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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불교계…"수경 스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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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불교계…"수경 스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수경 스님 승적 반납 '충격', 화계사 신도회 "스님 돌아오세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불교계의 환경 운동을 이끌어온 수경 스님이 14일 조계종 승적 반납과 함께 화계사 주지·불교환경연대 대표 등 모든 직함을 내려놓으며 남긴 말이다. 지난 5일, 문수 스님의 추모제 자리에서 "더 이상 저처럼 거리로 나서는 수행자들이 없게 해 달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당장 바랑 지고 산골로 돌아가 촌로로 살겠다"고 눈물로 호소하던 수경 스님은, 결국 자신의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수행자의 길로 돌아갔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대국민 연설에서 변함없는 4대강 사업 강행 의지를 내비쳤고, 수경 스님이 "제발 중답게 살자"고 호통쳤던 조계종단 수뇌부 역시 개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저처럼 거리로 나서는 수행자들이 없게 해 달라"는 스님의 호소는 벽에 부딪혔다. 그를 '큰 스승'으로 모시던 화계사 신도들과 불교·환경단체들만이, 수경 스님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침통한 표정이다.

▲ 수경 스님의 갑작스러운 행보 이후, 불교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만큼 수경 스님은 불교 환경 운동계의 '상징'이었다. 사진은 2008년 오체투지에 나선 수경 스님. ⓒ오체투지순례단

문수 스님 소신공양 이후 큰 충격…화계사 신도들에게도 글 남겨

지난달 31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소신한 문수 스님의 입적 이후, 수경 스님은 "큰 결단을 할 때가 왔다"며 큰 충격에 휩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경 스님은 지난 12일 조계사 내 서울선원에서 열린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그 '큰 결단'을 말해주듯, 수경 스님은 자신의 가사와 장삼을 화계사 법당 불전에 올려놓고 방을 정리했으며, 휴대전화까지 해지한 채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경 스님은 떠나기 직전 측근에게 남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이유, 문수 스님 입적 이후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을 담았다. 스님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난다. 화계사 주지와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대접받는 중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14일 화계사 신도회 누리집에 남긴 '화계사 신도님들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좀 더 구체적인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스님은 이 글에서 "막상 이렇게 떠나려 하니, 화계사 신도님들이 가장 마음이 쓰인다. 40여 년을 출가자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주지 노릇을 해본 화계사가 제겐 특별한 곳으로, 선방이나 거리에서 보낸 것과는 또 다른 보람을 느꼈다"며 "여러분들은 한 시절 저의 스승이었고 도반이었다"고 신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님은 또 "최근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고 제 삶의 문제가 더 명료해졌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벼락을 쳤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대접받는 중 노릇을 하겠는가"라며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며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기로 했다"고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수경 스님은 "이렇게 떠나는 제가 밉기도,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이해해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겠다. 다 지고 가겠다"며 신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 2008년 오체투지에 나선 수경 스님. ⓒ오체투지순례단

화계사 신도회 "결코 스님을 보내지 않을 것"

이 같은 수경 스님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화계사 신도들과 불교환경운동계는 큰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불교환경연대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수경 스님의 거취 파악에 나서는 한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이 단체는 "수경 스님의 결정이 오랜 고뇌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것임을 알기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래도 모든 걸 내려놓으시겠다는 스님의 결정을 차마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스님의 고뇌를 함께 짊어지지 못하고 그만큼 용기있게 실천하지 못한 것을 성찰하고 참회한다"고 밝혔다.

불교환경단체들의 모임인 '4대강 생명 살림 불교연대(불교연대)'도 15일 성명을 발표해 "수경 스님은 떠나셨지만, 4대강 개발 반대와 종단의 혁신은 흔들리지 않는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수경 스님. ⓒ프레시안(선명수)
불교연대는 "우리는 그동안 수경 스님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나누지 못했다"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라도 스님께서 다시 곁으로 오셔서 넉넉한 웃음으로 한국 불교와 생명 살림의 버팀목으로 서 계시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어 "생명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몸마저 불사른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조차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수경 스님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좌절감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라며 "수경 스님은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나누기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각성을 위해서도 아닌, 또 다른 구도자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한 진실한 결단을 내린 것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이 주지로 있던 화계사의 신도들 역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화계사 신도회는 15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주지 스님께 올리는 글'이란 제목의 서한을 발표해 수경 스님의 행보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신도회는 "주지 스님의 갑작스러운 잠적 소식에 화계사 신도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황망하고 당황스러워 순간 먹먹해졌습니다"라며 "화계사 주지직도 신도들이 말만하면 언제든지 내놓겠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이 현실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가셨습니까"라고 호소했다.

신도회는 이어 "정치권은 스님의 진정한 뜻을 외면했고, 누구보다 함께해야 할 종단에서조차 외면을 받으셨다"며 "그러나 스님의 '망신 참회'는 멈추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신도들은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신도들은 또 "화계사 신도들은 결코 스님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수경 스님의 복귀를 호소했다. 신도들은 조계종단에 대해서도 "화계사 신도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수경 스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수경 스님을 주지 스님으로 모실 것을 결연한 의지로 천명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화계사 신도회가 발표한 서한의 전문이다.

주지(수경)스님께 올리는 글

수경 스님! 어디 가셨습니까?
한 장의 글만을 남기고, 홀연히 바람처럼 어디로 가신 겁니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지,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주지 스님의 갑작스런 잠적 소식에
화계사 스님들과 신도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황망하고 당황스러워 순간 먹먹해 졌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순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수경 스님! 어디로 가신 것입니까?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 매스컴은 앞다퉈 스님의 잠적 소식을 알렸습니다.
"불교환경연대 수경스님, 조계종 승적 반납 잠적"
"4대강 반대, 수경스님 화계사 주지, 조계종 승적 반납 잠적"
"수경 스님, 편지 한 장 남기고 잠적"

스님께서 남기신 글 '다시 길을 떠나며'를 바탕으로 많은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
불교환경연대도, 조계종단도, 여러 사회단체들도 긴급회동을 갖고
수경 스님의 충격적인 잠적 소식에 대책 마련에 부심합니다.

주지 스님! 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얼마 전, 저희가 조계사로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스님께서는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천주교 같으면 '순교'에 준하는 일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의 참 뜻이
사회에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고 왜곡되게 전달되어 안타깝다"고 하시며
"우리가 그 분의 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비하며, 자신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화계사 주지직도 신도들이 말만하면 언제든지 내어 놓겠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희는 죄송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지 스님! 성치 않은 몸으로 어디를 가셨습니까?

수경 스님께서는 40여 년을 수행자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주지를 하신 곳이 바로 화계사이고,
그래서 스님께는 특별한 곳이라 하셨습니다.

저희 화계사 신도들에게도
수경 스님은 특별하신 분이십니다.
저희에게는 은혜로운 분이시며,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숭산 스님과는 다른, 다르면서도 궁극에는 같은 모습을 봅니다.

불교의 목적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배웠습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우리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고
우리는 모두 한 생명 공동체이고, 그래서
남을 돕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자연과 생명, 그리고 생태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스스로 힘든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화계사 신도들은 수경 스님을 보면서 또 다른 수행자의 모습을 봅니다.

존경하는 주지 스님!

새만금 개발이 가져올 폐해를 걱정하시며
자연에 대한 성찰과 참회하는 의미로 '삼보일배'를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그 때 무릎 관절과 시력을 다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였습니다.

또, 정부가 4대강 운하를 파겠다고 하였을 때,
스님께서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고자
'강 따라, 물 따라' 순례길에 오르셨고
지리산 하악단에서 계룡산 중악단을 거쳐 임진각 망배단에 이르는
장장 124일을 오체투지를 강행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망가뜨려가며 대지에 엎드려
우리들의 죄업을 대신 참회하는 '망신참회'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스님의 진정한 뜻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할 종단에서조차 외면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망신참회'는 멈추질 않으셨습니다.
깨지고 터지고 그야말로 망진창이가 되신 스님을 뵐 때면
저희는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세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는 곳, 4대강 사업
찬성과 반대, 이해와 의심, 격려와 비난이 난무합니다.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양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가 답답합니다.
마치 우리 사회가 자석의 N극과 S극을 보는 듯 합니다.
서로가 N극이 옳으니, S극이 옳으니 하지만
자석의 N극과 S극이 본래 한 몸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제 몸을 할키고 상처를 냅니다.

주지 스님! 어딜 가셨습니까?

스님께서는 선방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보람을
화계사에서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도량을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었다고 하셨습니다.
눈물나게 고마운 인연이라 하셨습니다.

화계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찰입니다.
그래서 스님들과 신도들 간의 사이는 각별합니다.
언제든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도량입니다.
눈물나게 고마운 인연이라는 스님의 말에
갑자기 목이 멥니다.

주지 스님! 돌아오십시오.

간곡히 화계사 주지 스님으로 돌아오시길 청합니다.
저희 화계사 사부대중은 모두 한 번도 수경 스님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 화계사에 오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처음엔 다소 오해가 있기도 하였지만, 스님께서 화계사 신도들을 향한 진심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스님을 뵈올 때마다 저희들은
이 시대의 모든 갈등과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감내하시며,
'망신참회' 로 지장보살의 화신이 되신 스님을 존경합니다.
주지 스님은 화계사에 많은 은혜를 주신 분이십니다.
화계사 도량 처처에 스님의 숨결이 전해 옵니다.

화계사는 부처님의 법등과 생명의 숨결을 간직한
커다란 아름다운 호수와 같은 사찰입니다.
마르지 않는 감로수가 샘솟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밤이면 영롱하게 빛나는 이슬과 달빛 그림자가 있고,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 세상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화계사의 풍경 소리를 기억합니다.

스님, 수경 스님!
저희들의 주지 스님!
떠나지 마세요.
스님께서 떠나신다니 저희는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연모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와 같겠습니까?

주지 스님!
저희 화계사 신도들은 결코 스님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화계사 사부대중이 모두 모였습니다.
신도회 산하, 각 신행단체장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주지 스님을 그렇게 가시게 할 수는 없다고 결의하였습니다.
화계사 사부대중은 조계종단을 향해 결연한 의지로 말씀드립니다.
화계사 신도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수경 스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수경 스님을 주지 스님으로 모실 것을 천명하는 바이며.
삼세의 불보살님들께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스님, 떠나지 마세요. 돌아오세요.
스님, 보고 싶습니다.

불기2554(2010)년 6월15일
화계사 신도회 일동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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