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을 어기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올인하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작금의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오류가 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 때 배우 문성근 씨 등과 함께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결성을 주도하고 노무현 당시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던 이민용 감독이 이런 내용의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21일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가 밝혔다.
영화인대책위에 따르면 이민용 감독은 스크린쿼터 축소와 한미 FTA에 반대하는 뜻에서 지난 1일부터 아들 이삭(13) 군과 함께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에서부터 '국토종단 행군'을 해 왔으며, 지난 19일 서울에 도착한 뒤 청와대로 가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는 편지 글을 전달했다.
이 글에서 이민용 감독은 지난 2001년 노문모 발기대회 때 노무현 당시 후보가 자신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에게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을 상기시킨 뒤 "노무현 대통령은 지켜야 할 중요한 것들은 지켜낼 줄 알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민용 감독은 이어 "한미 FTA는 국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독점자본에 의해 우리 사회의 각 부문이 무차별 공격당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스크린쿼터 축소와 한미 FTA에 대해 "신중히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고 간청했다.
이민용 감독은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 〈인샬라〉 〈보리울의 여름〉의 연출자이며,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이다.
청와대에 전달된 이민용 감독의 편지 글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 - '스크린쿼터 축소 철회'의 염원을 담은 국토종단을 마치며**
노무현 대통령님,
영화감독 이민용입니다. 저는 〈한미 FTA 저지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4월 1일부터 13살 난 제 아들놈과 해남 땅끝마을에서부터 국토종단을 해 오고 있습니다. 조금 힘든 것도 있지만 부자간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행군해 왔습니다. 도중에 들른 독립기념관 방문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끝마친 기분이 들 정도로 보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저지운동을 하고 있은 대추리의 주말집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원래는 마지막 목적지로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에서 146일간 장외 철야농성을 하고 있는 광화문 열린마당의 천막농성장에 도착하면서 종단을 끝낼 계획이었지만, 영화감독의 한 사람으로서 국토종단이라는 이례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갖게 된 솔직한 마음을 국정수행의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님께 서신 형태로나마 전달해드리는 것도 의미있으며 좋은 마무리가 될 것도 같아 송구스럽지만 편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놈의 꿈도 한때는 영화감독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의 많은 아들딸들이 영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영화가 많이 발전되었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무너지면 미국의 막강한 배급사들은 우리의 극장 및 스크린을 압박할 것이고 당연 국내영화들은 스크린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며, 따라서 불리해지는 수익창출 구조는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며 투자위축은 제작작품 편수의 축소로 귀결되어 결국 우리의 영화 산업은 몰락하는 것이 자명해지겠죠. 결국 우리 국민의 아들딸들은 영화에의 꿈도 이루어질 수 없어지겠지요.
얼마 전 대통령님께서는 방송에서 "우리 영화가 이제는 미국과 당당히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해졌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스크린쿼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말씀이셨죠.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의혹이 생겼습니다. 대통령님이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현대에 있어서 영화는 제작의 논리가 아니고 배급 및 유통의 논리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아시면서도 일부러 그러시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영화를 1년에 100여 편씩이나 만들던 중남미의 영화강국 멕시코가 1995년 1월 1일 미국과 NAFTA를 맺자마자 그 해 제작된 영화가 단 네 편으로 줄었고 그 네 편 중 단 한편도 자국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못했다는 사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 대통령님도 다 아실 터인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부족한 제 머리로는 헤아릴 수가 없고 궁금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2001년 가을,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초창기 준비위원 8인(정지영, 문성근,이창동, 명계남 등) 중 한 명이었던 저는 500명 문화예술인들을 결성하여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노문모 발기대회〉를 가졌고 당시 민주당 내 대통령후보 경선 중이셨던 노 후보님께서도 그 자리에 참석해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노 후보님께 "노 후보님은 모든 것이 다 훌륭하신데 문화, 예술 방면에는 관심과 애정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보인다. 그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고, 대통령이 되시면 스크린쿼터는 당연 안심해도 되겠지요?" 라고 개인질문 및 부탁을 드렸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반드시 그러마고 대답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에 와서는 대통령님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십니다.
물론 많은 것이 변했고 국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제가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고, 국제정세 및 외세압박, 또 경제 등의 수많은 난제들이 늘 도사리고 있으며, 또 잘해보려 해도 물귀신처럼 발목을 붙잡고 왜곡하고 음해하는 세력들이 대통령님을 늘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노무현 대통령님은 지켜야 할 중요한 것들은 지켜내실 줄 알았습니다. 실망이 큰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던 이유겠죠.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독점자본에 의해 우리 사회의 각 부문이 무차별 공격당하리라는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논거들에 대해 경제에 문외한인 제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옳겠지요.
하지만 문화사업만 보더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보호, 육성하려고 상당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임무이자 사명은 민족의 정통성 및 정체성의 긍지를 드높일 수 있는 문화사업을 발전시키고 또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잘 보전해 후대에 전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남도를 지나는 중에 한 식당주인이 "전라남도는 이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버렸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설명을 들어보니 "노무현을 찍고 모두 실망해서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 시민권자들이 많아져서 그렇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었습니다. 그토록 믿었고 사랑했던 대통령이기에 더욱 그렇겠지요.
저는 아직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은 국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미 FTA에 올인하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작금의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오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히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두서없고 부족한 말들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언제나 건승하십시오.
2006. 4. 19.
영화감독 이민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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