근하고, 또 빨래를 해도 그렇게 때가 잘 진대요. 빨래하는 재미가 있대요. 저희는 울산에 있다가 공기 좋은 데 찾다가 찾다가 여기 온 거예요. 우리집 애가 목이 안 좋아요. 폐렴도 걸렸었고. 근데 여기서는 감기를 안해요. 그만큼 공기가 좋은 거예요. 저는 이 아파트 참 좋아해요. 근데 물이 다시 나와서 지하수가 복구되었나 했는데, 지금 수도 섞는다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딱 나빠지네요. 너무 찝찝해요. 양 옆으로 흐르는 냇물 소리만 들어도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 딱 싫어지네요."

▲ 대동아파트 주민 정인구 씨. 지하수에 대해 가장 깊은 이해를 가진 주민일 것이다.
수도 설치비를 28만 원 낸다는 불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비용은 결국 공단에서 보상을 해줄 것이다. 우리 물에 왜 수도를 섞느냐, 왜 섞어야만 하느냐, 이런 심정적 저항감이 있었다. 일본은 '30년 물세 보상'을 한다고 또 말해주었다. 반면 우리나라 공단은, 보상을 하려다가 여기 말고 터널노선에 붙은 개곡리와 다른 여러 마을 이장들이 '대동이 당했다, 우리도 당할지 모른다' 하고 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보상해줄 수 없다'고 태도를 돌변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근데 공단이 보상을 제대로 하려면 회사 자체가 망하게 생겼는데, 어째야 하냐고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로 있고, 내가 독하게 대신 말했다.

"보상해야 해요. 국민 세금을 가져다 보상하면, 주민들을 보는 바깥의 여론이 나쁠 테니까, 공단 전체 직원 월급을 차압해야 해요. 자기들이 일을 저질러 놓고 국토를 파괴하고 민폐를 끼쳤는데, 책임도 자기들이 져야죠. 법원에 가서는 물 안 샌다고 말하고, 사실 물 새는 줄 뻔히 알면서 말이죠. 결국 국민을 속였거든요. 진짜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맞아요." 저마다 삶을 둘러싼 많은 조건들이 있지만, 한두 개라도 신성시 하는 것이 있어야 인간은 사는지 모른다. 자식일 수도 있고, 집일 수 있고, 땅일 수 있고, 유품일 수 있고, 개인 소장품일 수 있다. 아주머니한테는 물이었는지 모른다. 그녀 인생에서 하나의 완전성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낙동강한테 왠지 미안했고, 이름이 '강미경'이라는, 속상해 하는 아주머니도 위로하고 싶었다.

"이 기회에, 한국철도시설공단,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지 않겠어요? 호랑이 같은 변호사를 사서라도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합니다. 아주머니, 그래도 참 좋은 물이다 생각하세요. 낙동강물도 한없이 귀한 물 아닙니까. 신앙인들이 믿음으로 살잖아요. 낙동강물이 섞였다 해도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이다 하고 믿으면, 진짜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이 됩니다. 원효스님은 해골바가지 안의 물도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러니 언짢아 하지 마시고요, 물 귀하게 쓰시고, 근데 무엇보다 주민들이 공단 버르장머리나 좀 고쳐주세요."

정인구 씨가 돌아오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 나는 술이 꽤 취햇다. 부위원장이 왔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인터뷰도 사절한다. 나는 다짜고짜 "공단 버릇을 고쳐 주세요"라고 몇 번 말했던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하면, 주민한테 할 소리가 아니었다. 목숨을 바치고 싸운 지율스님도, 법원도, 심지어 청와대도 못 고치는 것을 누가 고칠 수 있으랴.

그러나 토목업체가 이렇게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앞으로 10년이 지난 후에도 또 어디 딴데 가서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하며 못된 짓거리를 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양식있는 독자님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버르장머리,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터널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계곡, 우물이 말라 8000만 원 보상비로 지하수를 뚫었지만, 원래 논인 곳이 밭으로 바뀌고 만 건천 송선리 마을. 계곡수 고갈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1억6000만 원을 받아 양수기와 수도를 개설했던 황악터널 관기리 마을. 공사 중 하루에 1만5000t의 지하수가 유출되어 인근 마을 보상비가 터널 건설비에 육박했던 영천 도수로 터널 등.(이 터널은 고속철도 공사구간은 아님.) 보상을 해주면서도 터널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KBS <환경스페셜>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들, 그리고 토목 시공업자들을 어째야 하나요?

(다음 회 '천성산 유량조사단 통신'은, 천성산 환경공동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 한 분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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