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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 "대접 받는 중 노릇…자신 없습니다" 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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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 "대접 받는 중 노릇…자신 없습니다" 잠적

문수 스님 소신공양에 괴로워해…조계종 승적도 반납

불교 환경 운동의 '상징'인 수경 스님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사라져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장례를 축소하려는 조계종단을 강하게 비판하며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해온 수경 스님이 14일 화계사 주지직과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고 돌연 잠적했다.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이제 큰 결단을 할 때가 왔다"며 큰 충격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경 스님의 측근인 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 지관 스님에 따르면, 수경 스님은 지난 12일 서울 조계사에 마련된 서울선원에서 문수 스님 추모 행사를 진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지난 13일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수경 스님은 화계사 내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사용하던 가사와 장삼을 법당 불전에 올려놓고는 휴대전화도 해지한 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 불교환경연대 대표이자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 ⓒ프레시안(선명수)
수경 스님은 잠적 직전 측근을 통해 남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난다. 화계사 주지와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돌연한 결정 이후에 쏠릴 세간의 이목에 대해서는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또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 운동을 통해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접받는 중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고도 털어놨다.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언급하며 "저는 죽음이 두렵다. 제 자신의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는 자기 반성의 심경 역시 밝혔다. 스님은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이 같은 돌연한 행보에 대해, 측근들은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달 31일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입적 이후, 큰 충격에 휩싸여 고민하던 수경 스님이 마음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수경 스님과 함께 불교환경연대에서 활동하며 연을 맺어온 지관 스님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환경 운동에 나서지 않고 오로지 수행만 해오던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한 이후, 수경 스님이 큰 충격에 휩싸여 많은 고민을 하신 것으로 안다"면서 "특히 문수 스님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계종단이 보인 태도에 대해 수경 스님이 큰 환멸을 느끼셨다. 그래서 조계종 승적 역시 반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의 입적 다음 날인 지난 1일 서울선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수 스님이 큰 결단을 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나도 이제 큰 고민과 결단을 해야할 때가 왔다"고 말해 착찹한 심경을 내비친 바 있다. (☞관련 기사 : 침통한 불교계 "소신공양은 '죽비'…큰 결단할 때다")

또 수경 스님은 지난 5일 조계사에서 열린 '문수 스님 소신공양 국민 추모제' 자리에서 문수 스님의 장례를 축소하려는 조계종단 수뇌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중답게 살자. 더 이상 저처럼 거리로 나서는 수행자들이 없게 해 달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당장 바랑을 지고 산골로 들어가 촌로로 살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수경 스님 "자승 총무원장, 이명박 하수인 노릇 그만해")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의 입적 이후, 줄곧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았으며, 최근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수경 스님이 측근에게 남긴 글 '다시 길을 떠나며'의 전문이다.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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