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금감위 이어 여당 의원도 "금산분리 완화해야" 주장**
13일 오전 열린우리당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의 김종률 의원은 PBS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에 출연해 "국내 기업들이 해외자본에 비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금산법 개정안, 금융지주회사법 등을 포함해 앞으로 재경위와 당정 간에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의원은 "외환은행, LG카드, 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대형 금융회사들이 조만간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올 것인데 금산분리로 인해 국내 기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해외자본의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으며, 타당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김 의원의 주장은 최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금산분리의 원칙을 재고해야 한다고 언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이라 눈길을 끈다.
9일 윤 위원장도 "워크아웃을 끝내고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며 "금산분리의 원칙을 지키면 국내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산법 개정안의 통과는커녕 현행 금산법마저 완화하자니…**
정부는 1997년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도입해 처음으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세웠다. 금융업체의 자본은 업체에 돈을 맡긴 고객의 소유인데, 재벌 총수가 계열사를 지배하는 데 그 돈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금산법의 처벌규정상 결함으로 인해 삼성을 포함한 일부 재벌들이 금산법을 어겨도 제재할 방법이 없자, 지난해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 등을 중심으로 금산법 개정안 입법이 추진됐다.
금산법 개정안은 금융회사가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다른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소유한 경우 초과지분을 강제 매각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의 지분을 각각 25.6%, 7.2% 소유하고 있는 삼성의 금융 계열사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 직격탄을 맞게 돼 삼성의 소유지배구조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런데 국회에서 금산법 개정안 입법이 지지부진하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의 로비'가 작용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최근 8000억 원의 사회환원(기부) 결정을 발표함으로써 '반(反)삼성 여론'을 달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 깨지면 재벌의 기형적 소유지배구조가 강화될 것"**
최근 금융당국과 여당 의원이 나서서 금산분리의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국내 우량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국내 기업들에 줘야 한다는 뜻에서라기보다는 삼성그룹에 삼성카드,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를 통한 현재의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를 유지하도록 허용해주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이선근 위원장은 10일 '금산분리 원칙, 지켜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해 "윤증현 금감위원장의 말은 결국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를 허용하자는 주장과 마찬가지여서, 현실화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전망"이라며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재벌이 소유한 대부분의 금융 계열사들이 주력회사에 출자해 순환출자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등 기형적 소유지배구조의 주요 축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의 5개 금융 계열사는 그룹 내 총 출자금의 52.5%인 1조2756억 원을 27개 계열사들에 출자했다. 이는 "재벌의 금융 계열사를 통한 총수 지배권 불리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벌의 금융업 진출 제한을 푼다면, 은행에 예치된 고객의 자금이 생산적 투자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용 자금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라며 "윤 위원장은 제도적 보완책을 논의하겠다지만, 최근 삼성그룹과 두산그룹에서 나타난 총수 일가의 전횡에 대해 정부 당국이 소극적인 제재에 그친 점을 본다면 립서비스에 불과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재벌의 금융 계열사는 시장경쟁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한편 금융연구원 금융정책 및 제도팀의 김동환 팀장은 12일'주요 기업집단의 계열구조와 그 특징: 효율성 측면'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집단은 금융회사 등의 적은 지분 출자를 통해 다수의 계열사를 소유·지배하고 있어 효율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며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이나 빼돌림에 대해 경쟁법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팀장은 보고서에서 "삼성그룹과 동부그룹 등은 금융 계열사를 매개로 복잡한 형태의 출자구조를 통해 금융 계열사와 산업 계열사 각각이 교차소유되는 경향이 있고, SK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에는 산업 계열사가 금융 계열사를 소유·지배하는 구조를 보였다"고 밝혔다.
김 팀장에 따르면 이같은 경향에 따라 각 금융업종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생명보험사와 카드사의 경우 피출자 계열사로부터 부당한 투자이익을 얻거나 부당지원을 통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계열사 간 부당지원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손해보험사는 시장점유율을 높여 독과점 이윤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증권사도 출자지분의 인수 등과 같은 계열사 지원으로 손실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것**
이렇게 금융산업의 구조가 취약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가 아니라 '금산분리 원칙의 강화'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 느슨해질 경우 재벌의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제1 작동원리인 시장경쟁마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정부여당은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염려하고 있다.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국내자본에 마땅히 부과해야 할 규제를 풀어 '하향평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외자본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완화해준 규제를 강화하는 '상향평준화'를 하는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는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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