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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지율스님 위장단식' 망언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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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지율스님 위장단식' 망언 파문

"지율은 스님 아닌 비구니", 불교계 "조갑제, 인간이기를 포기"

지율스님이 단식을 풀자마자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과장되고 근거 없는 손실액을 제시하며 지율스님과 환경ㆍ사회단체를 맹비난하고 나선 데 이어, 극우인사인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가 지율스님의 1백일 단식을 '위장단식'이라는 주장하는 글을 올려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터넷상에 일부 네티즌이 댓글들을 통해 이런 상식밖 주장을 편 적은 있으나 현업에 있는 언론인이 이같은 주장을 편 것은 처음이어서, 불교계 등으로부터 "조갑제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신이상자"라는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조갑제, "지율이란 '여성' 단식, 누가 확인했나"**

조갑제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단식 1백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율이란 여승이 1백일 단식을 했다는 보도 아닌 '대변(代辯)'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자들과 언론이 가담함으로써 '백주의 암흑'이 연출됐다"며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백일 단식이라고 확정 보도하느냐"고 지율스님의 1백일 단식을 '위장 단식'으로 몰아나갔다.

조 대표는 "그 결과는 언론에 의한 국민들의 오판 유도였고 기자들의 선전원화 또는 대변인화였다"며 "정부의 항복은 이런 언론과 오도된 여론의 합작품으로 한국언론의 정신은 잠시 집을 나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언론 보도를 비난했다.

조 대표는 이어 1960년 김주열 사건, 1987년 박종철 사건 등을 열거하면서 "그 때보다 취재 환경이 훨씬 좋은 지금 왜 기자들은 1백일 단식이란 미확인 정보를 이렇게 크게 보도했느냐"며 "2005년 2월3일은 한국언론 치욕의 날로, 백주의 암흑 즉 정보화 시대의 기자 실종 사태로 기억될 것이며 한국의 기자들은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또 "젊은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선배들의 기자 정신과 반골 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훈계(?)를 하기도 했다.

***"지율, 스님 대신 승려나 비구니라 불러야"**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기자들이 인구비율로 전투원보다 더 많이 죽은 것도 사실을 확인하려다 죽은 것"이라며 "'여성의 1백일 단식' 보도를 한 기자들이라면 텔레비전으로 전쟁을 시청하고 현장에 갔다 온 것처럼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혹시 기자들 중에서 신념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 여승을 지지하니 1백일든 1천일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직종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마지막으로 "언론이 여승을 '스님'이라 표기하는 것도 기자들의 정도가 아니다"며 "그렇다면 교사는 선생님, 목사도 목사님으로, 대통령도 대통령님으로 해야 한다"며 "승려나 비구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비비꼬인 시비를 거는 것으로 글을 마쳤다.

이같은 조 대표 글이 실린 뒤 조갑제 홈페이지에는 무명의 네티즌이 썼다는 '지율 단식 100일의 의문점들'이나 극우 인터넷매체 <독립신문>의 '100일 단식 가능한가' '안티지율 카페 등장' 등, 조갑제 주장을 옹호하고 지율스님을 비난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조선일보>나 똑바로 가르쳐라"**

조갑제의 '지율 위장단식론'은 한마디로 '조갑제 정신세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특히 단식 사실을 확인했느냐는 조 대표의 의문 제기는 지율스님 단식이 1백일이 가까와오자 그 때서야 뒤늦게 관심을 기울였던 <조선일보> 등에나 해당되는 것이라는 게 언론계 안팎의 지적이다.

이전 세 번에 걸친 지율스님 단식을 지켜봤고, 이번 단식도 지난해 10월27일 단식을 시작할 때부터 우려의 눈으로 지켜봤던 언론들은 지율스님이 어떤 식으로 단식을 진행했는지 사실관계에 대해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접근해왔다.

반면에 단식 1백일이 다가오자 뒤늦게야 이 문제에 접근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지율스님 단식이 진행되는 동안 지율스님 단식사태를 초래한 경과는 은폐한 채, 단식일수와 근황만을 전달하는 '상업주의적 시각'으로 일관했다.

언론계에서는 따라서 <조선일보>까지 포함하는 조갑제의 언론비판이 지난해 후반부터 조갑제의 사퇴를 희망하고 있는 <조선일보>에 대한 뒤틀린 감정의 표출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조갑제의 위장단식론과 상반되게, <조선일보>조차 3일자 '지율스님 1백일 보도'에서 의학전문기자까지 동원해 "의학 교과서에는 단식으로 인간의 생명이 견딜 수 있는 기간을 1백일 정도로 보고 있다"며 지율스님 단식이 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 "조갑제, 권력의 하수인이었던 당신의 과거 돌아보라"**

당연히 불교계는 조 대표 글에 대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신이상자의 망언"이라며 강력 반박하고 나섰다.

불교언론대책위원회는 6일 성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잔인한 망언자인 조갑제 망발자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같은 말이면서도 악행의 말이 있고 선행의 말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건만 그런 잔인한 망언을 되풀이하는 조갑제는 실로 언론인의 기본자세인 공정성을 상실한 매판매국, 숭미, 독점, 친권력적, 사대 언론의 표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조 대표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역대 정권에서는 힘으로 행동하면 모든 것이 다 통하고 민중들에게 있어서는 발언권이 없는 통제된 사회에서 살아왔다"며 "이 과거의 통제된 시대에서 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조갑제의 망발은 참을 수 없다"고 과거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조 대표의 전적을 꼬집었다.

이 단체는 "조갑제 망언은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포기한 정신 이상자임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더러운 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몸이 된 조갑제와 이 시대에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마지막으로 "일말의 가치도 없는 인간이지만 국민들의 삶에 대하여 염려하는 마음으로 망언자인 조갑제는 참회하며 자신의 몸에 대하여 진실로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조 대표의 각성을 촉구했다.

다음은 조갑제 대표의 글과 불교언론대책위원회 성명서 전문.

***조갑제 대표 : 단식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

지율이란 女僧이 100일 단식을 했다는 보도 아닌 代辯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자들과 언론이 가담함으로써 '백주의 암흑 '이 연출되었다. 기자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현상인 100일 단식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가 말이다. 기자들은 이 여승이 과연 100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았어야 했다. 의사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물어 보았어야 했다.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00일 단식이라고 확정보도했는가. 어떻게 이런 자질 미달 기사들을 부장과 국장은 내보냈는가. 그 결과는 언론에 의한 국민들의 오판 유도였고 기자들의 선전원화 또는 대변인화였다. 정부의 항복은 이런 언론과 오도된 여론의 합작품이 아닌가. 한국 언론의 정신은 잠시 집을 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1987년에 치안본부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했을 때 기자들이 오늘날의 기자들처럼 보도했더라면 6월 대시위도, 6.29선언도, 민주화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 정부시절 기자들은 정부의 발표를 항상 의심하고 기사를 썼다. 1971년에 김대중 후보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사회부 기자들은 이 불의 원인을 놓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써 朴 정권을 괴롭혔다.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 때도 기자들은 정권의 고위층이 연루되었다는 의문을 계속 제기했었다.

1960년의 4.19는 부산일보 사진부 기자의 특종-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죽은 시체로 떠오른 김주열군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때보다도 훨씬 취재환경이 좋은 지금 왜 기자들은 100일 단식이란 미확인 정보를 이렇게 크게 보도했던가. 이것이 反언론 反사실적 행태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요사이 젊은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선배들의 기자정신과 반골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다. 2005년 2월3일은 한국 언론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백주의 암흑, 즉 정보화 시대의 기자실종 사태인 것이다. 어제 한국의 기자들은 죽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기자들이 인구비율로 전투원보다도 더 많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을 확인하려다가 죽은 것이다. '여승의 100일 단식 ' 보도를 한 한국 기자들이라면 텔레비전으로 전쟁을 시청하고 마치 현장에 갔다온 것처럼 썼을 것이 아닌가. 기자들은 사실과 說을 구별할 줄 아는 전문가이지 발표문을 베끼는 대서방 근무자가 아니다. 혹시 기자들중에서 신념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그래서 '나는 그 여승을 지지하니 100이든 1000일이든 상관이 없다 '고 생각한다면), 그런 이들은 하루빨리 직종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런 기자들은 소설 [1984년]의 진리省 직원으로 전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나 덧붙인다면 언론이 女僧을 '스님 '이라 표기하는 것도 기자들의 正道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선생님, 목사도 목사님이라 불러주어야 하고 대통령도 '대통령님 '으로 해야 한다. '스님이 구속되었다 '는 기사도 나오는데 이상하지 않는가. 승려나 비구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불교언론대책위원회 성명서 : 조갑제 망언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잔인한 망언자인 조갑제 망발자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갑제는 분명히 창자가 없는 인간이든지 아니면 인간이 지닌 오장 육부가 비틀린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지닌 성품에 대하여서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잔인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같은 말이면서도 악행의 말이 있고 선행의 말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건만 그러한 잔인한 망언을 되풀이하는 조갑제는 실로 언론인의 기본 자세인 공정성을 상실한 매판매국, 숭미, 독점, 친권력적, 사대 언론의 표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역대 정권에서는 힘으로 행동하면 모든 것이 다 통하고 민중들에게 있어서는 발언권이 없는 통제된 사회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누구든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에서는 개방적인 민심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회에서 과거의 통제된 시대에 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조갑제의 망발은 참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지율 스님은 비구니 스님의 몸으로 100일을 견디면서 이 땅에 환경 정책에 잘못을 지적하고 단식을 통해 정부에 청원하는 호소이지 않았던가. 그러한 현상을 목격하고도 조갑제 망언을 접하면서 권위적인 시대에 살았던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의 사설에서도 조갑제 망언과 같은 사설을 발표하였는데, 비구니 스님으로 단식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갑제 망언에 대하여서는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것을 포기한 정신 이상자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정신 이상자들도 비가 오려면 그러한 발언을 하고 다니는데 조갑제 망언이 도진 것을 보니 또다시 병이 든 몸이라고 본다. 병든 조갑제 망언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율이란 女僧이 100일 단식을 했다는 보도 아닌 代辯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자들과 언론이 가담함으로써 '백주의 암흑'이 연출되었다. 기자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현상인 100일 단식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가 말이다. 기자들은 이 여승이 과연 100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았어야 했다. 의사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물어 보았어야 했다.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00일 단식이라고 확정보도 했는가. 어떻게 이런 자질 미달 기사들을 부장과 국장은 내보냈는가. 그 결과는 언론에 의한 국민들의 오판 유도였고 기자들의 선전원화 또는 대변인화였다. 정부의 항복은 이런 언론과 오도된 여론의 합작품이 아닌가. 한국 언론의 정신은 잠시 집을 나가 있었던 모양이다."(조갑제 글에서)

조갑제 망언은 한국 언론의 정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을 보면 분명히 그러한 생각을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조갑제 망언을 말하는 것, 이것도 더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항해서 말하는 것은 다름 사람들에 대하여 더러움이 물들지 않기 위함이다. 자기 자신이 더러운 물에 빠지면 그만이지만 비구니 스님의 단식에 대하여서는 누구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비구니 스님의 단식은 몸으로의 표현이다. 조갑제 자신이 위와 같은 언론의 통제를 실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1987년에 치안본부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했을 때 기자들이 오늘날의 기자들처럼 보도했더라면 6월 대시위도, 6.29선언도, 민주화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 정부시절 기자들은 정부의 발표를 항상 의심하고 기사를 썼다. 1971년에 김대중 후보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사회부 기자들은 이 불의 원인을 놓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써 朴 정권을 괴롭혔다.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 때도 기자들은 정권의 고위층이 연루되었다는 의문을 계속 제기했었다. 1960년의 4.19는 부산일보 사진부 기자의 특종-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죽은 시체로 떠오른 김주열군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조갑제 글에서)

조갑제 망언은 이러한 내용에서 보여주듯이 기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전례가 없는 비인간적인 발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히틀러 같은 인간이라고 본다. 조갑제의 머리에는 악독이 가득 들어있는 몸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언론을 빙자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폭력 집단 세력, 전쟁광 부시 같은 인간이다.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자신에 대한 정리부터 하기를 촉구하면서 더러운 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몸이 된 조갑제와 이 시대에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말의 가치도 없는 인간이지만 국민들의 삶에 대하여 염려하는 마음으로 망언자인 조갑제는 참회하며 자신의 몸에 대하여 진실로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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