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뉴딜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국민복지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확고하게 표명했다는 점일 것이다. 뉴딜의 실질적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루즈벨트에 대한 국민의 신망은 깊었고, 연방정부가 국민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회복시켜주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경제지표상의 회복보다 심리적ㆍ정서적 차원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기업도시특별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노무현식 '뉴딜정책'이 닻을 올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미국 국민에게 희망을 준 1929년 미국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의 '원조' 뉴딜정책과 전혀 다른 반응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미국사를 연구하는 박진빈 연세대 강사는 최근 <역사비평>(2004년 겨울, 통권69호)에 기고한 '꺾여진 개혁의 날개 : 뉴딜과 그 적들'이라는 글을 통해 원조 뉴딜정책의 특징을 살피고,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기업친화적인 뉴딜정책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고 지적해 주목된다.
***루즈벨트 뉴딜, "복지문제, 주택문제, 노동문제 해결이 큰 특징"**
박진빈 강사는 "굳이 명칭 때문이 아니더라도 루즈벨트의 뉴딜 정부와 한국의 노무현 정부 사이에는 여러 가지 유사성이 관찰된다"며 "미국이 경험하던 대공황의 위기와 충격은 오늘날 한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과 비견되며, 더욱이 바로 그런 지속적인 경제위기와 국민생활 불안정에 대한 책임론이 기존 정치권과 기득권에 대한 유례없는 불신임을 초래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정치와 일반국민을 위주로 하는 정치에 대한 강렬한 희망으로 불출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박진빈 강사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뉴딜정책과 미국의 그것은 전혀 방향이 달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진빈 강사는 "여느 개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뉴딜은 추구했던 모두 성취하지는 못했으나,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며 "특히 '사회보장법', '와그너 주택법' 그리고 '노동관계법'은 미국사의 "잊혀졌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던 루즈벨트의 약속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진빈 강사에 따르면,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5년부터 시작된 '제2차 뉴딜'을 통해 사회복지를 연방정부의 영역으로 끌어왔던 사회보장법, 서민들에게 양질의 주택을 싼 이자에 낮은 위험 부담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와그너 주택법, 노조 합법화 등 노동자 권익 보호를 이끌어낸 노동관계법 등 개혁 입법을 통해 복지국가로서 미국을 탄생시켰다.
실제로 이들 정책은 대공황으로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서민, 도시 노동자들을 위한 것으로, 이후 이들을 확고부동한 루즈벨트 지지자, 민주당원으로 정착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서로 다른 사회적ㆍ지역적ㆍ인종적 집단들의 정치적 결합을 말하는 이른바 "뉴딜 연합"을 일구어낸 것이다.
***"뉴딜, 한계 불구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 믿음 심어줘"**
박진빈 강사는 "루즈벨트의 이런 개혁적 정책들도 추진되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과 각종 이권 집단들과 타협하면서 보수화되는 과정을 겪게 됐다"며 "국민의료보험의 좌절, 소득 수준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주택 정책을 만들어 계층 차이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빚은 점, 어용노조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 등이 누락돼 193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쇠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점"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미국의 뉴딜정책이 가진 한계를 지적했다.
박진빈 강사는 "하지만 개혁의 변질과 한계에 대한 비판이 뉴딜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뉴딜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그 전에는 연방정부에서 전혀 관여하지 않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냈다"고 지적했다.
박진빈 강사는 "뉴딜이 이후 미국사에서 다시 오기 힘들었던 미국의 체제적 결함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호기를 날려버리지 않았더라면, 뉴딜이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린 재분배 정책과 시장 자체의 개혁을 단행했더라면, 오늘날 미국 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식 뉴딜, '원조' 뉴딜과 달라도 너무 달라**
노무현 정부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의 3가지 특징과는 정반대로 정책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만든 국민연금 기금을 경기부양을 이유로 공공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움직임을 추진하고 있으며, 분양원가 공개와 같은 서민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도외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던 도시 노동자들은 지금 노무현 정부가 가장 적대시하는 세력의 하나로 변했다.
박진빈 강사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최근의 동향을 보면 애초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한국판 뉴딜 개혁'이나 '기업도시 건설' 등 노무현 대통령이 내놓은 새로운 정책안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기업 친화적인지 증명해보이려는 설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ㆍ도시 노동자 등 "잊혀졌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과는 그 성격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이다.
박진빈 강사는 "뉴딜의 한계가 곧 미국 개혁의 한계가 되어 그 역사적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의 개혁 세력은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야당이나 보수 언론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개혁 세력 내부를 정비하고 미국사의 교훈에 눈뜰 때"라고 노무현 정부와 개혁 세력에 대한 당부로 글을 맺었다.
박진빈 강사는 "뉴딜의 가장 큰 성과는 정부가 국민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회복시켜준 점"이라며 "이것이 어떤 경제지표상의 회복보다 심리적ㆍ정서적 차원에서 큰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는 과연 이 역할을 하고 있는가?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냉정하게 자문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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