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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장 인선에 또다른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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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립극장장 인선에 또다른 '연좌제'?

[기고] 문광부 장관은 국립극장장 인선에 엄정하라

예술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특정 예술기구의 장 인선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게 점잖치 못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과 사회의 상관성과 공연예술의 산실인 국립극장의 사회적 토대를 염두에 둔다면, 더욱이나 국립극장이 국가의 기간(基幹) 예술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국립극장장의 인선과 관련된 작금의 잡음에 대해 나는 공연예술계에서 작업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4일 문화관련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신선희 서울예술단장이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국립극장장 인선에 있어서 정치적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논평을 냈다. 이 논평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신선희 서울예술단장의 경우 그간의 평가를 살펴보자면 국립극장장의 개혁인사로는 적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신 단장은 1998년부터 서울예술단을 이끌어왔고 2001년부터 예술단장을 3차례 연임했으나 연임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터져나왔다. 또한 서울예술단 홈페이지를 통해 신 단장에 대한 내부반발이 심각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년 간 방송발전기금 190억 원을 포함해 연간 공공기금 44억 원을 쓰면서도 예술적 성취 및 경영 면에서 부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4년도 국정감사 기간에는 신 단장 취임 이후에 서울예술단의 관객 수가 줄고 있다는 점에서 운영의 전문성 문제 또한 심각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같은 문화연대의 논평을 비롯해 지금 문화공연예술계에서는 신임 국립극장장 인선을 앞두고 신선희 서울예술단장이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인선되면 절대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문화연대가 발표한 위 논평에는 "국립극장장 인선에 있어 정치적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희"와 "정치적 개입에 대한 우려" 사이의 연결이 모호하게 읽히며, 심지어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연대의 논평을 논평이란 이름에 걸맞게 보다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전 열린우리당 의장인 국회의원 신기남은 신임 국립극장장 임명을 앞두고 자신의 누이인 서울예술단장 신선희를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인선시키기 위한 그 어떠한 직간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끼쳐서는 절대 안 되며,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립극장장 인선에 있어서 장관으로서의 엄정한 입장을 지켜야 한다."

문화연대가 논평에서 신선희가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인선되면 안 되는 이유로 구구하게 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바로 질러서 얘기하면, 신선희 서울예술단장은 '정치적 이유'로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인선되어서는 안 된다.

전 열린우리당 의장인 신기남 의원은 부친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헌병이었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구구한 변명과 말바꾸기를 하는가 하면 "의장직 사퇴 문제를 연좌제로 몰고 간다" 운운하며 정치인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말의 신뢰'를 스스로 배반했다. 그는 말의 '사실적 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치인으로서의 양식마저 저버린 채 "연좌제" 운운하면서 문제를 호도한 바 있다.

그런데 신기남 씨가 10년 전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 문화관광위 위원으로 재직한 뒤에 바로 그의 누이인 신선희 씨는 문화관광부 산하 예술기구인 서울예술단의 단장에 임명됐고, 신선희는 그 뒤 긴 세월 그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문화관광부의 예산 심의를 맡았던 국회의원 남동생 덕분이라는 소리가 공연예술계 안에서 끊이지 않으니, 이는 사실상 '역방향의 연좌제'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독립군의 주리를 틀고 고문을 자행했던 헌병군 오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녀들이 부당한 '연좌제'로 피해를 입어서도 안 되지만, 문화관광부의 업무 및 예산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국회의원 남동생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공연예술기구 경영에 대한 아무런 객관적 경력도 없던 이가 갑자기 서울예술단장을 맡고, 나아가 국립극장장까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역방향 "연좌제"의 폐단 아닌가.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국가 기간예술기구인 국립극장의 장은 문화공연예술계의 그 누구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인물로 인선돼야 마땅하다. 문화연대의 논평을 보더라도 서울예술단장으로서 신선희 씨가 해 온 역할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더해 무대미술을 하면서 서울예술단의 의상, 연출, 대본 등 전 예술영역을 전횡하다시피 한 신선희 씨의 족적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국공립 예술공연기구의 장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인 '헌신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현 국립극장장인 김명곤 씨는 작은 성과와 수치의 증대에 주목해 그것을 마치 자신의 대단한 성과인 양 툭하면 인쇄물로 만들어 언론기관과 문화관광부 등에 자료로 돌리곤 했다. 그는 지난 6년 간 지속적인 운영개혁을 통해 국립극장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에서는 어떤 실질적인 역할을 했는지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임 국립극장장은 공연예술을 여하히 국민대중 속에 자리 잡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의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러 예술기구의 장 자리를 계속 옮겨 다니면서 독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허위의식이나 속된 욕망은 신임 국립극장장의 역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신임 국립극장장에는 단기적 성과나 이익보다는 장기적 성과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 여러 문화장르가 서로 융합되고 혼합되는 데 대한 감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인선돼야 한다. 또한 전통문화의 중요성과 정보기술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문화의 세계성과 통합성, 문화의 다원화에 대해서도 이해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하고, 문화예술과 산업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문화의 산업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천력과 기획력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하며, 청렴성과 창작정신으로 일반대중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 시대에 국립극장의 기능과 역할이 동태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읽을 수 있는 인물이 국립극장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임 국립극장장은 예술가와 국민 대중의 관계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맡아야 한다. 공연예술을 문화의 총체적인 시야에서 읽을 수 있고, 사회현실을 직시하며 인문적인 표현과 제도로 극장문화를 다시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의식, 행동, 사고를 가진 젊은 정신의 소유자가 국립극장장이 돼야 한다.

신임 국립극장장은 젊고 활기찬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정치적 결단과 진퇴가 분명한 동시에 예술적 허위의식을 경계하고 예술의 사회적, 예술적 사실성과 정합성을 추구하며 속된 소비주의적 관점이나 전통을 앞세우는 편견을 가려낼 눈을 가진 이가 맡아야 한다. 그래야만 신임 국립극장장이 대중으로 하여금 공연예술이란 현대사회를 탐구하고 진실을 발견해내 삶의 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국립극장의 내부적으로는 극장 운영에 대한 책임과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문제해결 능력도 있고 자발적으로 행정책임을 지며 '결과지향적 행정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임 국립극장장은 국공립 예술기구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극장 경영의 질을 개선하며, 예술행정 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극장 내외의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구축하는 데서 기동성을 보여주고, 극장을 개방적으로 운영하고, 공연예술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강화하고, 프로그램의 개발이나 인력 개발을 적극적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국립극장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신임 국립극장장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정말로 자신이 이런 역할들을 엄중하게 해낼 능력이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민예총 등 특정 예술단체나 특정 정치인이 준동하여 특정인을 신임 국립극장장으로 민다" 는 식의 이야기가 시중에 나도는 작금의 세태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반민주적이다. 특히 서울예술단장 신선희 씨가 국립예술기구의 장 자리를 '역방향의 연좌제'로 차지하기에는 시대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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