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개월째 국내에 부재 중인 가운데 삼성그룹은 11일 예년 일정대로 '2006년 삼성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박종우 삼성전자 DM총괄 부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부사장이 각각 디지털프린팅부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으로 진급하는 등 총 452명이 승진했다.
또 이해찬 총리의 형인 이해진 삼성서울병원 부사장도 삼성자원봉사단장(사장)으로 진급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천정배 법무장관의 동생인 천방훈 삼성전자 기술총괄 기술전략실 소프트웨어센터 연구위원도 전무로 승진했다.
구조조정본부에서는 홍보팀의 이종진 부장이 상무보로 승급했고, 안홍진 상무는 삼성전자로 이동했다. 삼성전자 홍보팀의 노승만 부장도 구조본 홍보팀의 상무보로 승진했다.
삼성측은 "작년의 경영 성과가 좋아 현 경영진의 대부분이 유임된 가운데 3명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며 "현재의 안정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올해에도 경영의 연속성을 살려가면서 계속하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사장단이 출범한지 꽤 오래됐고 일부 계열사들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 수위는 이건희 회장의 장기 부재로 원래의 기대치보다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 전무로의 승진이 유력시됐던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이번 인사에서 제외됐을 뿐 아니라 이 회장 일가에서는 아예 승진자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무는 그간 무난한 실적을 보여줬고 승진할 수 있는 자격도 갖췄다는 점에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번 신년 인사에서 무난히 전무로 진급할 것으로 점쳐졌었다.
그러나 에버랜드 전환사채(CD) 불법증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삼성을 둘러싼 사회 일각의 여론도 좋지 않다는 점이 감안돼 최종 임원인사 명단에서 이 상무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도 "이 상무가 승진 자격을 갖췄지만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요인, 상황적인 요인을 많이 따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9일 '2006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과 사장단 만찬, 11일 '2006 삼성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등 예년 같으면 삼성그룹과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에 사기를 북돋아줬을 삼성의 연초 중요 행사들이 이건희 회장이 부재한 가운데 다소 침체된 분위기 속에 진행되자, 이 회장의 귀국 시기를 두고 국내외 여론은 '호기심' 차원을 넘어 '의혹'의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
이 회장의 귀국 일정이 이토록 철저히 비밀로 붙여지는 것은 그의 건강 악화 때문이 아니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D) 헐값발행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꿍꿍이에 안기부 'X파일',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로비 논란 등과 관련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조금이나마 모면해보자는 심산이 더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다음달 10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자격으로 참가하기 전에 공식 활동 재개를 위해 1월말쯤 한국에 귀국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회장이 현재 "일본 체류 중이다", "이미 이탈리아에 가 있다"와 같은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이런 루머들이 떠돌수록, 이 회장의 귀국이 늦어질수록 세간의 눈은 이 회장의 귀국과 관련된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갈 것이다. 그러면 이 회장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조용한' 귀국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역량집중'이라는 삼성 특유의 강점이 그의 장기 부재로 약화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 회장은 삼성 그룹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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