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폭력, 살인, 약속 위반, 기회주의적 행동 등의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고 주장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세상에 나온지 500년이 지났다.
최근 이런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현대경영학을 통해 재해석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대기업 인사관리에 적용해 일종의 '성공술'이나 '처세술'로 가공한 책들만 해도 줄잡아 수십 권이다.
***처세서인 동시에 '풍자서'**
페터 놀과 한스 루돌프 바흐만의 〈마키아벨리, 회사에 가다〉(김이섭 옮김, 황금가지 펴냄)도 이런 책들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은 자못 진지한 태도로 마키아벨리 식 처세술을 제시하는 다른 책들과 달리 '풍자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인 페터 놀은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영 전선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아주 괴상하다"며 "이것을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려니 어쩔 수 없이 풍자가 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 회사에 가다〉는 상층 경영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파워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낱낱이 까발린다. 또 대기업 경영진의 생리를 날카롭게 분석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저자인 페터 놀은 마키아벨리에 정통한 스위스의 법률학자로 취리히 대학에서 형법학을 가르쳤고, 독일의 대안 형법 기초를 설계하기도 했다. 공저자인 한스 루돌프 바흐만은 독일 출신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특히 대기업 경영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로 유명하다.
***늙은 생쥐들의 '게임의 법칙'**
페터 놀과 한스 루돌프 바흐만은 대기업의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50대 경영자들을 '늙은 생쥐'라고 부르며, 이들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시장경제의 적이라고 넌지시 주장한다. 늙은 생쥐들은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시장을 개척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은퇴에 대비해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꼭 필요한 조치마저도 미루기 때문이다.
1979년 당시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였던 크라이슬러가 몰락한 것도 이런 '늙은 생쥐'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미룬 탓이다. 당시 크라이슬러의 경영진은 오일쇼크로 유가가 치솟는 것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기름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대형 자동차의 생산을 지속했다. 대부분이 50대였던 이들은 크라이슬러에 닥칠 위기를 감지했으면서도 구조조정 시 예상되는 5년 간의 적자, 주가의 급락, 정리해고 등을 책임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늙은 생쥐'들은 창의적인 '멋쟁이 새'나 리더십 있는 '검은 늑대'를 경계하고, 이런 능력있는 사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헤드헌터들과 결탁한다. 창의적인 인물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알려진 헤드헌터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늙은 생쥐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한 기업에서 폐기 처분된 늙은 생쥐를 다른 기업으로 보내 재활용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50대 생쥐들의 법칙'이 대기업뿐 아니라 은행, 정부, 국회 등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건전한 기회주의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 될 것"**
〈마키아벨리, 회사에 가다〉는 "기존 질서와 권력집단에 적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 건전한 기회주의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조언들은 법률에 위배되지도 않는다.
이 책이 직장인들에게 전하는 구체적인 처세술은 △회사는 문제가 터지면 희생양을 뽑는다. 후보에 들지 마라 △섣불리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서지 말라 △사내 동맹과 외부 인맥으로 철밥그릇을 마련하라 △위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사내 입지를 구축하라 △외부 전문가를 끌어들여 그들의 평가서를 유리하게 이용하라 △라이벌을 도와주는 척하며 함정에 빠뜨려라 △지적을 받으면 현란한 통계수치를 들먹이며 방어하라 △괜히 멋을 부려 '늙은 생쥐'들의 눈 밖에 나지 말라 등이다.
'일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경영자를 꿈꾸고 있는 이 땅의 '회사 인간'들은 〈마키아벨리, 회사에 가다〉를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의 원제는 〈Der Kleine Machiavelli〉(2001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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