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제 모두 다 덮고 가자는 말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제 모두 다 덮고 가자는 말인가?"

[기고] '증거'는 끈질기게 '진실'을 말한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나오면 된다는 '결과 지상주의'를 맹타했던 MBC 〈PD수첩〉에게 부메랑이 돌아왔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위 논란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어겼다는 것이다. MBC는 4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핵심적 논란을 다룬 〈PD수첩〉의 방영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연구과정에서 여성 난자를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얻어낸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윤리 위반만큼이나, MBC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증거'는 끈질기게 '진실'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더 유감스러운 일은 따로 있다. 이제 모두 덮자는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다. 5일 노무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에게는 모든 게 쉽다. 〈PD수첩〉이 황 교수 연구의 진위 여부를 취재하고 있다고 툭 던져 일파만파를 만들더니 이제는 〈PD수첩〉이 취재윤리를 위반했으니 이제는 모두 덮잔다. 대통령에게는 이것이 손바닥 뒤집기처럼 간단한 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대체 대통령에게는 '진실'은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국민들의 혼란은 또 어쩌자는 것인가?

그렇게 덮어질 일도 아니고 또 덮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대통령이 덮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젊은 생명과학도들은 황우석 교수의 2005년도 논문에서 조작된 것으로 의심되는 5쌍의 사진을 찾아냈다. 그들 스스로도 그 사진들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떨리고 두렵다"고 말했다. 덮어두자는 의견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직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황우석 교수는 그들의 스승이자 자랑이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더 용기를 내어 진실을 알고자 했다. 대통령은 이들 젊은 생명과학도들보다도 못한 용기를 가지고 청와대에 있는 것인가.

"진실이 밥먹여 주냐?"는 이 폭력의 시간을 맞으면서도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질 만큼 다 알려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위에 관한 의혹들이 〈PD수첩〉이 방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2개 이상의 줄기세포와 환자의 모근세포의 DNA 분석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둘러싼 공방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꾼 꿈이라도 되는가? 시약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박, 시료를 분석했다는 국가기관과 대학 연구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나?

그러나 우리 사회가 모두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에 빠져 드는 순간에도, 진실을 보여줄 '증거'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PD수첩〉의 의뢰로 분석된 2번 줄기세포와 환자 모근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가 공개된 것이다. 〈프레시안〉에 의해 6일 보도된 내용을 보면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어떤 '조작'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개의 DNA 분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수치로 또 그래프로 명확히 드러났다. 이에 대한 성급한 해석을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의혹 해소를 위한 '과학적 검증'에 대한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황우석, 왜 당당하게 의혹 해소에 나서지 못하나**

난자 기증을 서약한 여성들의 수가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이미 한 여성 시의원은 난자 기증을 서약했고 언론들은 여성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난자 기증자가 나올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궁금증일까? 아니면 은근한 압력일까?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황우석 교수가 대변하는 사회적 열망에 편승하기만 했던 보수정당들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싶은 듯하다. "이번 사태를 연구윤리를 강화하고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인 허브로 보다 탄탄한 기반을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합법적이고 윤리적 논란 없이 난자를 얻어낼 수 있는 제도나 만들고 이제 그만 덮자는 말 아닌가?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16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윤리 위반 문제에 관한 재조사 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원장의 시인으로 일부 드러난 비윤리적 난자 확보의 전말에 대해 밝혀낼 것으로 믿는다. 거듭된 거짓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토록 공개를 거부하던 한양대병원 기관윤리위원회(IRB)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또 서울대 수의대 IRB가 그토록 서둘러 나서서 면죄부를 발부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재조사 보고서는 전 세계 언론과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과학계의 신뢰 회복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전 세계 과학자에게는 연구윤리의 교과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논문 조작 의혹은 이제 피해갈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숨길 것이 없다면 논문 조작 의혹에 대해 공개적으로 검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명확한 해명만이 실추된 황우석 교수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사회적 비난 뒤에서 숨을 일이 아니다. 이미 방법도 제시되어 있다. 연구윤리 문제와 달리 논문조작 의혹은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일이니 과학계가 나서서 검증해달라는 것이다. 황 교수가 이런 호소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황 교수팀에서 '검증'이 아닌 '재연' 방식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고 의혹만 키울 뿐이다. 당당하게 나서주길 간곡히 바란다.

***제발 용기를 내 '진실'을 보자**

우리에게는 토론할 일들이 너무 많다.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드러났지만, 너무도 압도적인 핵심 쟁점들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다.

여성 연구원의 난자 채취가 이루어진 비윤리적 연구 과정 뒤에는 연구실 내부의 비민주적 상황과 연구원들의 열악한 노동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미화되는 비인간적인 노동 강도에서부터 연구 성과의 임의적인 배분에 따른 비민주성까지, 우리 사회의 기초과학을 정말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공론화하고 토론해야 할 의제들이 이번에 불거진 것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 나아질 가능성을 외면하는가?

황우석 교수 논란 과정에 불거져 나온 '특허' 문제는 또 어떤가? 모든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위한 연구라는 주장과 수백 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 주장이 나란히 놓이고 있는 모순의 일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특허 체계를 통해 과도하게 책정되는 가격에 의해서 가난한 난치병 환자들도 과연 줄기세포 연구의 성과를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이어져 나올 순간이었다. 또 가난한 환자들에게도 그 성과가 차별 없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 있는지 방법을 모색하고 토론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토론의 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덮어 두고 가자는 말인가? 제발 용기를 내서 진실을 바라보자. 이제 시작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