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일이면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부지가 결정된다. 역사는 이 11월 2일을 어떻게 기록할까? 환경단체들은 우리나라가 '원자력 제국'의 길로 방향을 정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방폐장 설치는 곧바로 원자력의 팽창으로 이어질 테고 풍력, 태양광 발전의 확대와 같은 '에너지 전환'은 더욱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에너지 문제 전문가들이 쓴 <탄소 주권·에너지 전쟁>(김현구 옮김, 모색, 2005)은 이런 환경단체들의 경고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특히 이 책의 저자들은 왜 원자력 발전이 '미래 에너지'가 될 수 없는지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향한 미국의 비전은 왜 좌초했나?**
1952년 미국의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임기 말기에 그의 페일리 위원회는 미국의 미래 에너지 계획을 제시했다. 위원회는 1975년이 되면 미국에서 1500만 가정이 태양열 발전 난방을 이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의 진보로 풍력, 태양광 발전 등이 더욱더 대중화되면 중앙집중화되고 사적으로 소유된 거대한 전기회사들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국을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바꾸려는 비전은 공화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좌초됐다. 아이젠하워를 지지했던 대규모 민간 전기회사들은 매카시즘에 편승해 풍력, 태양열, 태양광 발전에 적합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의 전기 시스템을 '빨갱이들이 선호하는 체제'라고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원자력 제국'의 비전을 홍보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력을 통해 무한정 공급되는 값싼 전기'에 대한 환상은 아이젠하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광범위하게 유포됐고 웨스팅하우스와 같은 민간 전기회사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한편으로는 군과 공동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했다. 물론 민간 전기회사들은 '값싼'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 역시 낮추지 않았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는 미국의 민간 전기회사들은 '태양에너지 개발에 대한 기업적 강탈'을 통해 예전의 악덕 자본가들이 저지르던 짓을 반복했다. 그들은 (위협이 될 만한) 재생가능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독점하고 억압했으며, 반동적이고 무관심한 건설업자들과 유착해 태양열 난방 주택의 확산을 막았다. 미국 정부는 산유국들에 대한 무수한 군사적 개입을 통해 화석연료 가격의 낮은 상태를 유지시켰고, 이들 민간 전기회사들은 막대한 정치후원금으로 보답했다."
***"'장님'이거나 '편향된 사람'들만 원자력 발전을 지지할 것"**
수십 년이 지난 후 원자력 발전의 확대가 가져다 준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1979년 3월 28일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지도자들의 예상대로 '불가피한 파국적 사건'이 도래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점증하자 건설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스리마일 섬 사고의 여파 속에서 규제자들은 수백 건의 설계, 건설, 운영상의 변화를 요구받은 것이다. 원래 수천만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던 원자로들은 대개의 경우 부정직한 예측과 공익설비회사들의 무능력, 건설 현장에서의 대규모 부정 때문에 그 비용은 수십억 달러로 앙등했다.
결국 1985년 결코 민간 전기회사들에 적대적이지 않던 <포브스>마저 원자력 발전의 실패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브스>는 원자력 발전을 "엄청난 규모의 재난"으로 규정하고 "장님이거나 편향된 사람들만이 원자력 발전에 들어간 엄청난 돈을 잘 쓰인 것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는 '편향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민간 전기회사의 '패밀리'였던 것이다.
***최후의 '에너지 전쟁', 우리의 선택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자력 발전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스리마일 섬 사고,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가장 값 비싼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전성은 여전히 신뢰할 만하지 못하며, 파괴적인 방사능 잔류물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방폐장 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수세대 동안 인류를 괴롭힐 텐데도 말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하비 와서만은 지금은 새 천년 에너지의 미래를 결정할 최후의 에너지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에너지 전환'을 주장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은 이미 반세기 전 트루먼 대통령의 페이리 위원회가 주장한 이래 세계 곳곳의 수많은 풀뿌리 환경단체와 양심적인 에너지 전문가들이 제시했던 내용이다.
"원자력 발전을 끝장낼 것. 석유와 석탄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조만간 메탄을 유기적 방식으로 생산할 것. 민간 전기회사들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투자와 원자력 및 기타의 것들에 대한 비용을 부담할 것. 지역공동체들은 가격과 발전방법 면에서 전력 공급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 자연과 대립하기보다는 조화롭게 재생 가능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확산시킬 것. 이 기술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돼야 하며 건강과 생태적 및 미적 영향을 포함한 회계 방법에 의해 그 비용을 계산할 것."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전쟁'은 시작됐다. 지난 2003년 방폐장 때문에 극심한 갈등을 치른 부안 주민들은 최근 부안읍 천주교 부안성당과 원불교 부안교당, 하서면 생태학교 등 3곳에 3㎾급(가정용)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부안 주민들은 앞으로 주민들의 출자를 통해 변산 공동체에 4호 발전기를 건립하는 등 연차적으로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초록 에너지'를 꿈꾸는 이들은 부안에서 첫 승전보를 올렸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이 책은 더 늦기 전에 우리들에게도 이 인류의 생태적, 경제적 미래를 향한 한판 싸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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