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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30만원의 '도롱뇽 건설회사'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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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30만원의 '도롱뇽 건설회사'를 아십니까?"

김곰치의 '천성산 유량 조사단' 통신 〈1〉

4월 말부터 대법원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1심,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반면, 환경단체들과 지율 스님 측은 이 터널 공사가 천성산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환경단체 등은 터널 공사로 천성산의 지하수가 고갈돼 고산 습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수 개월간 천성산 계곡수와 인근 지하수가 고갈되는 현상이 관찰돼 터널 공사와 천성산 지하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최근 지율 스님과 몇몇 자원활동가들은 천성산 계곡의 유량 계측을 직접 실시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될 이른바 '도롱뇽 소송'에 앞서 독자들이 주요 쟁점을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이 유량 계측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소설가 김곰치 씨의 천성산 르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 씨의 르포는 그 동안 지율 스님 단식의 배경에 자리잡고 있던 천성산 갈등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복식을 한 지 석 달 가까이 된 지율 스님은 대법원 소송 준비와 유량 계측 때문에 부산과 천성산을 오가고 있다. 그는 단식 후유증으로 여전히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는 상태다. <편집자>

지율 스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4월 5일) 천성산 안적암으로 올 수 있겠는지, 하십니다. "서재호 씨를 놓치면, 혼자 오는 길이 힘들 것"이라고 걱정하십니다. 바로 집을 나섰습니다. 범어사 전철역에서 서재호 님을 만난 것은 낮 12시 20분입니다.

승합차 다마스에 올랐고, 차는 국도를 달렸습니다. 서재호님은 오래 전부터 천성산 홈페이지에 '묘비명'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는 분입니다. 40대 중반 아저씨입니다. 노총각이라네요. 1980년대 초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안적암에 이번에 처음 가신다구요?" 서재호님이 깜짝 놀랍니다. 지율 스님이 안적암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몇 년 전, '생명의 대안은 없다'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거기서 열렸고, 그 토론회를 가끔 스님이 귀하게 돌아보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에 대한 글을 꽤 썼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당신이 어떻게 이제야 안적암에 가는 거냐고 서재호님은 놀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지율 스님을 자주 만나 온 것은 아닙니다. 반년에 한 번, 1년에 한 번 만나더라도 그때그때 참 열심히 만났을 따름입니다. 이제야 안적암에 가게 되었다고 죄송한 마음이 든 것은 아닙니다. 처음 가는 안적암에 기분 좋게 설렙니다.

***안적암을 처음 가다**

20분 정도를 달려간 다마스는 영산대학교 교내로 들어섰고, 교정 한 구석에 안적암과 인근 여러 절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다마스는 표지판을 따라 곧 임도로 들어섰는데, 굴곡이 많은 길입니다. 십여 분 달린 끝에 차는 안적암 앞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모르게 경탄이 나옵니다. 절이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하얀 꽃을 단 매화나무가 보이고, 땅에 바짝 붙어 있는 민들레가 보입니다. 절 마당에 이르는 돌계단 열 몇 개가 적당합니다. 무엇 하나 많은 것도 없고 적은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적당합니다. 절 뒤편 대숲만이 기세가 좋고 더없이 푸르러 보입니다. 절 앞 입간판에 원효 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지율 스님과 잘 어울리는 절이고, 지율 스님이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율 스님은 대웅전 오른편 선방에 계셨습니다. 마루에는 덩치가 있는 사진기가 혼자 나와 있습니다. 방금까지 사진을 찍으신 모양입니다. "저희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둑한 방 안에 지율 스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맞습니다. 안색이 좋아 보입니다. 안적암에 들어가시고 이틀 뒤인가 통화를 하였는데, "음성이 너무 좋으시네요!" 하고 깜짝 놀랐던 생각이 납니다. 부산에 있을 때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제가 산에 와 있잖아요." 지율 스님은 왠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부산 거처에서는 걷지를 못하였는데, 산에 와서 띄엄띄엄 걷기도 하시니, 역시 산은 산이고, 스님은 스님이고, 달리 말해 산에 와 지율 스님은 역시 지율 스님인 모양입니다.

우리는 곧바로 방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할일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재호님과 안적계곡을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천성산에 온 것은, '천성산 유량 민간 조사단' 활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홍성철, 박영관, 손정현, 강지윤, 박중록, 정수희, 이헌수, 박영동, 서재호, 김일례, 박순애, 김재현, 최재석, 박경배님 등 총 15인의 조사단에 저도 속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은 천성산에 와야 합니다. 그때마다 계곡에 내려가 유량이 전날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계측하고 기록하여야 합니다.

세 개의 계측기는 안적암에서 1Km 정도 내려간 곳에 있다고 합니다. 전날 비가 왔습니다. 천성산 거의 모든 계곡에 다 가보았다는 서재호님은 산길에 능숙하십니다. 앞장을 서며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하고 몇 번이나 일러 줍니다. 길바닥만 내려 보며 걸었지만, 때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나무가 가지 끝으로 새잎을 살짝 내밀 때입니다. 아기 같은 새잎을 보노라니, 왠지 '숑숑숑'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저만의 즐거운 착각입니다. 외계와 교신을 하고 있는 듯이 잎이 신비음을 내고 있습니다. 여기 지구 한반도 천성산은 봄이다, 오버. 거기는 어떠냐? 제8의 계절이냐?

***'도롱뇽 건설회사'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우리는 안적계곡의 첫 계측기 앞에 당도하였습니다. 어제보다 유량이 꽤 늘었다고 합니다. 기록표에 끈이 달린 펜으로 이름을 적고 계측한 유량을 적어넣었습니다. 시멘트 계측기는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고 미덥지가 않은데, 부산대 어느 교수님의 자문까지 받아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성계곡 쪽 두 번째 계측기로 갔습니다. 또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재호님과 저는 작은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담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서재호님이 문득 묻는 것입니다.

"곰치 씨, 도룡뇽 건설회사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예?" "3월 중순에 창립된 회사인데, 일주일만에 해산하고 말았죠." "그런 게 다 있었나요?" '도룡뇽'과 '건설회사'는 아무래도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자본금 30만 원으로 창립된 회사였어요." 서재호 님은 이야기 하는 내내 입으로 웃음을 물고 있습니다. "자본을 댄 사람은 지율 스님입니다. 직원은 박영동, 김재현, 박순애, 박경배, 그리고 저, 다섯이었습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유량 계측기 설치공사를 두고 하는, 농기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30만 원으로 이 공사가 되겠습니까. 이틀 만에 바닥이 났어요. 직원들이 자비를 대서 공사를 계속했고, 공사가 끝나고는 몇 십만 원 적자를 기록하고 바로 해체된, 아주 비운의 회사입죠." 박영동님은 '도롱뇽의 친구들' 사람이고, 김재현님은 민주노동당 쪽 분이고, 박순애님은 녹색연합 쪽 사람이고, 박경배님은 부산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합니다.

'도롱뇽 건설회사'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3월 15일이 공사를 처음 시작한 날이랍니다. 부산에서 가져온 공구와 주물틀, 안적암 광에서 꺼내온 시멘트까지 지게와 짐통에 나눠 실었는데, 여성 박순애님을 빼고 남자 넷이 진 지게가 저마다 50㎏이 넘었다고 해요. 안적암에서 1㎞ 이상 되는 이곳까지 지고 와야 했다니, 큰 고생을 하였구나, 싶습니다. 안적암 선방에서 스님이 지도에다 표시해준 정확한 지점에 와서 거푸집을 조립하고 시멘트를 개어 계측기의 기본 모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틀 뒤 다시 현장에 와 시멘트 응고 상태를 확인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다시 나흘 뒤 와서 설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각 지점으로 옮겨야 할 콘크리트 덩어리가 100㎏이 넘었습니다. 남자 네 명이서 들었지만, 무게중심을 찾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길은 험하고, 3m쯤 들어 옮겼다 다시 땅에 놓고 하는 일을 두 시간 넘게 했다고 해요.

저녁 나절, 가사계곡과 대성계곡에는 설치를 하였는데, 마지막으로 안적계곡이 남았습니다. 설치 지점까지 직선거리는 30m, 좋은 길로 돌아가면 120m. 90m의 차이가 얼마나 가공할 거리인지 아는지라 계곡물을 헤치고 가자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깊이 1.5m 물웅덩이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3월 중순이라도 깊은 산, 늦은 오후에는 손만 넣어도 온몸에 전율이 올 만큼 물이 차갑습니다.

박순애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정 넷이 팬티바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목까지 오는 물 속에서 짐 통을 지고 헤엄을 친 끝에 마지막 설치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옷을 입고 막걸리통을 따서 한잔씩 나누는데, 턱이 덜덜덜 떨려 그 좋은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더라는 겁니다.

서재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하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일을 할 때는 추운 줄 몰랐습니다. 무언가에 무섭게 집중할 때는 육체적인 감각 자체가 인식이 되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유량 계측이 빠진 환경공동조사**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가사계곡의 제3계측기로 가서 수량을 재고 기록표에 표시를 하였습니다. 왜 천성산 유량 민간 조사단이 결성되었고, 몇 십만 원이라도 생돈을 들여 이런 계측기를 설치하여야만 하였을까요. 서재호님의 말은, 이 계곡에 고속철도공단에서도 계측기를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계측의 위치를 정하길, 제법 안정된 유량을 유지하는 큰 물웅덩이 중앙에 잣대를 꽂아 놓았다고 해요. 그러면 계곡물이 대폭 줄어도 큰 물웅덩이는 유속이 느려질 뿐 유량 자체는 별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량 변화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세차게 흐르는 좁은 물목에 계측기를 설치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계측기는 하루하루 유량 변화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공단의 계측기는 둔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이치를 공단 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건만, 사실상 왜곡된 유량 데이터를 축적할 뿐인 곳에 계측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서재호님은 말하십니다.

이 외에도, 3개월간의 천성산 환경공동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량조사와 데이터 확립이었는데, (공단에서 이미 설치한 것 말고) 공동으로 새로 계측기를 설치하기로 하였는데, 공동조사 추가합의 과정에서 그 항목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동준 변호사님은 "공동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것이 왜 사라졌는지, 천성산 대책위 쪽 유량 담당 교수님이 누군지, 왜 그 조사를 하지 않기로 공단과 독단적으로 합의를 해버렸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 공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느 자리에서 대단히 흥분하는 것을 제가 직접 보기도 하였습니다.

지율 스님도 성실한 사전·사후 모니터링은 환경영향평가의 기본이라고 믿고 계십니다. 일본에서는 터널공사 도중 계곡의 물이 빠져 1년째 공사가 중단되고 그 대책을 찾고 있는 현장도 있습니다. 그러니 공사 도중 유량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기준이 될 첫 데이터가 지난 환경공동조사에서 나왔어야 하는데, 공동조사의 의의와 이유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합의 항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짐작이 되지만, 다른 용감하고 명철한 기자님들이 밝혀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천성산 유량 민간 조사단이 생겨나고 우리라도 나서서 계곡에 계측기를 설치해야 했던 사정이란 그랬습니다. 일본의 경우 "물은 당연히 빠진다, 어찌할 것이냐"가 터널공사의 기본 전제인데, 고속철도 공단 전문가들은 "절대 물 안 빠진다"고 법정에서까지 자신만만하게 증언을 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한국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 개 계측지점 중 가사계곡의 계측기가 최초의 증언자가 될 것이라고 서재호님은 말합니다. 터널 입구에서 가까운 가사암 밑에서 지금 밤낮없이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한 사람이지만…**

계측과 기록을 마치고 우리는 안적암으로 올라갔습니다. 지율 스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다 같이 다마스에 올라 부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스님은 당분간 부산과 안적암을 오갈 것이라고 합니다. 안적암의 공양보살님이 너무 많은 음식을 쉼 없이 내어놓으셔서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한국에 많은 큰스님들이 있지만, 그 분들이 자기 혼자 도를 깨치고 큰스님이 된 줄 아느냐. 우리 스님, 부처님 되는 공부 잘 되기를,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밥 짓고 찬 만든 수많은 공양보살 할머니 덕분에 큰스님이 나왔지"라고 하신 적 있는데, 저도 그런 눈으로 절간 공양보살님을 보는 편입니다. 지율 스님 밥 먹이는, 사는 집이 부산대학교 근처라는 50대 중반 공양보살 아주머니, 우리가 지율 스님과 담소를 나눌 때, 스님의 일거수일투족, 표정 변화 하나까지 삼켜먹을 듯이 바라보는, 지율 스님을 향한 공양보살님의 사랑이 너무 고맙습니다.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부산의 거처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최근에 독파한 두툼한 환경공동조사 보고서를 펼쳐놓고 왜 이 보고서가 잘못되었는지, 특히 정책결론과 세부보고가 왜 모순된 주장을 내고 있는지, 양측의 보고서 요약 제시에 왜 교묘한 편집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법원에 제출할 텐데, 대법관이 이 자료집에 깔린 음흉한 교계를 알아볼까, 걱정이 됩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습니다.

늦게 집으로 와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 개발사업의 장구한 역사에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의 본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싶습니다. 사실상 그 첫 페이지를 '천성산 유량 민간조사단'이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값비싼 자동 유량측정기가 아닌 볼품없는 시멘트 계측기지만, 매일 천성산 계곡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은 누구도 무시 못 할 '과학적인 전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데 새삼 아쉽습니다. 그 전설의 첫 페이지를 도롱뇽 건설회사가 장식하였는데, 적자를 내고 해체된 것이 그렇습니다. 다섯 분이 다시 의기투합을 해서 재창립을 하고,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하는 건설회사로 자라났으면, 복원과 회복의 이념으로 똘똘 무장한 건설회사가 이 나라에도 생겨났으면 합니다. 꼭 그 회사의 주식을 사겠습니다. 머잖은 훗날, 새만금 갯벌 복원공사도 우리 도롱뇽 건설회사가 맡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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