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의 거울, 기로에 선 이탈리아 노동운동"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의 거울, 기로에 선 이탈리아 노동운동"

[서평] 김종법의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이해>

'노동운동의 위기'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은 지금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꼼꼼하게 짚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후발 산업국으로 출발해 파시즘 체제와 전쟁을 치르고 유럽의 중요한 산업국가로 성장한 이탈리아의 사례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반추해보는 데 유용할 것이다.

이탈리아에 토리노 대학에서 이탈리아 정치와 노동운동, 정치사상사 등을 전공한 김종법 박사가 지난 1년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펴내는 <노동사회>에 연재한 이탈리아 노동운동사를 묶어 책으로 냈다. 이탈리아 노동운동을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 태동기부터 최근까지 훑고 있는 이 책은 노동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쓰여 더욱더 돋보인다. 김종법 박사는 이 책과 함께 최근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혁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그람시의 견해를 묶고, 해제한 <남부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주제들 외>(책세상 펴냄)도 같이 펴냈다.

이미 2000년에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관한 책을 펴낸 정병기 박사(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가 이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이해>(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펴냄)를 읽고 서평을 보내왔다. 김종법 박사와 정병기 박사는 한국 정치학계에서 드물게 이탈리아에 천착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편집자.

***전문적 독해가 선사하는 알기 쉬운 노동운동**

"항상 시끄럽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라", 언제나 혁명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주목할 만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한 이탈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1993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반세기만에 새로운 공화국이 건설된 이래 이 말은 쑥 들어갔다. '시끄러운' 분위기는 '혁명적 열기'가 끓는 가마솥이었으며, 로마 1천년의 호흡은 강력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온 노동운동의 열기에 이어진 것이다. 격동의 노동운동과 괄목상대할 노동자 권리투쟁을 거듭해 온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종법 박사가 쓴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이해>는 이러한 우리의 관심에 충분히 부합하는 책이다. 특히 2000년 벽두에 졸저 <이탈리아 노동운동사>(현장에서 미래를 펴냄)를 난해하게 써 놓은 후 보다 쉬운 소개서를 내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해온 평자로서는 이 책을 접하고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대한 전문적 독해로서도 손색이 없으며, 문장이 평이하고 정확하여 비전문가를 위한 소개서로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독해가 선사하는 알기 쉬운 소개서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이해>는 태동기에서부터 파시즘기를 거쳐 새로운 부흥기와 수세기를 경험하면서 최근에 이르는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노동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동기에서부터 작용한 이탈리아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뒤늦은 국가통일과 산업화 및 파시즘의 경험은 이탈리아의 중요한 특수성들로 이야기된다. 따라서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항상 정치와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좌파 이념을 강하게 띠어 왔다. 이 책의 초점도 대표적 좌파 노조인 노동총동맹(CGIL)에 초점을 두어 그 제도적 측면과 노선전환을 분석하고 있다.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전환의 계기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68운동이다. 이탈리아의 68운동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교회에서 사제와 평신도의 관계, 현실정치의 주역이었던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의식변화, 일터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변화를 가져왔다"(p.79). 68운동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일어났던 이듬해 "뜨거운 가을"의 노동운동은 "우리는 모든 것을 그리고 당장 원한다"(p.81)라는 구호에서 나타나듯이 노동계 전반의 근본적 문제제기와 해결을 요구하였다. 당시 사회 전체의 변화는 실로 "노동운동과 노동계의 지형을 바꿔놓을 만큼 커다란 것"(p.79)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수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 시기의 특징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첫째, 육체노동자 중심의 노조운동이 외연적 확장과 함께 전문직종과 중견간부들이 노동운동의 또 다른 중심의 한 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둘째, 공공부문 노조활동의 강화와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이 등장하였다. 셋째, 중소기업이 발전하여 대기업 일변도의 노동운동 흐름이 중소기업에까지 확대되었다"(p.87). 반면 1980년대 중반이후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침체와 이기주의적, 경제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주의적 노동 개념이 68운동을 거치며 새롭게 해석되었고, 그러나 68운동의 모토가 퇴색하자 노동운동의 실질적 목적이 임금인상으로 전락"(p.125)한 것이다. 이탈리아 노동운동 전체의 맥을 관통하는 이러한 입장은 이 책의 독창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정치적 지각변동도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 계기이다. 좌파 정치의 대두와 노조의 재강화가 새로운 코포라티즘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욱 활성화된 공공부문 노동운동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사회주의 이념의 약화를 노정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새로운 코포라티즘의 등장으로 재정비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주요 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도 최근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등장으로 새로운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한편 대중적 소개서로서 손색이 없는 이 책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아쉬운 점을 남기고 잇다. 우선 이념 스펙트럼에서 대단히 다양한 이탈리아 노동운동을 감안할 때, 노동총동맹(CGIL)에 대한 서술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두 노총과 자율노조에 대한 보다 균형 있는 분석을 기대한다. 다음은 역사 서술에서 인물 중심의 관점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함에 있어 좀더 다양한 변인들의 영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엽적인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단행본으로서는 치밀하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 반복되는 내용과 문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이 <노동사회>에 발표해온 글들을 모아서 편집한 결과라는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약속한, 보다 상세한 분야별 노동운동의 소개를 통해 보완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몇 가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관해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일독해야 할 책으로 서슴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