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생명'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국내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대답을 가지고 경기도 파주에 모였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파주에서 '생명과 평화'에 대한 대안 모색이 활짝 만개한 것이다.
***"한국 '생명학', 문명 대안으로"**
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2004가 12일부터 파주 아시아 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2박3일 일정을 시작했다. 2003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모심, 힘찬 살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는 특히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한 지식인들의 고민이 '생명학'이라는 우리 고민으로 집약될 예정이어서 그 성과가 주목된다.
김지하 시인은 개막식에서 "21세기 인류와 자연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존'을 이끌어 내기 위한 대안 사상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는 그것의 한 대안으로 '생명학'의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이번 행사에서 국내 지식인들의 고민을 집약한 다음, 2005년과 2006년에는 '생명학'에 대한 고민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와 환태평양, 전세계적 규모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특히 김 시인은 이날 기조 연설에서 "생명과 평화운동의 문화원형으로서 '한'에 대해 주목할 것"을 제안하면서 앞으로 정립될 '생명학'의 단초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시인은 '한'은 지배-억압, 인간-자연 등 온갖 이분법을 전제해왔던 주류적인 서구 사상과 그 반작용으로 나왔지만 개체의 개별성과 자율성을 무시해왔던 기타 서구 사상의 한계를 동시에 넘는 '관계'의 사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풍류·기철학·동학에서 찾자"**
김 시인이 화두를 던진 '생명학'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은 각 주제마당에서 계속됐다.
'서구 생태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주제마당1에서는 서구의 합리주의가 가져온 생명의 총체적 위기를 모색하는 대안적 사상을 우리 전통 사상에서 찾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시도됐다. 특히 12일에는 최치원의 풍류 사상, 조선조 기철학과 동학 등이 새로운 생명사상의 기반이 될 수 있는지가 진지하게 검토됐다.
최영성 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그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최치원의 풍류 사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최영성 교수는 "한국사상 역시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것이 그 기본 정신이었다"며 "특히 그 생명사상의 원류를 최치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치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초부터 어진 마음과 뭇생명체를 살리기 좋아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봤다"며 "이런 전제는 그의 철학사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현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최치원의 사상은 단지 사람들에게 '어짊'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생태계로도 그것을 확장해야 한다는 적극성을 띠었다"며 "그것은 최치원의 사상을 넘어 국보 제2백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조형물로도 자연스럽게 표출됐다"고 지적했다.
이현구 호서대 교수는 조선조 기철학에 담긴 생명사상을, 오문환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동학의 생명평화 사상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3일에는 김재희 언니경제연구소 소장이 카오스이론과 여성주의의 연대를 통해 근대 과학에 뿌리를 둔 지식 전반과 남성중심적 사유 방식에 대한 비판적 극복을 시도한다. 또 고려대 강수돌 교수는 생명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발표한다.
***"동양의 세계관-문화에 깃든 생명사상"**
주제마당1에서 우리 '생명학'을 찾기 위한 담론적 실천이 논의됐다면, 주제마당2에서는 우리 문화에 녹아있는 생명사상과 세계관을 재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12일에는 유실하 전 요녕대 교수가 율려와 삼태극 사상에 담긴 생명사상을 재조명했다. 특히 유실하 교수는 "공자나 노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가나 도가의 구별이 생기기 전에 이미 완성된 동양 고대 음악에는 이미 그 음악을 만든 세계관이 음의 질서로 표현돼 있다"고 지적해 관심을 끌었다.
우실하 교수는 "동양 고대 음악에는 우주적 생명 현상의 원리를 음의 질서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들어있었다"며 "그것이 가장 잘 간직된 것이 바로 한국 전통 음악 특히 민간 음악"이라고 지적했다.
13일에는 사진작가 김수남 씨가 아시아 여러 민족의 생활현장에서 체험한 생명의 소통을 전하고, 미학자 진중권 씨가 디지털 시대에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생명관을 논의한다. 특히 진중권 씨는 최근 방한해 각 언론에 대서특필된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에 대한 비판을 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반생명 시대, 무엇을 해야 할까?"**
주제마당3에서는 '생명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생명 위기의 대안을 농업에서 찾는 것을 주장한 정경식 씨는 "산업 문명으로 빚어진 대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생명의 존재 가치를 찾는 데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재생순환적 생활방식을 복원하고, 영성적 감각을 키우고, 자연 치유 능력을 회복하며, 공생적 관계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 농업 정책과 토지 제도의 대개편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여 많은 공감을 얻었다.
화석연료로 지탱하는 사회가 얼마나 반생명적인 사회인지를 역설한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는 "이제 태양에너지의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태양에너지 시대는 과거 화석연료로 지탱하는 사회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해 지금처럼 에너지를 무한정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명을 위하고 살리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동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제마당3에서는 13일 계속해서 장재연 시민환경연구소장이 공기, 김수현 약사가 먹을거리를, 권원태 기후변화연구실장이 기후에 대해서 논의하는 등 구체적인 문제와 생명의 관계를 천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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