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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눈물, 일본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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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눈물, 일본의 미소"

김민웅의 세상읽기 〈211〉

세계 야구대회 WBC 본선에서 한국 대표팀의 승전보가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일본으로선 우리에게 당한 두 번의 패배에 뼈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환희에 차서 웃고만 있으면 되는 걸까요?

최근 일본에 다녀 왔습니다. 도쿄의 우에노(上野) 공원은 이제 막 벚꽃놀이 준비를 하는 차림새였습니다. 마침 비가 약간 내리고 있어서 사람들도 많지 않아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일본의 유적지는 도쿠가와 바쿠후의 건설시기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신사(神社)에 이르는 길목은 일본 고유의 느낌을 주기에 유감이 없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공원 안에 일본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우에노의 상단을 비껴나가면 그곳에는 일본 국립박물관이 묵직하게 버티고 서 있었고, 좌측 호수를 넘어가면 빨간 문, 즉 아까몽(赤門)으로 유명한 동경대학(東京大學)이 그야말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동경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동경대학의 탄생이 1877년이니까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서양적 근대의 열망을 치열하게 담아낸 교육기관 답게 영국이나 독일 대학의 육중한 풍모를 닮아 있었습니다.

우에노 공원과 동경대학이 하나의 구역으로 생각될 만큼 이어져 있는 공간적 배치는 오늘의 일본이 있기까지 지탱해 온 전통과 근대적 개혁의 공존과 상호 작용의 모습을 압축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을 보면서, 자주적 개혁의 길이 좌절되고 식민지형 근대화의 강제적 재편을 겪어야 했던 우리와의 차이를 절감하게 됩니다.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고 차분하게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몰리고 밀리고 쫓아가다가 놓쳐버리고 만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구나 하는 회한이 밀려듭니다.

이 세상에서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풍부한 문자문화의 생산을 자랑하는 일본의 문화 교육적 저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번역이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그것이 사회의 담론이 되도록 이끌어 온 역사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면 이는 그냥 넘길만한 것이 아닙니다. 민중의 권리를 뜻하는 민권(民權)이라는 단어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에도 사회 철학적 논쟁의 역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치열한 역사적 노력의 이면에는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이 있음도 아울러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일본 우파의 "새로운 일본 역사 교과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다나까 히데미찌(田中英道)가 쓴 "새로운 일본사관의 확립(新しい 日本史觀の 確立)"은 기존의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해 "공산당원이 쓰고 사회당원이 가르치고 자민당 정권이 돈을 내는 책"이라고 질타하면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모두 좌파 역사관이라고 싸잡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는 일본 자신의 역사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고 흥미도 잃게 된다면서, 일본의 역사를 최대한 정당화하는 쪽으로 논지를 몰아갑니다.

'종군 위안부'라든가 '강제연행'이라든가 '남경대학살'이라든가 하는 단어나 역사적 사실도 모두 부정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아예 없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논리는 "혐한류( 嫌韓流)"라는 만화를 통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재일 조선인 1세의 상당수가 강제노역으로 끌려왔던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사를 문화 속에 정성스럽게 온존시키고 있는 일본, 그러면서 그와 동시에 일본의 근대에 숨겨진 야만의 얼굴을 미화하고 있는 일본. 인근 국가들에 대한 역사적 비난과 곡해를 서슴지 않고 있는 일본.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의 대응이 펼쳐지고 있는 나라 일본.

이런 나라와 이웃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쉽게 들떴다가 이내 가라앉아버리고 마는 우리를 보면서, 일본의 우파들은 미소 짓고 있을 겁니다.

어느 것이 정작 일본의 얼굴일까 하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저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면모들이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한일 우호관계를 위해 우리가 다지고 나가야 할 일이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일본에도 좋은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면서 일본의 눈물을 즐길 마음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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