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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찍어내기', 그리고 4년전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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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찍어내기', 그리고 4년전 새누리당

[기자의 눈] 희생도 쇄신도 없이 지지층만 바라보는 '순혈주의'

4.15 총선이 두 달 안쪽으로 다가왔다. 보수진영에 부는 바람이 심상찮다. 2월 초순부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좋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선거 기계'라고 불리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당 지지율 상승과 함께 당내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 7일, 황교안(이하 모든 인명에 직함 생략)이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생환을 장담하기 힘든 험지였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부산의 유기준, 서울의 김성태·이종구·박인숙 등 중진들이 속속 불출마를 선언하며 힘을 보탰다. 말썽이었던 홍준표의 '고향 출마' 문제도 '고향 근처 험지 출마'로 봉합됐다. TK 지역 중진들은 저항 중이지만, 이제 물갈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김형오 공관위'발 삭풍이 이미 예보돼 있다.

한 쪽 물꼬가 뚫리자, 다른 쪽도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황교안의 종로 출마 선언 이틀 후인 2월 9일, 유승민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한국당과의 합당 방침을 천명했다. 막혀 있던 보수통합의 물꼬가 터졌다. 결국 '옛'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은 17일 '미래통합당'을 출범시켰다. 보수 야권이 총선을 겨냥한 양대 전략으로 들고 나온 '쇄신'과 '통합'은 이렇게 착착 진행 중이다.

주목할 것은, 통합·쇄신 과정에서 보수진영 인사들이 '지난 총선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의 공천이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하명을 받아 진행된 이른바 '진박 감별 공천'이다. 과거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의 마지막 작품인 2016년 총선 공천은 그의 은퇴작이자 자신의 정치생명을 끊어놓은 '망작'이 됐다. '진박 감별사'가 등장했고, 박근혜를 비판한 유승민계를 줄줄이 쳐냈다. 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청와대 '하명 공천'에 저항했으나 '옥새 투쟁'으로 희화화됐다.

보수진영이 와신상담하고 있는 4년 전 '망한 공천'의 요체는 단일성에 대한 희구였다. 한 마디로, 집권세력 내에서 박근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유승민은 '배신자'가 됐고, 김무성은 공천관리위원장 이한구에게 "이러면 대표가 물러나든 내가 물러나든 해야 한다", "과거에 보면 당 대표도 공천 안 준 적 있다"고 면박을 당했다.

청와대와 친박은 상대 당을 보지 않고 당내 경쟁자만 봤다. 총선 승리보다도, '친박 전위부대'를 양성하려는 게 청와대 정무라인과 '이한구 공관위'가 가진 전략적 목표였다. 민심 대신 '박심(朴心)'만 살폈고, 여론조사 결과를 빤히 보면서도 20% 전후의 골수 친박 지지층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청와대·내각 출신 낙하산 후보들은 이 틈으로 강하에 성공했다.

당시 민주당은? 총선 직전까지 당 대표를 맡고 있던 문재인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을 불러 총선 지휘봉을 맡겼다. 비대위원장도 아닌 '비대위 대표'가 된 김종인은 친노·친문 색깔을 빼고, 중도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당내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오히려 문재인이 나서서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그 결과는 지금 모두가 보고 있는대로다.

그런데 2020년 민주당은? 흡사 4년 전 새누리당을 보는 듯하다. 정부·여당 내의 비판 세력은 전멸했다. 2016년 유승민이 '배신의 정치인'이 됐듯, 2020년 금태섭은 '빨간 점퍼 입은 민주당 의원'이 됐다. '빨간 점퍼' 운운은, 어느 시점까지는 그저 한 원외 정치인의 주장인 줄로만 알았으나, 당에서 금태섭의 지역구를 '추가 공모 대상'으로 지정하고, 인재영입 케이스로 입당한 김남국이 이 지역구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금태섭 찍어내기'가 민주당 당권파 차원의 프로젝트처럼 됐다. 공교롭게도, 그 '어느 시점'마저도 보수진영의 통합신당이 출범한 17일이었다.

신문에 칼럼을 쓴 임미리를 고발했다가 취소함으로써 '민주당만_빼고'를 SNS 최대 유행어로 만든 민주당 공보라인은 문책조차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지지자들이 나서서 '대신 고발'을 하고 있다. 비단 임미리 사건뿐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일호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태도는 이 정부 내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국민청원 게시판과 대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2016년 총선 직전, 당시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유승민, 주호영, 류성걸 등에게 '당에서 배부했던 대통령 존영을 반납하라'고 해 '존영 논란' 사태를 빚은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존영? 지금이 여왕 시대냐") 그리고 심지어 당시 청와대는, 총선을 한 달여 남겨놓고 '박근혜 어록'을 펴내 눈총을 샀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어록집' 발간…靑 "역대 정부 최초") 당시 모 새누리당 정치인은 박정희를 일컬어 '반신반인'이라고도 했다. 모두 실화다. 지금과 같은 세기에 있었던 일 맞다.

지금의 일부 극성 여당 지지층은,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신격화했던,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이라던 극렬 보수 지지층의 거울상이다. 민심보다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면, 중도층 여론 동향보다 핵심 지지층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선거, 특히 총선에서는 '산토끼'를 겨냥하라는 게 이 바닥의 ABC 아닌가?

박근혜 정부가 총선 직전까지 했던 일들을 지금 돌아보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권자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국정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총선을 두 달 남겨놓고 야당의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을 일방 통과시켰다. 누리과정 문제로 서울시장 박원순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언쟁을 벌인 끝에 '국무회의가 국회 상임위냐'고 호통을 친 일도 있었다. 비판적인 유권자들에게 '해 보자 이거냐'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모두 2016년 2월에 있었던 일이다. 선거 두 달 전이었다.

지금 정부는 뭐가 다른가. 물론 가치적인 면에서의 내용 차이는 있지만, 외형적으로는 '일방 통과'인 패스트트랙으로 공수처법을 밀어붙여 처리했다. 대통령의 '마음의 빚'이 선거 승리보다 중요한지, 벌써 몇 개월 전에 장관직에서도 물러나 '서생'으로 돌아간 이를 아직도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국장이나 지검장이 윤석열을 막 보는 태도를 보이는 거나, 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 서울시장을 면박 준 일이나 '장삼이사'들이 보기에는 오십보백보다. 아, 그리고 청와대·내각 출신 낙하산들은 물론 이번엔 이쪽 땅으로 착지 중이다.

사실 장관 인선에 정말 치명적 문제가 있디거나, 윤석열을 존경한다거나, 공수처가 잘못됐다는 강한 소신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태도'다. 2016년 박근혜를 보며 사람들이 느꼈던 심정, 즉 '어디 한번 해 보자 이거냐', '약오른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게 진짜 심각한 문제다. 원 지지층에서조차 정부·여당의 '오만'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은 현재의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보수 야권은 쇄신도 통합도 진행 중인데, 민주당은 변화의 조짐이 없다. 문재인 정부 국정 철학에는 일점일호도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교조주의도 그대로고, 인적 쇄신마저 보수에 뒤쳐지고 있다. 불출마자 숫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국무위원으로 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실제 '희생'의 의미를 담아 불출마 선언을 한 중진 의원은 이해찬·문희상·원혜영·강창일·백재현 5인 뿐이다. 지지자들은 묻는다. 민주당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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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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