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3년 간의 임기를 만료하고 퇴임한다. 그러나 후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10일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강대형 현 부위원장의 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이처럼 공정거래위원회의 후임 위원장 임명이 지연되는 것은 그래야 할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 너무 느슨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이해찬 국무총리가 강철규 위원장의 임기 만료 이전에 후임 위원장 후보를 제청했어야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후임 위원장을 내정해 놓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해찬 국무총리는 최근 3.1절 골프파문 탓에 정신이 없어서인지 후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제청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14일이나 돼야 아프리카 순방을 끝내고 귀국하게 돼 있다.
관가에서는 후임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은 노 대통령이 귀국한 뒤에 역시 임기가 곧 만료되는 한국은행 총재 및 이재용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할 장관들의 후임 인사와 함께 일러야 20일쯤에나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사일정은 주요 정부기관의 책임자 자리를 불필요하게 공백상태로 놔두는 결과를 빚고 있는데다가 정치일정에 맞춘 정치적인 안배인사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3.1절 골프파문이 마무리되지 않고 계속 확산되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이해찬 국무총리의 거취에 따라 차기 공정거래위원장 인선이 예상보다 훨씬 더 늦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위원장이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부위원장이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한 공정거래법 38조 3항에 따라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직무를 맡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위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공정위의 업무가 책임성 있게 제대로 수행되긴 어렵다.
후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는 아직 압축되지 못한 채 강대형 현 부위원장을 비롯해 전직 관료와 교수 등 5∼6명의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강 부위원장 외에 조학국 전 부위원장(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 김병일 전 부위원장(현 김&장 고문), 임영철 변호사, 권오승 서울대 교수,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강철규 위원장은 이날 퇴임에 앞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출자총액제한 제도(출총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거듭 밝혔다.
그는 "순환출자의 폐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며 출총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최근 출총제 졸업기준을 개선한 것은 다소 불합리한 면을 고친 것이지 출총제를 약화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퇴임한 뒤에 "학교(서울시립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전개된 구조조정의 혼란이 남아 있던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3월에 재벌정책을 총괄하는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뒤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마련해 추진해 왔다.
그는 밀가루, 유선통신, 아파트 분양가, 굴삭기, 시멘트 등의 업계에 만연해 있던 카르텔을 '시장경제 제1의 적'으로 규정해 강력하게 대응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끼워팔기'에 대해 단호한 제재조치를 내림으로써 공정위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임기 도중에 하차한 전임 위원장들과 달리 임기를 모두 채우고 이날 퇴임함으로써 공정위의 독립성 확보에도 기여했다.
그는 최근 간담회와 기고문 등에서 "취임 당시 예정했던 일을 대부분 마무리해 큰 아쉬움은 없다"면서도 "지난 3년 동안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경쟁당국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이라고 그동안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는 기업이 오히려 공정위를 '반시장적'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정부 내에서도 공정위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장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공정위의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시장의 경쟁질서 확립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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