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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있는 면죄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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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있는 면죄부는 없다

〈기자의 눈〉 삼성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듣고

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안기부 X파일 사건,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배정 등과 관련해 국민들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 8000억 원 상당의 사재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삼성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삼성에버랜드 CB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재용 씨에게 헐값에 배정되는 과정에서 삼성 비서실이 개입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 두 가지 사실만 놓고 보면, 이 회장의 사재 기부 발표는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 수위가 높아지자 삼성이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라는 분석에 일단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간 삼성이 구축해 온 '비밀스러운 기업집단'이라는 이미지 탓인지, 삼성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보다 고차원의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부당이득 환원하는 대신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는 덮으려고?"**

그동안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돼 온 삼성의 문제점들을 꾸준히 비판해 온 시민단체들과 정계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번 발표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가리는 호도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건희 회장이 여러 현안들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개선을 약속한 것은 의미있는 새로운 변화"라면서도 "그러나 삼성은 이재용 씨에서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에 대해서는 그 해결책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이재용 씨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주식은 그룹 지배권 승계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환사채 취득 당시의 부당이득을 환원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늘 삼성의 발표가 삼성에버랜드 CB 불법증여 사건과 X파일과 관련된 특검 실시 여부 논의 등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사안에 어떠한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삼성이 삼성에버랜드 CB 증여 과정에서 얻은 부당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면서 삼성공화국 논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삼성과 검찰의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건희 회장이 지난 5개월 동안 미국과 일본 등에 머물면서 구상해 왔다는 '반(反)삼성 기류에 대한 대응책'이 이날 모습을 드러내자 일각에서는 '삼성과 검찰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시작됐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검찰이 삼성에 대한 수사를 가속화해 '삼성에 약한 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삼성과 검찰 간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을 해소한다. 삼성은 8000억 원의 '선심성' 기부금을 제시해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반(反)삼성 정서'를 누그러뜨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 검찰이 이건희 회장을 소환하면 정재계와 언론이 나서서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삼성에 대해 지나친 처벌을 하면 국가경제가 위태로워질 뿐 아니라 한국의 국제신인도가 악화돼 해외자본 유치가 어려워진다'는 여론을 형성한다. 그 결과 이 회장은 무혐의 처리되거나 벌금형 등의 가벼운 형량만 선고받는다. 한편 삼성이 획기적인 신 반도체기술 등을 내놓으면서 국민들 사이에 '역시 삼성이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 모든 것들이 진행되는 사이 이재용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무사히 마무리된다."

얼핏 논리적 비약이 심한 시나리오 같지만, 그 속에는 삼성과 정부, 언론의 상호관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감이 깃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법행위는 8000억 원은 물론 8000조 원으로도 용서 못 받아**

이날 삼성의 발표에 대한 국민의 반응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이 뒤늦게나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나"하는 기대감도 보였지만, "그동안 기업의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저질러 온 삼성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 있나"하는 의구심도 만만치 않게 보였다.

이 회장이 본인의 재산을 털어 내놓겠다는 8000억 원은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가져보기 힘든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아주 큰 액수다. 그러나 그동안 삼성이 정관계에 대한 불법로비 등으로 한국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용서받고 이 회장 일가의 삼성 경영권 세습을 보장받기 위한 '국민들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는 턱없이 적은 돈이다.

민주노동당의 박용진 대변인은 7일 삼성의 발표와 관련해 "국민들이 이건희 회장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을 우롱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 발표로 삼성은 또다시 국민을 우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5개월 간의 구상 끝에 내놓았다는 8000억 원짜리 대책에는 법을 지키고 국민을 존중하겠다는, 상식적으로 기대돼 온 내용은 빠져 있다. 삼성이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등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한 8000억 원이 아니라 8000조 원을 내놓아도 국민의 용서와 이해를 구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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