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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식 대학개혁'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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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진표식 대학개혁'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

[화제의신간] "관료에 의존하는 교육개혁 실패 필연적"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은 산업'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추진하는 대학 통·폐합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출간됐다.

***'김진표식 대학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여년 이상 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운동에 헌신해온 김진경 시인은 최근 펴낸 <미래로부터의 반란>(푸른숲 펴냄)에서 참여정부의 '김진표식 대학개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 시인은 "국민 소득 1만 달러 시점에서 47개국의 대학 진학률 및 대학생 1인당 교육비를 살펴보면 아르헨티나, 그리스, 스페인처럼 양적 성장을 넘어선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나라들이 눈에 띈다"며 "이들 나라들은 대학 진학률은 30~40%로 높으면서도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낮아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50%대로 이들 나라보다 훨씬 높지만 1인당 교육비는 그 나라들보다도 훨씬 낮다"며 "이들 나라들보다 대학 교육의 질은 더 낮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결코 기업의 입맛에 맞는 교육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대학 졸업자들이 왜 스스로 과제를 찾고 또 그것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한국의 대학 졸업자들보다 뛰어난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대학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서 다루어지는 지식의 성격은 필요한 단순 지식을 많이 습득하긴 하는데,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아내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배우지 못하는 데 있다"며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지식의 성격을 창조적인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학교 교육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학교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의 외줄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자기 적성이나 진로, 희망과는 무관하게 수능시험 성적에 맞는 대학의 학과를 진학해 방황하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전공 분야를 건성으로 이수하고 사회로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능동적으로 자기 과제를 찾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기르는 대학 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학 교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난쟁이로 만드는 학교 교육' 전반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이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도 이런 변화부터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학개혁은 교육개혁의 결과물이지 그 시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류 최고 인재 키우는 하버드, 김진표식 대학과는 '정반대'**

흥미롭게도 미국의 대학 교육을 소개하고 있는 전혀 다른 성격의 책 역시 김진경 시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15인이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조언을 모아 놓은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데이지 웨이드먼 엮음, 안명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가 그 책이다.

개개인이 미국의 경제계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들의 마지막 수업은 특별하다. 그들은 사회에 나가 세계를 좌지우지할 '미래의 권력자들'을 향해 자신의 삶과 학문이 응축돼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버드 경영대학 졸업생들은 인생의 고비마다 이 마지막 강의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세계의 가장 높은 계층으로 진입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들의 마지막 강의는 전혀 의외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여느 졸업식에서 들을 수 있는 명문의 자부심을 논하지 않는다. 정치적·경제적 성취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다만 인생 선배로서 '한 인간 그리고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소박하지만 경박하지 않은 '삶의 지혜'로 가득하다. 두세 가지만 열거해보자.

캔트 보웬 교수는 경영대학 교수로서는 의외의 제안을 한다. 그는 "여러분이 언젠가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의 한 부서 또는 조직 전체를 통솔하면서 회사의 구조 조정과 이에 따른 직원 해고를 생각하는 그 순간에 '그들은 숫자로 파악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아버지이고 어머니로, 누군가를 위해 고된 땀과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라고 운을 뗀다. 그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존경과 배려를 바치듯, 그들에게도 똑같은 존경과 배려를 바치기 바란다"며 "그들 한 명 한 명이 누군가의 인생을 찬란하게 해주었고, 여러분 각자의 삶을 찬란하게 해준 이들일지 모른다"고 당부했다.

니틴 노리아 교수는 더 직설적이다. 그는 "직원들이나 다른 투자자들과 맺은 어떤 신뢰도 저버리는" 전형적인 '화전민식 경영'을 일삼는 경영자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화전민식 경영'은 불을 질러 밭을 일구고 땅이 황폐해지면 또 다른 땅을 찾아 떠나는 화전민의 농법에 빗대 직원과 투자자들에게 '쓴물 단물 다 빼먹은 뒤 버리는' 경영자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이들은 불경기와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의 시간을 합병과 해고의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기면서도 엄청나게 높은 연봉을 챙긴다.

그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서약을 하는 것처럼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영자 역시 스스로가 속한 사회 구성원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연대에 대한 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대학 동창회에 가지 말라"는 데이비드 벨 교수의 조언도 매우 인상적이다. 졸업과 동시에 평생 온갖 학교 다닐 적 인연에 얽혀 있는 우리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행태가 생각나는 탓이다. 데이비드 벨 교수가 "동창회에 가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매우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그것이 개인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동창회에서 여러분은) 다른 동문들이 졸업 후에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나는 그들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불안한 곁눈질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결국 여러분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인생을 동창회에 맞춰 끌고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력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른다거나, 순식간에 떼돈을 벌 수 있는 일을 고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결국 그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5회 동창회 때 스스로에게 또 동문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떳떳한 인생을 설계하라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미국 8백대 기업의 CEO 중 25%가 하버드 대학 출신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하버드 경영대학은 주류적 시각에서 볼 때 최고의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를 배출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도 '대학은 산업'이라는 식의 천박한 교육관은 발붙일 자리가 없다. 오히려 당장의 '성과'보다는 '스스로가 선택한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개혁을 관료적으로 접근할 때 제자리 맴돌 수밖에 없어"**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취임 후 여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이 산업계에 제대로 된 인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우리 교육의 핵심 문제를 제멋대로 진단한 뒤, "모든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경쟁력 있는 대학을 전국에 많게는 10개 이상 만들면 초·중등교육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이른바 '대학개혁을 통한 교육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한 셈이다.

김진경 시인은 "1990년대 세계 여러 나라가 교육개혁을 의욕적으로 시작했고 성과를 거둔 나라가 있는 반면에 실패한 나라도 있다"며 "독일, 일본처럼 교육개혁을 관료적으로 접근할 때 대체로 교육개혁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시인은 "교육 관료 체계에 대해서 법조 개혁에 버금가는 수술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학교 교육 개혁이 별 성과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일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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