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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살라딘이 김홍도 목사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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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살라딘이 김홍도 목사를 만난다면?"

[화제의 신간]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

최근 한 개신교 목사가 '남아시아 재앙은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망언을 해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번 망언 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개신교도들의 폐쇄성과 타 종교 및 비기독교 문화에 대한 공격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 즈음에 나온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정영목 옮김, 미래M&B)은 우리에게 이슬람 문화에 대한 교양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와 그 문화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서구인들보다 더 심하게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른바 '비기독교도'에 대한 적개심의 실체를 근본부터 따져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잊혀진 이슬람 영웅, 살라딘**

살라딘(1137~1193)이 생소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그의 맞수였던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1157~1199)가 <로빈 후드> 등을 통해 잘 알려진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살라딘과 리처드 1세는 격렬했던 3차 십자군 전쟁(1187~1192)에서 양쪽 군대를 지휘했던 이들이다.

특히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유럽인들이 세운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은 오늘날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특히 살리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곳의 기독교인을 학살하기보다는 관료들의 분노와 반대를 무릅쓰고 기독교인들이 재산을 싸들고 예루살렘을 떠날 수 있게 허용한 것은 그의 진면목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것은 88년 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저지른 끔찍한 만행과 대조해보면 더욱더 그렇다. 40일 간의 포위 끝에 예루살렘을 차지한 십자군 전사들은 단 한 사람의 유대인과 이슬람인도 남기지 않고 잔혹하게 학살했으며, 이슬람 사원과 유대인 성지마저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

유럽의 역사와 문학에서 기사도의 전형으로 그려지는 리처드 1세와 비교하면 어떨까? 그는 출중한 외모의 서정시인이었지만 아주 교활하고 잔인했다. 특히 리처드 1세가 앞장선 3차 십자군 전쟁은 유대인 학살, 탐욕의 분출, 끔찍한 만행으로 점철됐다. 반면 살라딘은 리처드 1세가 전투 중 낙마하자 새 말을 보내주었고, 그가 고열에 시달렸을 때는 눈(雪)을 보내기도 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강조한 '이방인에 대한 관용'을 정작 기독교인이 아닌 그 반대편의 살라딘이 실천했던 것이다. 살라딘이 그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서양 기독교 세계에서조차 존경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99년 미국의 <타임>은 '지난 1천년 세기의 인물'을 선정하면서 살라딘을 12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뽑았다.

***이슬람 문명의 안팎을 훑는 살라딘 전기**

살라딘(살라흐 앗 딘)은 지금의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명망 있는 쿠르드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군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집트 정복으로 전사로서의 첫 명성을 얻은 뒤 여러 종족과 종파로 나눠진 이슬람 세력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하고 결국 1차 십자군 전쟁 이후 기독교도의 수중에 있던 성지 예루살렘까지 회복해 이슬람의 영원한 영웅으로 떠오른다.

살라딘의 구술을 유대인 서기 이븐 야쿠브가 기록한 형식의 이 소설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살라딘의 일대기를 좇고 있다. 실제로 살라딘의 가신들 가운데는 유대인, 기독교인 등 이교도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살라딘이 움직이는 경로인 카이로, 다마스커스, 예루살렘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작고 가냘픈 몸에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 사색적인 모습의 살라딘, 인간적이고 시와 예술을 사랑한 살라딘,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 살라딘 등 그의 여러 면모를 당시 이슬람의 사회상과 연계해 속도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살라딘과 이슬람 문명에 대한 찬사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마스커스 귀족들이 쿠르드족 출신인 살라딘에 저항하는 것을 묘사한 부분은 최근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뿌리 깊은 쿠르드족에 대한 차별을 되새긴다. 또 타리크 알리가 창조한 자밀라와 할리마를 통해 '이슬람의 천국이 남성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닌지'를 자문하는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살라딘이 김홍도 목사를 만난다면?**

이 책이 더욱더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의 좌파 지식인으로 유명한 타리크 알리가 작정하고 쓴 이슬람 소설의 첫 권이라는 점이다. 1943년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태어난 그는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며 좌파, 반전운동에 앞장선 지식인이다. 그의 책 <근본주의의 충돌>(정철수 옮김, 미토)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수잔 왓킨스 공저, 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은 국내에서도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은 타리크 알리가 1990년부터 이슬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기획한 이슬람 소설 5부작의 하나이다. 그는 이 소설 외에도 <석류나무 그늘 아래>, <돌기둥 여인> 등이 출간됐다. 이 소설들은 여러 나라에 번역돼 그 문학성을 인정받는 것과 동시에 이슬람 근본주의자 등의 맹공격을 받으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술탄 살라딘>을 번역한 출판사는 타리크 알리의 나머지 이슬람 소설도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타리크 알리는 "1차 걸프 전쟁이 터졌던 1990년에 BBC 방송에 나온 어떤 멍청한 논평자가 자신의 무지를 과시하려는 듯이, 아랍인에게는 문화가 없다고 말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이슬람 5부작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소설을 쓴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서구인에 비해 이슬람 문화에 대한 무지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을 보고 또 자연재해를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는 기독교인을 보고 타리크 알리는 어떤 심정이 들까? 아니 살라딘이 김홍도 목사의 얘길 들었다면 어떤 대응을 할까?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펼쳐지는 살라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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