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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은 직접 예약"…외로운 일본, 고도성장기를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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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은 직접 예약"…외로운 일본, 고도성장기를 그리워하다

[김성민의 'J미디어'] '비극의 시발점' 아니었던가?

'이제 더 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

1956년 일본에서 유행한 말이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경제백서>에 실린 이 한 줄의 문장은, 패전으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된지 불과 10여년 만에 일본의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10여년이 지난 1968년, 일본은 당시 서독을 누르고 국민총생산(GNP)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침략전쟁의 상흔과 고도성장의 기적이 교차한 1950~60년대는 무려 64년 간(1926~1989)이나 이어진 쇼와(昭和. 일왕 히로히토 시대의 연호) 시대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50~60년대는 일본인들의 감정 속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남아있는 듯 하다. 마치 한국인들에게 박정희 시대가 그런 것처럼, 경이로운 속도의 고도성장이 남긴 빛과 그림자에 대한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치열한 평가/재평가의 작업 속에서 끊임없이 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일본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80년대 말,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과거의 화려했던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른바 '쇼와 노스탤지어(昭和ノスタルジー)'라는 현상이다.

그 후 50~60년대에 대한 향수는 영화, 드라마, 만화, 광고 등 수많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폭넓게 생산, 소비되어왔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성장의 기적을 만끽했던 '좋았던 그 시절'이, 일본인들에게 있어 하나의 '판타지'로 각인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 '쇼와 향수'는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다. 1958년 도쿄타워가 막 완공될 즈음을 배경으로 도쿄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그린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개봉 당시(2005년)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컴퓨터 시각 효과로 완벽하게 재현된 50년대 도쿄,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인 3번가는 언제나 사람냄새와 웃음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됐다. ⓒ프레시안
무덤도 홀로 예약하는 '무연사회' 속 개인들

그렇게 지난 20여년 간 '쇼와 노스탤지어'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 속에서 증식해왔다. 어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상실감을 메워주는 보완물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에게는 보잘 것 없어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훈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무연사회(無縁社会)' 현상 역시 많은 일본인들의 '쇼와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 있다.

'무연사회' 현상이란 장기화된 경기침체, 저출산·고령화, 독신층의 증가, 평생 고용보장의 감소, 비정규직 비율 증가 등으로 인해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관계의 끈 즉 고향, 가족, 직장 등과의 인연이 끊어지면서 야기되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을 말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신원불명이나 유족이 시신 인도를 거부하는 무연사(無縁死) 사망자의 수가 연간 무려 3만 2000명에 달하고, 유료 전화로 말상대가 되어주거나 신원 보증을 서 주고 공동으로 안치될 묘지를 알선하는 등의 '무연 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을 정도로 개인의 고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과 3월 <NHK>가 이러한 '무연사회' 현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자 30~40대의 젊은 층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을 '무연사 예비군'이라 칭하며 '무연사회'가 바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위기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고립화에 대한 공포감은 또 다시 '쇼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많은 이들은 현실의 각박함을 한탄하며 힘들었지만 서로 끈끈했던 그때를 떠올리고, 그 기억 속에서 당시의 사람 냄새를 맡는다.

'향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러나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50~60년대에 대한 향수는 정작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투영하고 있는가. 오히려 대중문화로 포장된 알맹이 없는 판타지를 통해 문제의 지점들을 흐리게 하고, 문제의식 자체를 마비시켜버리는 것은 아닌가.

'무연사회' 문제만 봐도, 그것이 고도성장과 함께 시작된 철저한 자본주의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사실은 '좋았던 그 시절'이야말로 지금 이 여러 비극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향수 문화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막연히 그 시절이 좋았다는 식의 넋두리가 판타지를 넘어 하나의 지식으로까지 확대되어 버리는 과거회귀적 사회 분위기에서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동력을 기대하기 힘든 것 역시 사실이다. 그것은 60~70년대를 숭배하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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