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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어떤 '희망의 쟁기질'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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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어떤 '희망의 쟁기질'을 할까?

〈황해문화〉 50호 출간…'이 땅의 50인에게 듣는다'

1993년에 창간한 〈황해문화〉가 50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1993년에 첫 호가 나왔으니 13년 만이다. 게다가 모든 것을 독점한 서울이 아닌 '주변부' 인천에서 이런 잡지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발행처 역시 예사롭지 않다. 1980년대 중반 인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 사업을 하기 위해 출범한 새얼문화재단은 김명인 편집주간의 말대로 "정치적·사상적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품격 있는 진보적 계간지 한 권을 낼 만한 문화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뒤에는 인천 시민들의 힘이 있었다.

이런 〈황해문화〉의 50호도 남달랐다. 최근 발간된 50호는 기존의 잡지 체계를 잠시 유보하고 이 땅에 발 딛고 선 50인에게 지면을 내주는 것으로 스스로 다름을 입증했다.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라는 제목과 '〈황해문화〉 50호가 이 땅의 50인에게 듣는다'라는 부제를 내세운 이번 호는 남녀, 노소, 좌우, 빈부, 도농, 노자(勞資)를 가리지 않고 2006년 봄, 이 땅에서 부대끼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이웃 50인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묻지 마라 갑자생'은 20세기를 어떻게 보냈나?**

그 첫 목소리의 주인공은 20세기 한반도의 온갖 고난을 삶 전체에 새긴 1924년 갑자생 곽귀훈 옹(翁)이다. 곽 옹은 1944년 8월 징병돼 히로시마에서 일본군으로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1945년 8월 곽 옹은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가 된다. 이미 1959년 8월 7일부터 4회에 걸쳐 〈한국일보〉에 피폭 체험을 연재하기도 했던 곽 옹은 8월 6일 오전 8시 15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B29 폭격기 두 대가 선회하며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근사한데!' 하며 머리를 숙이는 찰나,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온 천지를 뒤덮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며 세상은 암흑세계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온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달리면서 이것은 필히 미군이 휘발유를 뿌리고 소이탄을 투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곽 옹은 해방 후 교편을 잡는 한편으로 원폭 피해자 운동의 전면에 나선다. 한일 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만들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이외의 나라에 거주하는 피폭자들에게도 사죄와 피해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런 노력은 수십 년 만에 결실을 맺어 1998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2005년 12월 18일엔 마침내 최종적으로 승소했다. 고국마저 외면한 상황에서 진행된 실로 기나긴 싸움이었다. '묻지 마라 갑자생'의 20세기는 이렇게 지나갔다.

***대한민국이 지긋지긋한 사람들, 대한민국의 자화상**

한편 올해 서른이 되는 김신우(가명) 씨는 21세기의 첫 몇 년간을 이른바 '백수'로 맞고 있다. 전문대학을 나오면 누가 취직이 잘 된다고 그랬던가. 취직을 위해 긁어모은 입사 원서에 적힌 "4년제 대학 졸업자(졸업 예정자)"는 절망을 부추긴다. 오랜 방황 끝에 어머니의 소망대로 다니던 공무원 고시학원을 그만둔 지도 어느덧 반년이나 됐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지만 할 말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던지는 똑바로 처신하라는 충고에 발끈한다.

"양극화? 청년실업? 그래 내가 잘해야 했다고? 그 말은 지금 내가 이 모양인 것이 다 내 잘못이란 말이야? 그래, 내 잘못인 것은 맞겠지. 하지만 전부가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억울하다고.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무슨 3D 업종 같은 걸 기피해서 청년실업이 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해. (…) 사회에서 무언가 대대적으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개인 탓만 할 수 없는 거야. 그래, 실업대책이라고 공무원 정원만 늘려놓아서 어쩌라는 거야? 나같이 나이 서른 먹고 전문대 나온 인간들은 이력서부터 제쳐놓는 환경이 다 나 혼자만의 잘못이냐고!"

김신우 씨가 뒤늦게 팍팍한 세상과 대면했다면 박찬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태어나자마자 세상과 불화한 경우다. 선천성 척수신경마비로 태어나 날 때부터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가진 박 소장은 소외와 차별 속에서 지난 35년을 살아 왔다. 가장 한스러운 것은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한이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특수학교에 가지 못 했던 박 소장은 취학 연령이 지나서도 17살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학교 문턱을 넘지 못 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그는 노들학교에서 다른 장애인을 가르치는 야학 교사를 하면서 장애인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그는 자신에게 다시 35년이 남아 있다면 그 기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당당히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장애인을 인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다 없애고 장애인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일하고, 함께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함께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장애인 복지가 아닐까? 장애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황우석 박사의 기적 같은 줄기세포가 아니다. 당신과 동네 포장마차에서 줄기세포가 필요한지를 토론하며 취하는 것이다."

***쇠로 만든 현실…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올해 열일곱 살이 된 윤선영 씨 역시 대한민국에 할 말이 많다. 대학 진학을 통해 꿈을 이루기 위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이제 차라리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꿈을 이루기 더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는 모두 적이고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지금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회원으로 청소년 권익찾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어른들이 만든, 아니 공부 잘하는 일부 어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대한민국 사회. 겉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이상한 교육 제도. 자기들과 똑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뽑아 자기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그대로 행하게끔 만드는 모습. (…)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밝은 미래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또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고통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긋지긋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이 스물셋에 자청해 새내기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도 있다. 가족과 형제를 버린 '죄인 아닌 죄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2002년 탈북한 뒤 2003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지영(가명) 씨. 서 씨는 올해 한 대학의 경제학과에 입학할 예정이다. 하지만 남과 북 어디서도 반가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탈북자의 현실은 이 새내기 국민의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분단된 땅에서 결코 무시하면 안 될 탈북자들이 훌륭히 자리 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대한다. 나는 그 속의 소박한 일원으로서 통일될 그날을 기다리며 상상 속의 나 자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꿈은 이루어질 것이니 항상 새것에 도전하며 용기를 잃지 않길 스스로에게 채찍질해본다.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생각하며…."

***'정직한 절망'이 필요하다**

마지막 목소리의 주인공은 〈환경과생명〉 장성익 편집주간이다. 그는 '지율'과 '황우석' 아주 대조적인 두 사람을 끄집어내며 우리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이 일구어낸 가장 드높은 성취는 무엇일까? 급속한 산업화와 눈부신 경제 성장인가? 과연 성장과 발전과 개발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가? 현재의 모든 생태적·사회적·인간적 위기의 실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지율의 경우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다른 생명의 죽음을 멈춰 세우고자 하는 극한의 역설이고, 황우석의 경우는 생명을 죽이고 훼손하고 공격하고 조작하는 기술로 '한 탕' 하고자 했던 범죄 행각인 셈이다. (…) 그러니까 결론부터 앞질러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은 삶과 생명과 평화를 향한 비상이 아니라, 갈수록 죽음과 파괴와 폭력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추락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장성익 주간은 섣부르게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절망의 구렁텅이에 더욱 깊이 빠질 때 비로소 희망의 기운이 솟아날 것이라고 여긴다. 2006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은 또 얼마나 더 큰 절망을 맛볼 것인가? 그리고 그 '정직한 절망' 가운데 어떤 '희망의 쟁기질'을 시작할 것인가? 〈황해문화〉 50호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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