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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고 이오덕 선생, 미발표시 12편 공개

우리말글 살리기에 평생을 바쳤던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유고시 3편 등 미발표시 12편이 공개됐다. 이 시에는 이오덕 선생이 생전에 강조한 우리말글 살리기와 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선생의 유언과 같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안개로 가득 차고 안개로 덮인 잿빛 세계"**

이오덕 선생의 미발표시 12편이 반연간 시전문지 <시경>(박이정 펴냄) 2004년 하반기호(통권 제5호)에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 가운데 '노아의 방주', '내 어릴 적 동무들', '빛과 노래'는 2003년 8월25일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1주일여 앞두고 병상에서 쓴 작품들이다.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여러 동시를 발표한 적 있으나, 이처럼 서정시를 창작해왔고 이것이 <시경>에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시들은 평소 이오덕 선생이 강조해온 우리말글 살리기와 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에 대한 경고가 잘 형상화돼 있어 선생의 유언처럼 읽힌다.

오후 1시인데도
아직도 방안이 어둑어둑해
며칠 만에 문 열고 나갔더니
이런!
미루나무도 감나무도
바로 앞에 있던 집도 없고
쳐다보이던 부용산도
간 곳 없이 사라졌다.
천지가 허어연 안개
안개뿐이다.
하늘도 허어옇고
땅도 허어옇고
동쪽도
서쪽도
전신만신 허어연
안개다.
구름이 덮여 있었는 줄로 알았더니
날마다 안개 세상이었네.
방안에만 갇혀 있었으니
알 턱이 없지.
밖에 나와 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
밖에 나와 보았더라도
그 맑은 늦가을의 하늘을 가슴에 담아 놓지
않았더라면
안개 속에 묻혀 있어도
안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어찌 알겠나.
안개가
내 온몸을 싸고
내 머릿속까지 파고들어와 있겠다. ('안개' 전문)

하늘과 땅이
안개로 가득 차고
안개로 덮였다.
산도 없고
들도 없고
바다도 강도
집도 나무도 길도
다 사라졌다.
오직 허어연
그 잿빛 속에서
갑자기 무엇이 불쑥 나타나
펑! 하고 터져서
모든 것이 박살날 것 같다.
높은 집들이 모조리 내려앉고
인간들이 모조리 산산조각 찢어져
먼지같이 흩어져 버릴 것 같다.
지구가 조각조각 깨어지고
태양이 빛을 잃고
암흑의 우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하늘과 땅이 안개로 덮여 있는
이 불안한
2001년
11월의
25일. ('무서운 안개' 전문)

특히 이오덕 선생은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지구 환경과 문명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이오덕 선생은 '무서운 안개'라는 시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를 "안개로 가득 차고/ 안개로 덮인" "잿빛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 세대여!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라"**

이오덕 선생은 작고하기 사흘 전날 아침에 작성한 '노아의 방주'에서도 "지구는 암흑"이라며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무지개와 노을이 사라지고" "빛과 물이 없어져 가는" 세상에 대한 이오덕 선생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오덕 선생은 '행복'이란 시에서 "그 끔찍한 지옥의 광경을/ 신문에서 읽고 난 다음에도/ 나는 또 산에 올라갔고/ 쪽빛 하늘을 쳐다보았고/ 달개비꽃을 보고 찬탄했고/ 장대로 밤을 털고 떨어진 밤송이를 발로 손으로 까고/ 그리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밤맛을 즐겼다"며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세상이 "끔찍한 지옥" 같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행복'에 대한 바람을 놓지 않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산에 올라가
쪽빛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밤나무 밑에 가서
밤알을 주우면서
돌아와 밤을 쪄
까먹으면서
내가 행복하구나
생각했다.
그 끔찍한 지옥의 광경을
신문에서 읽고 난 다음에도
나는 또 산에 올라갔고
쪽빛 하늘을 쳐다보았고
달개비꽃을 들여다보고 찬탄했고
장대로 밤을 털고 떨어진 밤송이를 발로 손으로 까고
그리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밤맛을 즐겼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지옥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지옥이 아니라는 생각
지옥을 보면서
나는 더욱 행복하다는 생각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다는 생각
그저 그런 것이 행복이란 생각
그것밖에는 모두 불행이란 생각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행복' 전문)

이오덕 선생은 '절망' 대신 '다른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이 선생은 '노아의 방주'에서 다음 세대에게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재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노아의 방주'를 만들 것"을 권유한다. 다음 세대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미친 세상'에 물 들지 않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지구는 암흑이다.
그 착한 사람들
순한 산짐승처럼
살던 사람들
모두 다 죽고
외롭게 살다가 죽고
학살당하고
모조리 돈에 환장이 되어
다만 죽음의 길로만 달려가고 있다.
미친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는 앞에는
천 길 낭떠러지.
정우야 너는 알겠지,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을.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그게 걱정이다.
몇 해 전 과천 우리밀국숫집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모촌 선생,
눈이 어두워 길에서 사람을 못 알아본다던
선생을 내가 먼저 손잡으니
그렇게도 반가워하면서 하시던 말
"이제 앞날에 아무것도 바라볼 것 없어요.
멀지 않아 끔찍한 마지막이 올 겁니다.
지금 우리 요만큼 살고 죽는 것이
가장 좋아요"
정우야,
김매고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너는 알겠지.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을
무지개와 노을이 사라지고
빛과 물이 없어져 간다는 것을.
그러나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이 걱정이구나.
그래서 정우야 부탁한다.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재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라.
미쳐서 무섭게 날뛰는 사람의 거리를 멀리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산나물 산딸기 따먹으며
살아라.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은 그런 생각 없느냐 ('노아의 방주' 전문, 2003년 8월20일 새벽)

***이오덕 선생, 삶 마감하기 전 심경 털어놓는 시**

이 유고시들에는 또 삶을 마감하는 이오덕 선생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오덕 선생은 작고하기 전에 쓴 '내 어릴 적 동무들'과 '빛과 노래'라는 시에서 한국 현대사와 같이 해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아버지 어미니" 또 "어릴 적 동무들"을 만나러 곧 세상을 등질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내 어릴 적 동무들
모두가 먼저 가 버렸네
눈감으면 그 얼굴 어째서 이렇게도 또렷할까
그 목소리 이렇게도 다시 살아날까.
우리 앞집 수찬이는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병들어 죽었다.
우리는 수찬이 집 장판 방바닥에 엎드려
신문지를 펴 놓고(그 신문지는 우체국에 다니는
수찬이 자형한테서 얻어온 것이었다)
먹을 갈아 붓글씨 쓰는 흉내를 내었다.
수찬이 집 옆 재수는 언제 어디서 죽었을까.
큰물지면 그 시뻘건 흙탕물 찢어진 고무신으로 떠서
구멍난 곳으로 마시고는 동무들을 웃기던 그 재수.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슨 병으로 죽은 홍배.
아버지가 선생님이어서 공부도 잘하고
대구에 가서 무슨 중학교를 다니던
태동이는 무슨 일로 그만 미쳐서 죽었다.
천한 집에 태어났다고
지원병으로 끌려간 수천이는 해방이 되어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착하기만 하던 동무들
그리운 그리운 동무들이었는데,
이제 그 동무들 다시 만나게 될까
될 것이다. 이토록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동무들 어찌 영영 인연이 끊어지겠는가
그 동무들은 반드시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이승에서 살아온 동안 언제나 나를
도와 주려고 하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빛과 노래 가득한 그곳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 전문, 2003년 8월18일 아침)

한 달 동안 병원에서
밤낮 노래를 들었다.
며칠 뒤에는 고든박골 병실로 옮겨
햇빛 환한 침대에 누워
새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를 듣는다.
아, 내가 멀지 않아 돌아갈 내 본향
아버지 어머니가 기다리는 곳
내 어릴 적 동무들 자라나서 사귄 벗들
모두모두 기다리는 그곳
빛과 노래 가득한 그곳,
그러고 보니 나는 벌써
그곳에 와 있는 것 아닌가
그곳에 반쯤 온 것 아닌가
나는 가네 빛을 보고 노래에 실려 ('빛과 노래' 전문, 2003년 8월19일 아침)

***이오덕 선생 글쓰기 철학 담은 책도 20년만에 다시 나와**

한편 그동안 이오덕 선생의 철학을 출판으로 실천해왔던 보리 출판사에서는 1983년에 나와 글쓰기 지도서의 고전이 된 이 선생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새로 펴냈다.

이 책은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 운동'의 씨앗이 된 책으로, 글쓰기 교육 운동에 뿌리 내린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정신과 지도 방법을 한눈에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이오덕 선생은 잘못된 글짓기 교육을 해온 기존 교육을 비판하고, 글쓰기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이 이 선생은 이 책에서 '어린이의 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어린이의 글에는 어린이의 삶과 이 시대의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며 "어린이의 글을 모든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이 선생의 당부는 어른의 '잘못된' 세계관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현재의 교육 대신, 세상에 물들지 않는 어린이들의 세계관에서 이 세상을 바꿀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이 선생은 또 글쓰기가 특정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이 글을 쓰고, 또 쓴 글을 논의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선생은 "아이들에게 모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른들은 특수한 전문인이 쓴다는 문학 작품빡에 쓸 글이 없다면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냐"며 "직공도 청소부도 가겟집 아주머니도 누구나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오덕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아이들을 믿게 된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아이들을 배우게 된다. 그 누가 아이들의 글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했던가? 그런 사람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도, 아이들이 읽을 글을 쓸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글이 아무 가치도 없다면 어른들의 흉내를 내게 한 때문이다. 아이들을 원숭이나 앵무새로 만들어 놓고 그런 아이들을 얕보는 어른들이 뜻밖에도 많다. 아이들을 믿게 하는 글, 아이들을 배우게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살멩 긍지를 가지는 글을 쓰게 해야 한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글쓰기보다 더 나은, 아이들을 지키고 가꾸는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40년 동안 아이들과 살면서 여기에 정신을 판 까닭이 이러하다"

이런 이오덕 선생의 정신은 이번에 공개된 시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에도 담겨 있다.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나도 너희들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단다.
그까짓 어른들의 노래, 알 수 없는 말
맛도 향기도 없고 신명도 안 나는 소리
더러는 엉터리 거짓도 있고
고약한 냄새 풍기는 것도 많아
듣기에도 역겨워 귀를 막고 살았지.
그래서 아이들의 노래만 부르면서
살아왔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들과 산에서
뛰놀면서 일하면서 노래로 살았지.
봄이면 할미꽃, 진달래, 살구꽃 노래,
보리밭 종달새, 빨랫줄의 제비들도 함께 부르고,
여름이면 냇물에서 버들치와 피라미와 함께 부르고,
풀밭에서 송아지와 염소들과 뛰놀면서,
꼴을 베면서, 꼴망태 지고 오면서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 부르고,
물새 소리, 바람 소리 따라 휘파람으로 부르고,
꾀꼬리 장난 소리, 뻐꾸기 흥겨운 장단, 산비둘기 구성진 노래맞춰 부르고,
감자를 캐면서 감자 구워먹는 소리, 옥수수를 꺾으면서 고소한 옥수수 먹는 노래 부르고,
가을이면 가을 바람 시원해라 수수밭 조밭에서,
허수아비 서 있는 논에서 후여 후이 새 쫓는 노래,
나물 쑥을 뜯으면서 냉이를 캐면서
산에 올라 머루 다래 따먹다가 해가 지면
새빨간 구름을 쳐다보며 노을 노래 부르고,
겨울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떡가루 눈,
눈을 받으며, 쌓인 눈을 밟으며, 눈을 뭉치며 눈 노래 부르고,
얼음을 타면서, 처마 끝 고드름 쳐다보면서도 부르고,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옛이야기 듣다가
부엉이 부엉부엉 함께 부르고
이렇게 사시장춘 노래로 살았단다.
마을에는 가는 곳마다 아이들 소리
골목마다 아이들 소리.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없구나. 노래 소리가 없구나
아이들 모두 어디로 갔지?
그렇지, 모두 모두 방 안에 갇혀 있구나
방 안에서 노래소리도 없이 살아가는구나
들풀의 향기, 다 잃어버리고, 방 안에 갇혀
몸도 마음도 그 무엇에 짓눌려 노래가 나오지도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귀다툼으로 살아가는구나 어제도 오늘도.
그래도 음악시간이 있다고? 그렇지,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를 선생님 따라 부르지.
그러나 그 노래는 너희들 것이 아니지.
너희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노래가 아니지.
그래서 음악 시간에만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
너희들은 노래를 잃어버리고
노래를 빼앗겨 버리고
그래서 괴상한 어른들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괴상한 어른들이 되어가고 있단다.
이 세상에 노래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가엾은 아이들이 있을까.
이 세상에 노래를 빼앗긴 아이들보다 불행한 아이들이 있을까.
그러나 여기
천만 다행히도 너희들의 노래가 나왔구나.
너희들의 노래가 터져 나왔구나
살아 있는 싱싱한 너희들의 말,
온몸에서 터져나온 너희들의 시. ('애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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