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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라이프 해저드' 때문에 신음"

[화제의신간] '토건국가'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비극

"우리 아이들이 지금 치명적인 위험에 빠졌다."

한국과 상황이 비슷한 일본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NHK방송의 사회부 기자를 지낸 다키이 히로오미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김성기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서 일본 아이들이 처한 심각한 위기의 현실을 진단한다. 이 책은 다키이 히로오미가 월간 <세까이(世界)>지에 연재한 르포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라이프 해저드'에 빠져 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1998년 첫 아기를 가진 다키이는 아이가 생후 5개월 무렵부터 심한 아토피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심각한 피부 상태와 시도 때도 없는 미칠 듯한 가려움으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토피가 '지난 세상의 악업으로 말미암아 생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직장도 쉬고 3년여 걸쳐 아이를 돌보는 중에 그는 이렇게 심각한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자기 아이뿐만 아니라 그 또래 아이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아토피 질환 아이들, (텔레비전을 보느라) 밤늦도록 자지 않아 늘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아이들, 웃지 않는 무표정한 아이들, 늘 피곤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안절부절못하며 금방 화내는 아이들…."

그는 아이들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그 위험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본격적인 심층 취재에 들어간다. 취재 결과 그는 아이들이 '라이프 해저드'라고 해야 할 만한 위험으로 가득한 생활에 빠져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라이프 해저드'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는 경제 용어를 빌려와 그가 직접 만든 조어이다.

***"체온이 낮은 아이들, 아토피를 달고 사는 사람들, 뇌 발달의 지체…"**

다키이 히로오미가 고발하고 있는 '라이프 해저드'의 실상은 일본에 그치지 않고 고스란히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더욱더 끔찍하다. 그가 폭로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체온이 낮은 아이들.

2002년 10월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체온을 조사한 결과 체온이 정상체온 36~37℃에 못 미치는 아이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가 아이를 일찍 재우지 않음으로 인해 아이들의 생체 리듬이 서너 시간쯤 늦춰진 탓이다. 보통 사람은 밤에 자는 동안 체온이 떨어지고 아침에 깨면 차츰 체온이 올라가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늦게 자게 되면 수면할 때 저체온 상태가 오전 중에도 계속 유지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낮에 정신이 멍하고, 밤이 되어도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좀처럼 잠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저체온 현상은 청소년기의 생활 습관에도 큰 영향을 준다. 아침에 기상했을 때 체온이 36℃대인 표준 체온과 36℃ 미만인 저체온 학생들의 등교 의욕 정도를 조사한 결과, 저체온 학생들은 등교 의욕이 없는 학생이 33.3%에 달했다. 이것은 표준 체온 학생들의 13.8%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호모 아토핀스.

일본에서 대학생 10명 중 9명이 '아토피 소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토피 소인'은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 등과 같은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체질'을 가리키는 말로, 이것을 가진 비율은 1960년대에 10% 미만이었다가, 2000년대 들어 90%까지 증가했다. 이 조사 결과대로라면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일본인 대부분이 '아토피 소인'으로 사실상 '호모 아토핀스'라는 신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호모 아토핀스'의 등장은 알레르기 질병이 노약자를 대상으로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낳았다. 수면 부족, 운동 부족, 패스트푸드 중심의 서구화된 식사 등이 결국 면역계의 이상을 가져왔다. 여기에 콘크리트 아파트와 단독 주택 등 진드기가 서식하기 용이한 생활공간이나 자동차, 토목·건설 공사장의 급증은 진드기, 미세먼지 같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다량으로 쏟아낸다. 결국 아이들을 비롯한 노약자가 각종 알레르기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이밖에도 '라이프 해저드'는 학교 부적응, 뇌 발달의 지체, 산업화된 출산에서 야기된 모자 사이의 친밀감의 감소를 야기해 결국 다음 세대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아픈 아이들이 증가하는 현실, '라이프 해저드'가 미래 세대를 '아픈 아이들의 세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 해저드', 우리 미래 내동댕이치는 일"**

다키이 히로오미는 결론적으로 '라이프 해저드'의 원인은 바로 수면, 식생활 등 어른들의 잘못된 습관에 아이들을 끌어들인 탓이라며 가정에서 부모부터 바뀔 것을 주장한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실천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좀더 중요하게 되새겨야 할 것은 바로 다키이 히로오미의 다음과 같은 분석이다. 여기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면 바로 우리가 지금 그 길을 좇고 있다.

"사실 아이들의 성장을 둘러싸고 이토록 참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전후의 일본 사회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일찍이 '나라는 망했지만 산천은 그대로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풍부했던 자연 환경을 모조리 파괴해 생명을 키우는 산업인 농업을 아주 간단히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설마 그 안쪽에서 아이들이 이토록 심하게 성장을 빼앗기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들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즉 생명을 영위하는 일 자체를 소홀히 생각하는 서구적 가치관을 일본이 비판 없이 받아들여 한껏 부풀려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후의 일본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횡행하던 이런 가치관도 공해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해 거품 경기가 붕괴할 즈음에는 완전히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지배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것이며 자신들의 미래를 내동댕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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