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의 계절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회사는 경영자들에게 특별 보너스나 스톡옵션과 같은 보상을 지급한다. 그간의 경영성과에 대한 보답이자 앞으로도 잘 하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경영자 보상의 목적**
삼성전자는 임원들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해 지난해 이익에서 1300억 원을 따로 떼어 놨다. 경영실적이 괜찮으면 2008년 1월에 상무보 이상 임원 680여 명이 1인당 5억7000만 원씩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등기임원 6명은 지난해 1인당 81억6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국민은행과 신한금융은 이달 주총에서 각각 자사 경영진에 모두 94만5000주와 355만9000주의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줄 예정이다.
경영진에 대한 '보상패키지'로 불리는 특별보너스나 스톡옵션은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거나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이를 주주 입장에서 말하면, 경영을 잘 해서 기업의 가치, 즉 주가를 올려달라고 경영진에게 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만져보기도 어려운 이런 보상패키지는 샐러리맨들에게는 '꿈'이기도 하다.
주가로 표현되는 기업가치, 즉 주주가치를 받드는 미국에서는 경영진을 일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로 발달해 왔다. 하나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경영자들로 하여금 긴장하고 주가에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이다.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최근 KT&G를 공략한 것도 기업의 잠재력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SK㈜를 공격했던 소버린이 떠난 뒤에 이 회사의 주가가 종전보다 크게 오른 상태를 유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주요 경영자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특히 스톡옵션은 경영자의 개인적인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수단으로 1990년대 내내 크게 활용됐다.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스너가 스톡옵션으로 13년 간 8억 달러를 챙기는 등 스톡옵션 지불액은 시간이 갈수록 부풀어 올라 한때 미국 전체 기업 지분의 15%에 이르기도 했다.
***스톡옵션의 맹점**
스톡옵션은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돼 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이 인재를 영입하고 그 인재가 자기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스톡옵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문제이지 경영진에게 인센티브로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며 "특히 우리같이 적대적 M&A로 견제가 안 되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스톡옵션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보상은 그 자체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상이 지나쳐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고 '경영자 자본주의'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보면 〈포천〉이 선정한 미국 기업 CEO 500명의 평균 보수는 근로자 임금의 475배로 영국(22배), 캐나다(20배), 일본(11배)에 비해 임원 보수와 노동자 임금 간 격차가 훨씬 크다.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CEO가 종업원의 임금보다 20배가 넘는 급여를 받으면 건전한 기업이 아니다"라고 했다지만 미국의 기업들은 그의 말을 외면하고 있다.
스톡옵션의 대표적인 맹점은 경영자가 단지 주가관리자로 전락하게 한다는 점이다. 스톡옵션이란 고리에 코가 꿰인 경영자의 최대 관심은 단기적인 주가가 된다. 장기적인 경영성과와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닌 분기별 실적 발표에 목을 매는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주가가 높아질 수 있다면 종업원을 과감히 자르기도 한다. 위험한 투자를 늦추거나 오히려 무모하게 위험한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회계부정과 거짓공시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2001년에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의 회계부정에서도 200명의 간부 1인당 평균 700만 달러에 이르는 스톡옵션이 지급된 것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스톡옵션으로 대표되는 과도한 보상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한층 더 큰 저항을 받고 있다. GE에서 잭 웰치 회장이 한 역할은 충분히 인정해야 하지만, 한 사람이 영웅이 되어 과실을 독차지하면 30만 GE 직원들이 흘린 땀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를 지낸 로저 로웬스타인은 〈버블의 기원〉이란 저서에서 "'CEO의 성과에 대해 보상할 필요가 있다'는 개념은 시장의 부추김에 의해 'CEO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며 "그들은 마치 귀족의 작위를 받은 듯하다"고 쓰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최근 "스톡옵션은 한국 문화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최고경영자는 돈 보다는 보람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리경영의 선구자란 말을 듣는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도 "스톡옵션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인 경영자도 마약처럼 갉아먹고 타락시킨다"며 "알게 모르게 사회나 기업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하게 해 회사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과 포스코, 스톡옵션 폐지**
1990년대에 위세를 떨치던 스톡옵션은 엔론, 월드컴 사태 등으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GE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보상 시스템 마련에 나서는 등 미국에서는 주춤하는 추세다. 지난해 중반부터는 회계에서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그룹과 포스코가 스톡옵션을 폐지했다. 아울러 스톡옵션 지급이 이사회 결의 사항이던 것이 올해부터는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그 요건이 강화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일 현재 1년 전보다 32% 늘어난 82개 기업이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있는 등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경영진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보상은 쓰기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은행의 스톡옵션 부여가 논란이 된 것은 은행이란 산업의 특성상 이것이 자칫 독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석승훈 교수는 "스톡옵션을 줬다고 해서 순기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안정성이 중시되고 부채비율이 높은 금융업의 특성상 금융업에서는 스톡옵션의 역기능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사외이사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은 감시자인 사외이사와 감시를 받아야 하는 경영진을 '초록동색'의 이해관계로 엉키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기업을 활력 있게 만드는 경영자의 건강한 이기심은 고무될 필요가 있다. 다만 이기심과 탐욕의 경계가 항상 모호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 개인이 일생 동안 도무지 다 쓸 수도 없는 엄청난 보상을 매년 받아야만 경영자로서 열성을 발휘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너무 오만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bonghyun.lee@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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