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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과학의 유착은 치명적 정당성의 위기 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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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과학의 유착은 치명적 정당성의 위기 낳아"

'황우석사태 토론회'…"노 대통령은 왜 책임 회피하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초래할 파장을 따져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최근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뜻밖에도 과학기술 정책에 있어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이었다.

***"황우석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박정희 패러다임' 탓"**

생명공학감시연대가 18일 오후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관 강당에서 연 '황우석 사태로 본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김환석(국민대 교수) 시민과학센터 소장은 "황우석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띄우는 정책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산물이지만 그런 정책의 뿌리는 박정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 과학기술은 국가 목표인 경제성장의 도구이고, 따라서 과학기술자들은 '조국의 선진 근대화에 기여하는 핵심적 역군'이며,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과학기술자들은 오로지 전문 지식과 기술만 열심히 추구하면 될 뿐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영향은 몰라도 된다는 것이 우리 과학기술 정책의 지배 패러다임이었다"며 "이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과를 훨씬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과학기술 분야에도 어느덧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단지 한 과학자의 개인적 동기에 의한 부정행위나 스캔들이 아니라 이런 과학기술 정책에 있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초래한 대표적 병리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황우석 교수가 정부와 언론 및 대다수 국민에게서 환호를 받았던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이런 박정희 패러다임을 누구보다 잘 체화했으면서도 세계적 업적으로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했던 과학자가 다름 아닌 황 교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 교수 본인 역시 이런 박정희 패러다임을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끌어 모았다"며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한 다음 귀국 회견에서 '미국의 심장부에서 생명공학의 고지 위에 태극기를 꽂고 돌아오는 길이다'라는 발언이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한 다음 기자 회견에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력과 과학권력 유착의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줘"**

김 소장은 이어 "문제는 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지속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의 발전 단계와 지배 구조의 변화를 함축하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최장집 교수는 최근 황우석 사태에 대해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민주주의 퇴행하는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은 결과라고 지적했다"며 "하지만 이번 사태는 노무현 정부의 자의적이거나 우연적인 정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기울어진 현재 성장 모델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생산체제'를 위해서는 성장을 주도할 동력 산업이 필요하다"며 "현재 그것은 반도체를 필두로 한 정보통신(IT) 산업이고 미래의 후보로 이 정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줄기세포 기술을 포함한 생명공학(BT)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과학기술자의 위치와 사회적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며 "하층에 속한 대다수 과학기술자들의 고용 조건과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열악해진 반면 국가-자본 권력과 밀착된 최상층의 과학기술 엘리트들은 해방 이후 처음으로 지배 권력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장집 교수가 언급한 '정부-경제관료-삼성'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동맹의 핵심에 진대제, 황우석, 박기영, 오명, 이희범 등 과학기술자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은 그 한 예"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불행히도 이번 사태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지 않은 채 정치 권력과 과학 권력이 유착할 때 어떻게 쉽게 부패의 함정으로 빠져들 수 있는지, 또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동맹'이 얼마나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권력 엘리트에 편입되고자 열망한 한 과학자의 야심이 부정행위로 연결될 때, 그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지배 권력은 곧바로 치명적인 정당성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과학기술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사태 원인 야기한 노무현 대통령은 왜 침묵하나"**

한편 토론자로 나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김환석 소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꼭 책임 져야 할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다"며 최근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감싸는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 국장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생명공학(BT) 육성, 의료 산업화 정책을 상징하는 핵심 인물이 바로 황우석 교수였다"며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 본인은 지난 두 달간 중요한 국면마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 대해 '짜증스럽다'는 둥 '이만 덮자'는 둥 훼방을 놓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진실이 상당히 규명됐는데도 이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당장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걸맞는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 국장은 "더 나아가 황우석 사태를 초래한 생명공학(BT) 육성, 의료 산업화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회적 토론도 없이 잘못된 근거에 기반을 둔 현재의 정책은 전반적으로 재고되고 철회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검토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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