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번에는 스님과 만나야 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번에는 스님과 만나야 한다"

[기고] 비관적 세계관에 전해진 '초록의 공명'

지난해 10월 말 핸드폰이 울려 습관적으로 확인해본 발신자 창에서 '지율 스님'을 확인한 순간 미안함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전화를 받자 "어디냐"고 물으셔서 서울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울산이면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데…"라고 하셨다. 지금 서울 가는 길이고 울산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했더니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러면 이메일로 연락하겠다"고 하셨다.

평소의 스님 답지 않게 뭔가에 쫒기는 듯한 느낌이 목소리 끝에 묻어 있었다. 그러고 한 달쯤 뒤에 스님의 단식이 100일 가까이 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쿵 하고 무언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 차를 돌려서라도,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서 만났어야 했다는 후회가 한없이 밀려왔지만,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가슴만 타들어갔다.

천성산 관통노선 반대라는 입장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스님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조차도 우리 지역 울산에서는 시선이 곱지 않다. 천성산 터널공사가 늦어지면 울산의 고속철도 개통이 그만큼 늦어질 것인데 지역 국회의원이 오히려 그 장단에 놀아나느냐는 소리도 들렸다.

스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보도를 보고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었다. 속가의 동생 되는 분이 받으시기에 말씀을 드렸더니 전화를 바꾸어 주셨다.

"스님,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제가 오히려 죄송하지요."

스님의 목소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당신 앞에서 우리는 왜 이리 초라해지는지요.

2006년 한국사회에서 스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안타까움'이라는 공통분모를 빼고 보면, 차가운 시선들이 만만찮다.

"조직적 관점이 너무 없어. 운동을 혼자 하는 거야?"
"극단주의는 결코 해법이 아니야!"
"이제는 누구도 단식투쟁을 최후의 투쟁수단으로 쓸 수 없을 거야."

우리가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사이에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ESSD)'은 어느새 21세기 지고지선의 가치에서 누구나 이야기하는, 심지어 세련된 개발론자조차 즐겨 쓰는 공용어가 되어버렸다. 천성산이 허물어지고 새만금은 벌써 죽어버렸다. 성장을 배려하지 않는 환경주의자는 수구·극단으로 몰리고 있다.

스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스님이 2차 단식 중이던 2004년 8월경 청와대 앞에서였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말 맺음, 가녀린 체구에 깊고 맑은 눈빛은 스님이 '큰사람'임을 느끼게 했다.

스님이 단식 50일을 넘겼을 때 광화문 근처의 한 조용한 찻집에서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면서 나의 비관적 세계관과 스님의 '초록의 공명'이 어느 지점에선가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정부와 합의를 보고 의원회관으로 오셨을 때, 나는 그냥 가시려는 스님의 발걸음이 못내 섭섭해 강권하다시피 죽집으로 모시고 가서 함께 죽 공양을 올렸다. 따지고 보면 스님의 건강이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해서였으리라.

나의 의원직 상실 위기가 거론되던, 대법원 판결을 앞둔 작년 9월 초에 전화를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잘 되어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잘 안 되면(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천성산 살리기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라며, 일거리 준비해 주셔서 고맙다고 웃으면서 화답했다. 혹 지치고 쉬고 싶을 때 내원사 위쪽 암자에 언제든 오라는 말씀에 나는 꼭 기회를 만들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얼마 전 당내 경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환경문제에 관한 후보자의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 망설임 끝에 오랜 숙제를 말로 표현해 보았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의제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빛이 바랜 유물이 된 것 같다. 이제 환경·생태에 관한 새로운 기준과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최소한의 개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과거에 운동을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이 시골로, 농촌으로, 자연으로 들어가 산다. 얼핏 보면 폼 나게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꾀죄죄하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들을 '도피적 자연주의'라고 하는 규정에 공감하며 냉소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오랜 화두가 내려준 중간 결론은,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가는 밑바탕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일산에 계신 스님을 만나러 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스님의 동생으로부터 어제부터 치료를 받고 계시고 오늘 다른 곳으로 옮겨 가실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스님의 동생은 방문객 면담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치의의 의견도 전해 주셨다. 스님을 직접 뵌 것보다 진심으로 더 홀가분한 심정으로 돌아 나왔다. 동행했던 노회찬 의원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스님께서 회복식을 시작하셨다는 소식이 들린다. 조만간 찾아뵙고 나의 비겁했던 태도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비관적 세계관과 스님의 '초록의 공명'이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다.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