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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생명ㆍ평화운동 이론ㆍ학술작업 그만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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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생명ㆍ평화운동 이론ㆍ학술작업 그만두겠다"

"남은 것은 후배들 몫", "동화, 쉬운 시 통해 기여할 것"

"나는 4ㆍ19 세대다. 하지만 막상 4ㆍ19 당시 우리는 그게 혁명인 줄 아무도 몰랐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붉은 악마' 세대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지난 2002년에 한 일의 의미를 모른다. 새로운 문명을 열어젖힐 가능성이 바로 거기 있다는 걸 젊은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낙관한다. 또 낙관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데."

김지하(64) 시인이 새해 벽두 펴낸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마지막으로 1980년 출옥 후 20년 넘게 해온 생명ㆍ평화와 관련된 이론ㆍ학술 활동을 중단한다. 김지하 시인은 대신 쉬운 시와 동화를 통해 생명과 평화 운동을 지속해 나갈 뜻을 밝혔다.

***"이론ㆍ학술 활동은 이제 그만, 남은 것은 후배들의 몫"**

김지하 시인은 책 출간에 맞춰 지난 4일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나 생명ㆍ평화와 관련된 이론ㆍ학술 활동을 중단하기로 한 배경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생명ㆍ평화 운동의 맨 앞에서 대안 이론을 모색해오던 부담을 벗고 시인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

"몇몇 지인들이 지적하기도 했듯이, 나의 생명ㆍ평화 이론은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작가적 상상력, 시인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예견이었다. 이제 생명ㆍ평화 이론을 심화시키는 것과 관련해 내 몫은 다 했다. 솔직히 여기까지가 내 한계이다. 더 논리를 심화시키고, 실천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하겠지만 후배들이 멋지게 '김지하 죽이기'를 시도해 생명ㆍ평화를 축으로 한 대안 이론을 모색할 것을 기대한다."

이미 김 시인은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을 중심으로 2003년부터 세계생명문화포럼을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하는 등 후배 학자들과 함께 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한 대안 이론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올해 9월 개최될 예정인 세 번째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는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지식인, 활동가들이 모여 생명과 평화에 대한 논의를 심화할 예정이다.

***"생명과 평화의 대안 내놓을 때, 우리한테는 역량 있어"**

그가 이번에 펴낸 <생명과 평화의 길>은 지난 2년간 발표한 그의 기고문과 강의록을 묶은 것이다. 최근에 그는 인간 내면의 도덕적 황폐와 생태계의 전면적 오염, 세계 경제의 위기, 지진ㆍ해일을 포함한 끝없는 자연 재해, 테러와 전쟁 등 '대혼돈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세울 두 개의 축으로 '생명'과 '평화'를 주장해왔다. 이 책에는 이렇게 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만들어야 할 새로운 문명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와 구상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최근 남아시아를 휩쓴 지진 해일을 생태 위기, 문명 위기의 징후로 봐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문명을 이끌어왔던 서구의 과학적 추론 능력이 이런 대혼돈을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제 동아시아 담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중국은 유ㆍ불ㆍ선의 전통을 다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 역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때다. 이미 우리 문명 안에는 대안의 단초들이 많이 제시돼 있다. 예를 들어 '한'이라는 개념이 그렇다. '한'은 '하나'라는 개별성이자 '온'의 전체성이다. 이런 '한'은 새로운 문명의 특징이 돼야 할 탈중심적 네트워크와 통하는 면이 있다. 각각의 중심, 개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대안 문명의 단초가 우리 문명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2002년 월드컵과 촛불시위를 통해 분출된 젊은이들의 역동성에 주목했다. 또 그들이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탈중심적 네트워크의 전형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우리 역사에서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던 '지독한 개인주의자'들이 바로 20대~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붉은 악마로 또 촛불시위로 네트워크를 해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런 밀실의 네트워크야말로 탈중심적 네트워크의 한 특징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이런 의미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의미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짊어질 이들이기 때문이다"

***"쉬운 시와 동화를 통해 상상력 펼치고파"**

김 시인은 후배들에게 생명ㆍ평화 이론을 모색하는 부담을 넘긴 대신 자신은 쉬운 시와 동화를 통해 상상력을 펼쳐 보일 뜻을 밝혔다. 그간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돌보지 못한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을 돌보고 싶은 마음도 내비쳤다.

"앞으로 동화를 쓰고, 그림 그리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시를 쓸 계획이다. 동화에 대한 구상도 잡혀 있다. 월드컵 응원 때 '대~한민국' 외칠 때 3박자와 2박자가 어우러지는 엇박자, 치우천황 신화, 태극 이 세 가지를 주제로 동화를 써 볼 계획이다"

그는 "옥살이하고 건강 챙기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돈도 좀 벌어야 한다"며 "동화를 쓰면 그 동안 낸 책들보다는 돈이 되지 않겠느냐"는 농담 섞인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해온 김지하 시인의 성과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 된 듯하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시와 동화는 그 치열한 과정에서 좋은 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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