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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마지막 희망의 원력(願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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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마지막 희망의 원력(願力)…"

[기고] 죽음을 목전에 둔 지율스님을 뵙고

지율 스님이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이 넘었다. 지율 스님은 하루에 2~3번씩 맥박을 점검받는 것 외에는 혈액 검사를 포함한 모든 검사와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9일 저녁 지율 스님을 방문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지율 스님은 이미 정상적인 인터뷰가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당시 지율 스님은 수 차례 "천성산 터널 문제가 대법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아직 할 일이 많은데 허망하게 가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라"는 말만 반복했었다.

다시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16일 현재 지율 스님의 건강상태는 더 악화됐다. 이를 보다 못한 천성산대책위와 천성산을 위한 시민종교단체연석회의 등이 16일 오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율 스님의 몸 상태를 언론에 공개하고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걸고 알리고자 하는 천성산 터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프레시안〉은 15일 지율 스님을 직접 병문안한 경상남도 밀양 밀성고등학교 이계삼 교사가 보내온 글을 소개한다. 이계삼 교사는 2003년 지율 스님의 첫 번째 단식 때부터 천성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율 스님과 함께 해 왔다. 〈편집자〉

나는 어제(15일) 일산 동국대 불교병원에 있는 지율 스님을 뵈었다. 병실 입구에는 표찰을 달고 귀에 리시버를 꽂은 기관원(병원 측은 지율 스님의 안전을 위해 자체 고용한 경비원이라고 해명했다)인 듯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병실은 고요했다. 넓은 창으로 환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 햇살을 받으며 식물처럼 앙상하게 메말라버린 한 육신이 정물처럼 누워 있었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스님의 육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설사 강제치료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주사바늘을 꽂을 자리조차 없어 보였다. 첫 번째 단식을 제외하고 지금껏 스님의 단식 현장에 모두 가서 뵈었지만 지금처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죽음의 목전에 가 있는 지율 스님**

나는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스님이 해 온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운동에 함께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스님과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나에게 스님은 "괴로움을 주지만 고마운 스승"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스님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전문 역량이 없었다. 또한 만만치 않은 생활의 무게를 짊어진 일상인이었다. 나는 그저 스님의 고행을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으로 바라보는 많은 시민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단식 현장이 아닌 자리에서 뵌 스님은 참으로 명랑하고 밝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생기가 넘치는 분이었고, 나는 그런 스님이 좋았다. 나는 천성산 문제가 기적처럼 잘 풀려서,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스님이 앞으로는 일상의 수행자로, 실천가로 돌아와 어리고 약한 것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렇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스님은 한 인간으로서 범인과는 분명히 다른, 밝고 맑고 선한 기운이 넘치는, 또한 탁월한 예술적 직관을 가진, 정말 드물게 보는 좋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스님은 다시 죽음의 목전에 와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그런 스님을 바라보기조차 지쳐버린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 할까. 안타까운 질문은 지금도 떠나지 않고 내 머릿속을 맴돈다.

***100일 단식 후 1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작년 초, 100일 단식을 하면서 3개월 간의 공동 환경영향평가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 적어도 내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는 이제 더 할 수 있는 실천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악화일로를 탔다. 스님의 단식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 언론들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가당치도 않은 '3조 원 손실론'이 공공연하게 유포됐다. 그들은 스님을 몇 조 원의 세금을 낭비하게 하는 '요승'으로 몰아갔다.

스님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똑같은 내용의 욕설 수십 개가 순식간에 사이트를 도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누군가의 사주인 게 분명했다. 그들은 한 비구니에 대해 인간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동조사 기간 내내 반칙을 거듭했다. 날조된 악의적인 선동으로 가득 찬 자료집을 버젓이 배포했고, 공동조사 발표도 하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게임은 끝났다"고 언론에 공표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최근까지의 일이다.

그렇게 스님은 지난 4년여 세월 동안의 모든 약속을 정말로 '순진하게도' 추호의 의심 없이 믿었다가, 다시 언제나처럼, 그렇게 배반당했다. 이렇게 지내온 게 스님의 지난 4년 간 세월이었다.

***세상의 침묵, 지율 스님의 침묵**

그리하여 스님은 지난 9월 천성산 공동조사위에서 홀로 나와 5차 단식에 들어갔다. 스님은 이제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이 세상은 스님의 절박한 기도에 공명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KTX를 이용한 고객의 숫자가 벌써 5000만 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지난 1년 사이에 서울과 부산을 2시간40분에 주파하는 '속도'의 안락과 편익을 충분히 맛보았다. '천성산? 에이, 그냥 나라에서 하자는 대로 어서 남은 구간 끝내자. 뭘 그렇게 어렵게들 하나….' 이런 마음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천성산 말고도 한국 사회에는 늘 굵직굵직한 일들이 줄을 이었다.

농업에 내려진 '사망선고'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했다는 착하고 어진 농사꾼 한 명과 70대 가까운 어르신 한 분이 하루에 한꺼번에 경찰에게 맞아서 죽었어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 일로 자기 우두머리가 책임을 지는 것마저도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여성에게 무려 네 번이나 난자를 채취했다는, 이제는 세계 과학사에 기념비로 남을 '국민 사기꾼'이 자기 제자들까지 병풍처럼 세워놓고 읍소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됐다. 사람들은 세상의 정의와 인간의 양심에 관한 한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율 스님의 단식은 그 사이에 100일을 훌쩍 넘어서 버렸다. 세상은 주목하지 않았고, 스님도 침묵했다.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치료를 거부했다. 스님은 세상의 주목과 상관없이 홀로 천성산 문제를 두고 생겨난 이 모든 권모술수와 파행, 자신에게 가해진 유형무형의 폭력에 항의했다. 그리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 세상의 희망을 위해 기도했다. 언제나처럼, 마지막으로, 당신의 목숨을 걸고.

***"대법원에서 꼭 승리할 것이다"**

나는 답답했다. 그만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스님의 다른 지인들처럼 안타까움으로 목이 탔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밤 스님을 위해 편지를 썼다. 나는 무작정, 다시 생명줄을 부여잡아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헝클어진 문장이었지만, 나에게는 달리 길이 없었다.

나는 우선 스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에 대해 썼다. 지난 5월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 운동장으로 밀짚모자를 쓰고, 바랑을 메고, 카메라를 걸치고 걸어오시던 스님의 모습을 추억했다. 그 봄날 학교 벤치에서 스님과 수다를 떨던 기억을 펼쳐보였다. 지난 9월 다시 만났을 때 나의 다섯 살배기 아들을 안고 어르고 볼에 입을 맞추던 스님의 환한 웃음을 다시 그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스님을 바라보는 나의 죄스러움과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명줄을 부여잡으시라고 호소했다. 스님은 병실에서 내가 건네드린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고통을 참아내며,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고마워요. 그렇지만 이것은 천성을 위한 편지가 아니라 선생님 자신을 위한 편지인 것 같네요. 선생님, 마음은 고맙지만 세상에 대한 좌절, 절망, 이런 어두운 말씀 하지 마세요. 저는 어둡지 않아요. 천성산 일을 하면서도 저는 내내 기뻤어요. 세상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저는 고통스럽지만 희망이 있어요. 저는요, 선생님. 천성산이 대법원에서 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요. 천성산이 이긴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20~30년 간은 지금처럼 함부로 개발하고 부수고 죽이고, 그러진 못할 거예요."

말씀을 마친 스님은 다시 힘겨워 하셨다. 이제 나는 병실에서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손을 잡고 싶어 스님의 뼈밖에 없는 손을 나도 모르게 덥석 잡았을 때, 내 손에서 전해진 온기 때문에 스님이 오한으로 약간 떠는 것을 느꼈다. 또 '내 감정' 때문에 스님의 그 예민한 몸에 작은 충격을 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함께 갔던 스님의 지인 두 분과 병실을 나왔다. 병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조용히 울었다. 병원 바깥으로 나와 스님이 계시는 병실 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눈물이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스님은 대법원 판결이 올바로 나오도록 사람들의 힘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로지 '진실'에 주의집중하자**

다시 어려운 여정이 시작된다. 지금은 천성산 일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단계보다도 힘든 시간이다. 흩어진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 무관심한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안에 가득한 무기력을 걷어내고 이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는 일, 세상사에 대한 자포자기를 넘어 오로지 '진실'에 주의집중하는 일, 그리고 스님의 스러져가는 육신을 바라보는 일.

지율 스님은 결코 무오류의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스님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결코 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다만 자신에게 다가온 천성의 인연과, 이 세상에 대한 '완전한 사랑'으로 서 있다. 우리는 그를 외면할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고통에 서린, 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희망의 원력(願力)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대법원을 향해, 차가운 세상을 향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를 향해 호소하고 기도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 인연, 그 사랑 말고 스님은 지금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육신은 다만 천천히 스러져가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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