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놓고 동해안 경주, 영덕, 포항과 서해안 군산이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해안의 원자력 발전소 밀집 지역이자 방폐장 부지로 여러 차례 거론됐던 영광의 김봉열 군수가 "왜 지역에 방폐장을 유치하지 않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편지를 2일 군민들에게 보내 화제다.
김 군수는 편지에서 △수백 년 동안 방사성 오염의 공포에 지역이 놓이는 것을 자초하는 일이고 △지역 경제에도 중ㆍ장기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며 △유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찬ㆍ반 갈등은 지역에 큰 상처로 남을 게 뻔하고 △경험으로 봤을 때 한국수력원자력(주)은 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 등 방페장 유치를 반대하는 6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방폐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 일색의 정부와 원자력계의 주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김봉열 군수의 편지를 영광군의 양해를 얻어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우리 영광은 예로부터 어염시초가 풍부하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습니다. 1980년 이후 영광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ㆍ가동되면서 각종 집회와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최근에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 문제를 놓고 여론이 분열되어 군민 상호 간에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고 민심은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방폐장 유치의 찬ㆍ반에 대한 논란은 여기에서 접고 군민 모두 대동단결하여 지역 화합과 결속으로 뭉쳐 영광 발전에 동참하여 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동 시설을 유치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수백 년 동안 핵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첫째 원자력 발전소로 인하여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추가 핵 시설을 유치하여 후세에까지 대물림할 수는 없습니다.
영광 원전이 가동된 이후 20여 년 동안 124건의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했고 2003년 5ㆍ6호기 열전달 완충판 이탈, 동년 12월 5호기 방사성 오염폐수 3500t 바다 유출, 3ㆍ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 결함 발생 증가 등 최근에도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중에는 방사능 소멸 기간이 300년 이상인 것도 있다고 합니다.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는 상태에서 먼 미래를 놓고 계속 안전하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 영광 땅에 방폐장이 들어선다면 지구상에 핵 시설이 존재하는 한 국내의 온갖 핵폐기물들이 우리 지역으로 반입되어 우리 군은 핵 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영광 땅은 100년, 1000년 계속해서 핵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땅에서 정주 의욕을 갖고 살아갈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현재 가동 중에 있는 국내 원전의 상당수가 내구연한이 가까워져 폐기 처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명이 다한 국내의 원전이 분해돼 고준위 사용후 핵연료를 제외한 잔재물들이 영광으로 반입된다고 생각할 때 풍요롭던 옥당골은 핵 쓰레기장으로 잠식당하고 지역은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일시적으로 지역 경제가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훗날 이러한 불안 속에서 계속 살아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광 지역에 원전이 있으니까 어차피 방폐장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약적인 생각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 수명은 40년으로 그 기간이 지나면 영광에서 원전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군민들은 핵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방폐장 시설은 한번 설치되면 영원히 영광 땅에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는 점과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역학관계에서 유사시 원전은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될 뿐만 아니라 1급 테러의 대상 시설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우리 지역으로의 핵폐기물 해상 수송은 수심이 얕아서 큰 배가 입출항 할 수도 없고 육상은 동해안으로부터 먼 길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운반 과정에서의 사고 위험도 대단히 높다는 것도 불안 요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둘째 방사성 폐기물을 담보로 제공하는 보상이 생각하는 만큼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원전 6호기가 건설, 가동된 이후 20여 년 동안 원전 지원 사업비를 비롯하여 각종 보상금 등 우리 지역에 3000억 원 정도가 지원되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지역이 타 지자체에 비하여 특별히 윤택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별지원금 3000억 원은 공공시설 사업에 투자 할 수밖에 없는 재원입니다.
막상 소득 생산시설에 투자하려 해도 투자 소재가 마땅치 않고 소재가 있다고 해도 각종 제약에 묶여 결국에는 지금의 원전 지원 사업과 같이 대개는 공공시설에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지원금이 군민의 삶의 질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재원이 우리 당대에서 소진되고 나면 미래에 우리 후손들에게는 방폐장 유치 대가로 무엇을 얻고 선조들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수원(주) 본사 이전은 법에 의해 어김없이 이전될 것이 예상되지만 근무 인력은 약 800~900명 선으로 보입니다. 현재 영광 원전에는 23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나 우리 지역 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되고 있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원전이 있어도 지역 경제가 어렵다고 방폐장을 또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소지를 타 지역에 두거나 가족은 대도시 생활을 하면서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로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경제유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 실정을 감안할 때 본사 직원 800~900명이 미치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997년 여름 영광 원전 5, 6호기 건설 허가를 요구하며 홍농읍의 일부 주민들이 군청 앞에서 집단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년 9월 18일 5, 6호기 건축을 허가했고 6여 년 건설기간을 거쳐 지금은 가동 중에 있으나 지금 홍농읍 성산리, 계마리 주민들이 한수원을 상대로 원전에 대한 공포와 생계 차원의 이주대책을 생존권 차원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방폐장 시설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재연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이미지 실추, 각종 브랜드 가치 하락, 농ㆍ수산물 구매력 악화, 지가 하락, 혐오 시설물의 기피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 등 직ㆍ간접적 피해를 농민단체를 비롯한 관련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성자가속기 기반공학사업은 군비로 약 10만여 평 규모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열악한 군 재정에서 600억 원에 달하는 부지 매입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본의 예를 살펴볼 때 근무 인력의 대부분이 고급연구 인력인 본 시설에서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한 만큼 얻어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불공단의 현대 삼호 중공업은 약 5000억 원을 투자해 60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폐장 시설은 제품 생산라인과 같은 산업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평시고용 인력의 수가 아주 적은 시설입니다. 건설비 2200여억 원, 평시 2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지역민 고용은 50여 명 정도로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시설 자체도 기계화되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찬ㆍ반 주민 갈등은 누가 치유해줄 것입니까"**
셋째 우리 군민 대다수가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유치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찬성이든 반대든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2003년도 한수원에서 우리 지역에 방폐장 유치를 위하여 수십 명의 홍보 요원을 위촉하고 일부 요원에게 적게는 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 정도의 홍보비와 사무실 운영비, 각종 행사 지원비, 선진지 견학 비용 등을 지급하고 유치 찬성 서명을 받으면서 날인 받는 대가로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등 막대한 자금을 살포해 가며 유치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할 무렵, 그해 7월 중에 군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치찬성 37.7%, 유치반대 56.5%로 나타났으며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 정당, 정부 주무부처인 산자부 조사 결과도 유치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보다 10%에서 20%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주민간의 갈등이 조성되고 군민이 분열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 부안군에서 일어난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았습니다. 정부 공고에 근거한 지자체장의 유치신청, 주민반발, 주민 자의적인 주민투표로 이어지면서 결국 유치는 실패했고, 주민간의 갈등과 분열, 상처만 남겨진 채 지금은 치유를 생각할 여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를 유도했던 한수원, 정부, 주무부처 등 치유책을 마련할 주체는 없고 오직 주민과 지자체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야 할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우리지역에서 주민투표라도 시행한다면 그 비용과 그 기간 동안의 사활을 건 찬ㆍ반 간의 갈등과 군민 분열을 누가 책임 질 것이며, 과연 그 결과에 대한 전 군민의 수용 여부 등 순탄하게 진행된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방폐장보다 규모가 더 큰 원전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넷째 방사성폐기물 시설보다 규모가 더 큰 원전 시설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군에는 6호기의 원전이 가동되면서 이에 따른 기본 지원금이 연간 31억5000만 원으로 발전 사업자 분 육영사업비와 전북 고창 분을 제외하면 18억7000만 원이 주변지역 홍농, 백수, 법성 주민에 대해 지원되고 있습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은 원전이 있는 지자체는 원전 업무 수행으로 인건비 등 129억 원이 추가 소요된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질의한 바도 있습니다. 원전 관련 각종 집회와 시위는 2003년을 전후로 3년간 66회, 317일, 주민 7만6300여 명이 참가했으며 전경 또한 2만여 명이 출동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른 행정력 또한 막대하여 평시 군 행정력의 20% 정도가 원전 관련 업무에 투입된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004년 실익 없는 원전 납부 지방세로 인해 재정 자립도 상승에 따라 연간 30억 원씩 지원되는 낙후 지역에서 전남 17개 군 단위 중 우리군만 제외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원전과 관련된 집단 민원 또한 성산리 주민 생계 대책 요구, 가마미 주민 이주 요구, 갑상선 암 관련 민원, 구획 어업 피해 보상ㆍ어민 생계 대책ㆍ어업 어선 피해 보상 요구, 생태계 파괴 방류제 철거 요구 등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위험ㆍ기피시설을 유치한 지역에 그에 따른 보상도 보상이지만 행정 관리 비용도 막대한데 국가 업무 수행에 대한 정부의 별도 지원은 전무한 상태에서, 또한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과 관련된 각종 집단 민원도 미해결 상태에서 또다시 집단 민원이 발생 할 수밖에 없고 행정 비용이 추가로 소요 될 수밖에 없는 방폐장을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수원은 지역 발전의 조력자가 아닙니다"**
다섯째, 한수원은 지역 발전의 조력자 역할보다는 오히려 군정 수행에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수원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민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선 1ㆍ2ㆍ3기 10여 년간 군수로 재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들이 원전과 관련된 민원해결과 각종 인ㆍ허가 처리 사항이었습니다.
5ㆍ6호기 건설 허가 당시 반핵단체와 갈등을 겪으면서 건설허가, 허가취소, 취소에 대한 취소를 반복하면서 지방 행정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한수원은 민원으로 우리 군과 군민 등 갈등이 유발되면 자력 해결 의지보다는 감사원 감사 청구와 행정 심판 등으로 대응하면서 정부를 의지하며 방관하고 그 해결은 결국 우리 군의 몫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민간 개인 기업체가 우리 지역에 들어와 사업을 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5ㆍ6호기 가동조건인 방류제 설치와 관련하여 의회가 입회한 가운데 범군민대책위와의 합의서 파기 후 의회를 배제한 새로운 합의서 작성, 방폐장 유치서명 날인 과정에서 금품 살포, 2003년 서울 향우회의 군수에 대한 방폐장 유치 강요성 공문 발송, 가마미 해수욕장의 관광지 지정 취소 등 지역개발 기회 박탈, 발지법 개정 과정의 비협조, 원전 업무 수행에 따른 군 행정력 손실, 온배수 및 연 37t 정도의 취수구 충돌 어류 폐사에 따른 황금어장 칠산 바다 황폐화, 군민들의 민원 해결 방안으로서의 무력 행사 증가, 정부와 한수원에 대한 막연한 불신 풍조 만연 등 지자체의 행정력을 무력화 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결국 40년 후 영광 땅에서 원전이 폐쇄된 후에야 원전과 관련된 군민 갈등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 개발 우선 정책 시대의 정부 정책으로 주민 의견은 아랑곳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억지 부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 개선되지 않은 한 앞으로도 원전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포화된 방폐장만 우리한테 남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방사성폐기물 보관료 성격이 아닌 반입 수수료 문제입니다.
방폐장이 건설 된 초기에는 전국의 각 원자력 발전소에 저장되어 있는 폐기물량이 많아서 연간 100억 원 정도의 반입 수수료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금액은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원전의 내구 연한이 끝나 발전설비들이 폐기되고 과학기술 발달로 수소에너지, 태양력, 풍력, 조력 등과 같은 대안 에너지가 개발되어 점차 확대 보급되면 먼 장래에는 원전의 감소로 이어져 핵 쓰레기만 영구히 우리 지역에 남게 되고, 우리 지역 방폐장의 포화상태로 다른 지역에 추가 건설이라도 된다면 우리는 폐기물만 보관하고 결국 한 푼의 수수료도 못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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