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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권을 빼앗긴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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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권을 빼앗긴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위해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청소년 참여 기구,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2019년, 울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의 시의회에서는 '청소년의회조례'가 통과되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부 보수 단체들이 청소년의회가 청소년을 정치에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의회 조례는 선거로 뽑히거나 선발된 청소년 의원들이 지자체의 청소년 관련 정책에 의견을 제시하고 입법 제안 등을 할 수 있도록 청소년의회를 운영하려는 시도였고, 청소년 참여권과 민주주의교육을 확대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조례안이 청소년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의 벽에 부딪쳐 좌절된 것이다. 특히 울산의 청소년의회조례는 청소년 의원을 청소년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으나, 바로 그 점이 반대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사실 청소년의회나 이와 비슷한 '청소년 참여 기구'는 여럿 존재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자체 청소년참여위원회는 2018년 기준 광역 시·도에는 17개, 기초 시·군·구 단위에는 171개 존재한다. 이런 마당에 대구·울산의 청소년의회 추진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만큼 청소년 인권 확대 흐름에 대한 반동 현상이 거세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기존 청소년 참여 기구들이 존재감이 없고 인지도도 낮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반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시 행정적인 참여 기구

한국의 청소년 참여 기구로는 크게 3가지가 꼽힌다. '청소년활동진흥법'에 의해 만들어진, 청소년수련시설 내의 청소년운영위원회, 그리고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만들어진 지자체의 청소년참여위원회와 중앙 정부 단위의 청소년특별회의이다. 이 중 정부의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는 청소년참여위원회와 청소년특별회의이다.

청소년참여위원회는 1999년부터 지자체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앞서 언급했듯 대다수의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자체의 정책과 사업에 대해 청소년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한 기구이다. 지역마다 '미래세대위원회'라든지 '차세대위원회'라든지 여러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운영 방식이나 활동 내용도 편차가 큰 편이다. 또한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여성가족부에서 중앙청소년참여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특별회의는 2005년부터 정식 운영된 참여 기구로, 총 400여 명이 참여하여 1년에 1회 정책 과제를 정리하여 정부에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청소년특별회의는 청소년참여위원회의 구성원들과 선발직 청소년 위원 등으로 꾸려지며, 지역 청소년참여위원회는 청소년특별회의의 지역 회의 역할도 한다. 상당수 구성원이 청소년참여위원회와 겹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참여위원회와 청소년특별회의는 모두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9세부터 24세까지 참여할 수 있다. 비교적 근래에 생겨 나고 있는 청소년의회는 주로 아동친화도시 유니세프 인증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이 꾸리기 시작한 지역 참여 기구이다.

이러한 청소년 참여 기구들을 아예 들어 보지도 못한 청소년들도 많을 것이다. 정부에서 공식 운영하는 청소년 참여 기구인데도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실정이다. 이는 청소년참여위원회나 청소년특별회의를 구성하는 방식에도 원인이 있다. 대부분 자원한 사람들 중 정부 기관이나 전문가가 심사해 '선발'하는 방식이며, 보호자 동의는 필수, 학교장이나 청소년시설 기관장의 추천을 요구하거나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대부분은 그런 기구에서 참여자 모집을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며, 관심이 높은 청소년들 아니면 교사나 청소년시설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권유를 받은 소수의 청소년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선발 방식하에서는 위원들은 청소년 대중에게 어필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동기도 약하다. 또한 학교장 추천과 공무원·전문가에 의한 선발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들이 보기에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을 자의적 기준으로 뽑기도 하는 등 편향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선발된 청소년들이 과연 청소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소년 참여 기구들의 자율성도 문제다. 가령 청소년특별회의는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는 연간 일정에 따라 회의와 토론, 행사 등을 진행하고 정책 제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청소년참여위원회도 자율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의제를 설정하여 활동하거나 예산을 운용할 권한이 없는 곳이 많다. 형식적으론 자율성이 있더라도 담당 공무원이나 지자체장에게 간섭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 스스로 정치적 행위자로서 활동을 기획하고 현실을 조사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를 압박하는 활동을 할 결정권 및 자원이 없는 기구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확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청소년 참여 기구들이 실질적인 참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현재 청소년 참여 기구들이 가진 권한은 대개 정책 제안이나 자문, 의견 제출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정책 제안 수용률이 높다고 평가되지만, 이는 정부 부처에서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응답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 실제로 구현되는지를 모니터링한 결과는 아니다. 청소년 참여 기구에 참여해 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청소년 참여 활동이 UN에서 제시한 청소년 참여 수준 5단계 중 1단계 "어른들이 의사 결정을 하고, 청소년에게 지시한다"에 해당한다는 응답자가 37.4%, 2단계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문을 구한다"에 해당한다는 응답자가 35.1%로 체감하는 참여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참여 기구에서 제시한 의견이 반영될 것이냐는 전망에 대해서는 단 23.1%만이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없고 발의권, 거부권 등을 가지지 못한 참여 기구는, '청소년들의 의견도 들었다'라는 전시 행정, 변명거리용이 될 위험이 높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청소년 참여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아동의 의견을 '듣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큰 도전이 아니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그들의 견해에 적절한 비중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아동의 견해를 듣는 것 자체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선거권을 빼앗긴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위해


청소년의회 등 청소년 참여 기구를 별도로 두는 이유는 바로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권 연령 제한을 비롯하여 제도적·사회적으로 청소년의 참정권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 '선거권 없는/빼앗긴 자', '정치적 목소리가 작은 이들'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 청소년 참여 기구의 1차적 목적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 참여 기구의 목적이 청소년에 대한 교육, 연습 등이라고 여겼기에 많은 한계점과 문제를 낳았다. 청소년 참여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청소년 참여 기구의 연령 기준을 선거권 제한 연령 또는 피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과 연동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참여 기구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청소년 참여 기구의 구성원들은 청소년들을 정치적으로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한다거나, 학교·청소년시설·지역 단위의 대표들로 구성하는 방식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독일이나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청소년들이 직접 청소년의회 의원을 선출하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청소년 참여 기구가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충분한 예산이나 정책 연구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도 필수적이고,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율적 활동을 통해 청소년 참여 기구에서 여론 조사나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당사자들의 참여 기회를 만들며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도전적이고도 민감한 문제는 청소년 참여 기구의 권한을 얼마만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선 청소년의 참여권 보장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청소년과 직접 관련된 정책만이 대상이 아니라 모든 정책이 청소년 참여 기구가 관여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논의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필요하다면 직접 의회나 연단에 서서 발언하여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이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유의미한 주체로 서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는 권리, 사안에 따라서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통과 전 토론이나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등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단도 주어져야 한다.

그동안 한계가 많은 청소년 참여 기구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도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2016년부터 서울시 금천구의 청소년의회는 청소년 정당을 등록하여 비례대표제 방식의 '금천구청소년총선거'를 통해 꾸려지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울산, 대구에서 청소년의회가 무산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의 권리 확대를 막으려 드는 세력과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청소년 참여 기구가 제대로 세워지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이 그 배경에 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의 청소년의 참여와 권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가령 청소년 참여 기구가 실질적 권한을 가지게 되면 정당들이 의회에 들어가듯이 청소년 의원·위원들도 기존 정당과 관련을 맺고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는 청소년의 정당 가입 등이 금지되어 있고, 이러한 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하향을 비롯해 청소년의 권리를 확대하는 것은 청소년 참여 기구를 개혁하기 위한 또 다른 선결 조건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 이후에야 청소년 참여 기구는 장식, 들러리가 되지 않고, 청소년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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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청소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입니다.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고나서'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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