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비타민 천국' 시대가 도래 했다. 너도나도 비타민제, 비타민 음료를 복용하고 있다. 기업들이 온갖 광고로 앞 다퉈 비타민 결핍의 위험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비타민 결핍의 시대'에 살고 있을까? 독일의 <슈피겔> 편집장을 지낸 한스 울리히 그림과 의학 박사 예르크 치틀라우는 <비타민 쇼크>(도현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에서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비타민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타민 '결핍'은 거짓말, '과잉'이 문제"**
25세 한 독일 여성의 하루 비타민C 권장 섭취량은 100㎎이다. 이 여성은 하루에 토마토 하나와 키위 하나를 먹는다. 비타민C 1일 권장량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여성은 요구르트(비타민C 10㎎), 케첩을 바른 토스트 1조각(5㎎), 케첩에 찍어 먹는 소시지 1개(30㎎), 레모네이드 1잔(30㎎)을 마신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샐러드(40㎎)와 감자칩(5㎎)을 먹은 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서는 꼭 먹어야 한다'는 비타민제(100㎎)를 한 알 삼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여성은 무려 1일 권장량의 3배나 되는 비타민C를 섭취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비타민 '결핍'이 아니라 비타민 '과잉'이라고 얘기한다. 비타민 섭취의 필요성을 느끼고 비타민이 포함된 음식을 우선적으로 찾고 비타민제나 비타민 음료를 복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건강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비타민 필요량이 높은 사람들도 있다. 유아, 어린이, 성장기 청소년과 임산부 그리고 수유기 여성 또 노인들은 더 많은 비타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비타민 '과잉'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를 들어 임신을 하면 비타민D 요구량이 급격히 상승한다. 이 때문에 많은 임신한 여성들에게는 대량의 비타민D 영양제 복용이 처방된다. 또 비타민B군 중 엽산 섭취도 여성들에게 요구된다. 그 결과는 어떨까? 많은 전문가들은 비타민D의 과도한 섭취가 태아의 기형이나 정신지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이 엽산이 함유된 영양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 유산 발생률이 증가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비타민 영양제를 섭취하는 대신 밖에서 햇빛과 더불어 산보를 하고(비타민D는 햇빛의 도움으로 인체 내에서 생성된다), 균형 잡힌 식단을 공급받으면 이런 임신 여성의 비타민 결핍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비타민 '결핍'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들은 신선한 야채로 직접 요리한 음식을 섭취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싸고 질이 낮은 각종 가공 식품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 자연 식품을 찾아볼 수 없는 '식품결핍지역'의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린 빈민들이야말로 비타민 '결핍'이 문제가 되는 이들이다. 이들 가난한 사람들은 비타민제나 비타민 음료는커녕 신선한 야채에도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당신이 먹고 있는 '합성 비타민', 각종 부작용의 보고"**
문제는 비타민 '과잉'만이 아니다. 이 비타민 '과잉'을 조장하는 주범이 바로 '합성 비타민'이라는 사실이다. 합성 비타민이란 자연 식품 속에 들어 있는 비타민이 아니고 화학적으로 합성하거나 생명과학에 의해서 제조된 비타민을 말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각종 비타민제나 비타민 음료에 포함된 대부분의 비타민은 합성 비타민이다.
문제는 식품 속에 함유된 천연 비타민과 달리 합성 비타민의 섭취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보고가 전 세계적으로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인상적인 사례를 보자. 인도 아삼 지방의 어린이들에게 비타민A가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은 비타민A 시럽을 3천2백만명에게 나눠줬다. 이 시럽을 복용한 지 24시간도 안돼 아이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등 3천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결국 15명이 사망했다. 이 참사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비타민A의 과잉 공급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만성적인 비타민A 결핍 상태의 아이들에게 아삼의 성인에게 권장되는 비타민A의 1백배에 해당하는 양을 한꺼번에 먹인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합성 비타민 복용에 따른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타민제를 복용한 후 갑자기 우울증 증세를 보인 한 26세 여성의 경우에는 비타민B군 피리독신 과다 복용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돼지나 소, 닭의 간에 들어있는 이 비타민을 이 여성은 비타민제를 통해 하루 100~1000㎎까지 복용했다. 이는 간 10~100㎏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 비타민을 과다 복용할 경우 뇌와 신경계통에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제조사는 효과에 대해서는 선전을 하면서도, 정작 부작용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이밖에 이 책에서는 비타민 과다 복용이 관절염, 기형 형성, 혈중 지방 수치 증가(이상 비타민A), 중독 현상, 빈맥과 황달(이상 비타민B), 각종 역효과(비타민C), 석회침착과 고혈압, 치아 손상(이상 비타민D) 등 온갖 부작용을 야기한다고 고발하고 있다.
***"'비타민 천국'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런 많은 부작용이 보고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 천국'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제약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공세적인 선전 때문이다. 이들 기업들은 ▲비타민 결핍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음식만으로는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다"), ▲공포를 극대화시키고("비타민 결핍은 식욕부진ㆍ피로ㆍ신경과민ㆍ불면증ㆍ우울증ㆍ피부상태 악화를 초래한다"), ▲구조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대중을 안심시킨다("비타민제를 포함한 영양제나 건강 기능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더 이상 영양섭취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이런 인공적인 비타민제를 섭취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우리가 파는 비타민제는 어머니 대자연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고 그 방법 그대로 자연 상태로 만든 것이다"), ▲장수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며("비타민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천천히 늙고 10년 이상 생명을 연장한다"), ▲이 모든 것을 전문가와 학술 자료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물론 관련 전문가나 학술 자료의 신빙성이나 질적 수준은 관심사가 아니다. 제약사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전문가의 발언이나 학술 논문을 취사선택하고, 연구에 영향력을 미쳐 임상 실험을 미화하고 위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대신 연구비를 타간다.
비타민 결핍에 따른 각종 위험을 강조하고 비타민의 효과를 실제보다 과장해 선전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진행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부작용을 축소하거나 아예 은폐하는 것도 기업들이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이다. 이런 거대한 '사기극'을 통해 대중들의 '비타민 천국'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의 감수를 맡은 서울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교실 유태우 박사는 "이 책은 향후 5년 내에 한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독일의 현실을 빌어 예고하고 있다"며 "광고에 홀려 어느 비타민제가 건강에 좋을까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적정영양을 섭취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타민이 우리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물질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넘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비타민 천국'의 도래를 예고하는 각종 광고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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