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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물러나면 오키나와 문제 '해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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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물러나면 오키나와 문제 '해결' 될까?

[김성민의 'J미디어'] '미숙했지만 외로운' 총리, 핀치 몰리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왕 뿐이다. 차와 포는 애초부터 다 떼이고 없었다. 적의 졸들이 한 칸 씩 전진해 들어온다. 그걸 피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고작 아홉칸. 더 두려운 건 밀려드는 졸의 행렬 뒤에 있을 적 진영의 형채다. 도무지,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지난 주말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토야마 내각이 받아든 충격적인 수치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19.1%, 23%, 21.4%. 길었던 자민당 시대를 청산하고 의욕적으로 첫 발을 내딛은지 정확히 8개월만이다.

결정적인 원인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수 개월째 해답을 내지 못하고 미궁 속을 헤매는 사이 미국과의 관계에는 빨간 불에 가까운 노란 불이 켜졌고, 일본과 미국의 언론이 대놓고 조롱을 퍼부을 정도로 하토야마 개인의 정치적 입지 역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뉴시스
문제는 빠져나갈 구멍도 싸워야 할 적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5월 말까지 해결하겠다는 그의 공언은 이제 공수표가 되기 직전이다.

나라 밖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오키나와(沖縄)현 밖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계획 역시 다른 지역들의 반대 등에 막혀있고, 미국은 협상테이블에 앉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키나와현 주민들의 인내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당초의 공약과는 달리 기지의 상당 부분을 지역 안에서 이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자 일말의 희망마저 접은 듯 하다.

미국으로부터의 일본 본토로 반환된지 38년이 되던 지난 15일, 한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실망을 토로했다.

"오키나와 반환 후에도 미군기지는 강화되었고 일본 정부는 주민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기만 했다. 이제 더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

"오키나와 반환을 원했던 건 평화헌법 하에서 미군기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키나와는 끊임없이 배신당하고 차별받아왔다." (<마이니치신문> 16일자)

▲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의 비극에 무심하다" 오키나와현민 약 9만 명이 모여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열고 있다(4월 25일). ⓒEPA=연합뉴스

아주 오래된 비극

비극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직전인 1945년 4월, 54만 8000여명의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그에 대항하는 일본군은 현지 징집한 방위대와 학도병을 다 합쳐도 고작 10만 2000여명. 전투가 미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흘렀음은 물론이다.

▲ 1972년 5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이 이루어진 뒤 이뤄진 미군기지 규탄 집회. ⓒ마이니치신문
처음부터 일본군의 작전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길 가망이 없던 전투의 목적은 오로지 본토 방어를 위한 시간벌기에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을 치르게 된다. 당시 일본군에 의한 주민 학살, 강제 집단자결 등이 있었다는 사실(<마이니치 신문> 9일자)은 이제 더이상 감춰진 비밀이 아니다.

이후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무려 65년 간 미군에게 자신들의 땅과 하늘을 허락해야 했다.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반환이 이루어진 1972년 이후에도 미일관계를 강조한 일본 정부가 그들의 염원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환 후 38년 간 오키나와에서는 한 달 평균 22건의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범죄로 인한 검거 건수만 2009년 말까지 5634건. 본토의 사람들이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바다와 노래를 소비하는 사이, 수많은 미순이와 효선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본토를 위해 희생해 온 댓가는 매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과 가장 낮은 1인당 소득으로 돌아왔다. 아무로 나미에(오키나와 출신의 유명 가수)가 되지 못한 젊은이들은 사회의 쓴맛을 맛보며 방황했고, 그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 위로는 지금도 변함없이 전투기가 낮게, 아주 낮게 날아다닌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차별'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자민당의 지지율 추월이 의미하는 것

이렇듯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는 단시간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65년 전의 전쟁과 냉전이라는 늙은 괴물들과 싸워야 하고, 두 거대한 제국이 저지르고 외면해 온 오키나와의 움푹 파인 상처도 보듬어야 한다. 단지 외교문제나 이해관계로만 접근하기에 65년은 지나치게 길고 깊은 것이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가 지금껏 보여준 미숙함과 경솔함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디어를 보아도 비난과 냉소를 퍼붓는 사람은 넘쳐도 정작 판에 뛰어들거나 제대로 된 훈수를 두는 사람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오히려 많은 일본인들이 이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기를 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는 자민당의 지지율이 지난 주말 민주당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 역시 (오자와 간사장 문제 등 다른 요인들이 섞여있다 해도) 이 문제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으로 읽힌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 쪽 편에 하토야마 총리 만이 남겨진 이 장기판이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누군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말이 되어 뛰어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장기판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일 만은 없어야 할 것이다.

▲ 미 공군기지가 위치한 오키나와현 나고시 인근 앞바다의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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