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정신은 어떤 뜻에서 겁에 질린 영혼에 의해 갈팡질팡한다. 특히 젊은 영혼과 정신은 겁이 아니라 불신으로 인해 늘 동요한다.
의심이다. 그러나 의심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우의 의심(狐疑)'이요 둘은 '의심하는 어두운 귀신(疑心暗鬼)'이요 셋은 '참선의 의심(禪疑)'이다.
여우 같이 금방 의심에 빠지는 경향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일 가능성이 많고 어두운 귀신같은 의심은 살면서 많이 속아본 사람이 저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경향이니 후천적인 것이고 참선하는 스님이나 수도자가 스스로 끊임없이 화두(話頭)를 의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과 세계의 비밀을 깨닫고자 하는 참으로 적극적인 진리탐구 행위이다.
<화씨 9/11>을 만들어 세계의 양심을 뒤흔든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의 마지막을 "두 번 다시 안 속는다"로 매듭짓는다. 지금이야 이미 지나간 얘기가 되었지만 한동안 미국 시민의 의심, 아메리카 민주주의와 '팍스 아메리카(미국에 의한 세계평화)'에 대한 그 강한 회의주의와 비판의식은 반드시 새로운 민주주의에의 갈증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메리카와 유럽은 이제야말로 새로운 문명다운 문명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으로부터 불타오르는 새로운 사상과 문화에의 요구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집단적 참선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이미 그들 자신의 ‘이스트 터닝(East Turning, 東風)’ 안에 들어 있으니 동아시아로부터 오는 새 문명의 예감과 새 문화의 원형일 것이다.
우선 우리 젊은이들부터 강한 의심을 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그 대답이 나올 터인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2년 전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이 그 대답의 일부를 이미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세 가지다. 엇박, 치우, 한국 태극기.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발설한 바로 이 셋의 깊은 의미를 의심에 의심을 내서 탐구해야 한다.
의심하라!
반드시 답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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