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월부터 개인, 기업, 외국인은 외환시장에서 결정된 실시간 원/달러 환율을 볼 수 없게 된다.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 한국은행, 재정경제부는 27일 한국은행에서 '달러-원 호가제도 개선'에 관한 설명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내년 2월 1일부터는 개인, 일반기업, 선물회사, 역외거래자 등은 외환시장에서 결정된 실시간 환율을 볼 수 없고, 그 대신 은행들이 별도로 정한 준거환율(reference rate)을 참고해 개별은행과의 협상을 통해 외환거래를 해야 한다.
***"환투기 세력 한풀 꺾일 것"**
현행 환율호가제도의 특징은 한 마디로 '전천후 공개'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되면 외국환 은행들뿐 아니라 개인, 기업, 역외거래자 등 대고객시장 참여자들도 실시간으로 그 환율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외환시장의 도매상 격인 외국환 은행이 외화의 도매가격과 권장소비자가격을 모두에게 다 공개하는 식이었다.
이런 현행 제도는 국내기업과 역외거래자들에게 투기의 빌미를 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선물회사나 역외 투자세력이 완전히 공개된 환율정보와 막강한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 과도한 투기적 거래에 나서도 은행들의 완충작용이 부재해 이른바 환율의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은은 "대부분의 외환거래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이를 중개해주는 '브로커' 영업에 그치고 있어 외국환 은행이 '시장조성자'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현행 환율호가 방식 도입 이후 국내기업과 역외거래자들의 시장 영향력이 지나치게 증대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외환시장은 정보와 자금력으로 무장한 역외 환투기 세력들이 좌지우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외환시장의 역외선물환(NDF) 시장의 거래금액은 하루 평균 20억~25억 달러로, 이는 전세계 역외선물환 거래 통화 중 최고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불안정한 추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번 환율호가제도 개선으로 서울 외환시장의 환율을 교란해왔던 역외 환투기 세력이 한풀 꺾일 것이고 이로써 환율 안정성이 높아지면 결국 국내기업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게 한은 측의 기대다.
한은은 이 밖에도 "역외거래자들로부터 수수료 청구가 가능해져 지금처럼 거주자가 역차별받는 현상을 막을 수 있고, 국내 사정에 밝은 국내 은행들과의 거래 필요성이 커져 역외의 국내금융기관 이용도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역외 투기세력을 쫓아내려는 꼼수?"**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는 "새 환율 호가제도 시행 초기에 일부 은행이 거래가를 속인다든지 중소기업 외환거래의 스프레드(매수가격과 매도가격의 차이)가 확대된다든지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문제들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환율 호가제도 변경안에 대한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27일 환율 호가제도 개선에 대한 발표가 나자 기업체 외환담당자, 선물회사 딜러, 외국계 은행 딜러 등은 일제히 "은행에게만 실시간 환율을 제공하고 우리에게는 가짜 환율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냐"며 "원/달러 환율 비공개는 또다른 후진적 관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환율 이중호가 제도는 역외 투기세력을 쫓아내려는 외환당국의 꼼수여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기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들도 "'원/달러 호가제도 개선' 발표 이전에 기업들의 환전비용 증가 문제를 해결하고 은행들로 하여금 공정한 가격을 제시하도록 하는 보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도 기업들이 환 리스크 관리의 책임을 져야 하는 현 상황에서 은행간 환율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새해에 외국인의 무제한 원화 차입이 가능해지게 돼 있어 국내 외환시장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환율 호가제도 개선안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분란의 소지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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