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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택시운전사…"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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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택시운전사…"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현장] '한미 FTA 저지' 故 허세욱 씨 3주기 추모제

허세욱을 기억하는가?

2007년 4월 1일, 초로의 택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이 한창이던 서울하얏트호텔 앞이었다. 몸 전체에 불이 붙어 까맣게 타들어가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외쳤다. "한미 FTA 폐기하라!"

늙은 택시 노동자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았던 걸까.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이른바 '참여'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놓고 잔인한 말을 쏟아냈다. "중졸의 택시 기사가 FTA에 대해서 뭘 아는가". 그리고 계속되는 비난들.

잇따른 노동자의 죽음을 두고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참여' 정부였다. '중졸의 택시 노동자'. 가방끈이 짧으면 사회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걸까.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는 달랐다. 항상 조용했던 사람, 나이가 어린 활동가에게도 항상 '선생님'이라 부르며 자신을 낮췄던 사람, 누구보다 꼼꼼하게 신문을 스크랩하며 사회 현안을 공부했던 사람,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의 주장을 억지로 관철시키기보다, 조용히 유인물 한 장을 건네줬던 사람…. 그가 바로 허세욱이다.

4월 15일은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외치며 분신한 고(故) 허세욱 씨가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3주기를 맞아, 1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추모제와 함께 <허세욱 평전>(송기역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발간 기념회가 열렸다.

▲ 고 허세욱 씨의 3주기를 맞아, 1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추모제와 함께 <허세욱 평전> 발간 기념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선명수)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허세욱 님이 자꾸 만나자고 하는 것을 제가 피했습니다. '인간 허세욱'이 없어지고 '투사 허세욱'만 남는 것 같아, 그런 그가 싫어졌습니다. 그 때 허세욱 님이 자기 유서를 보여줬어요. 우리 운동은 결국 사람을 위해 하는 거라고, 허세욱 님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읽어보지도 않고 그 유서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너무 후회가 되는 건, 그 때도 나는 그를 가르치려 했다는 겁니다. 제가 찢은 건 유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허세욱 님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고인이 생전 '사부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강인남 관악주민연대 활동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허세욱 씨는 20여 년 동안 관악구 봉천동 철거 지역에서 주민 운동을 하던 강인남 씨를 만난 이후, 그로부터 "많은 걸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보다 열 살도 더 어린 강 씨를 꼬박꼬박 '사부님', '선생님'이라 부르며 인연을 맺어왔다.

▲ 고 허세욱 씨의 유서. ⓒ허세욱열사정신계승사업회
강인남 씨는 이날 추모사에서 "날고 긴다는 뛰어난 활동가 선배들 보다는, 오히려 가난한 상황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살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며 "거창한 이론이나 들먹이는 게 아니라, 그런 묵묵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거기서 우리는 제2의 허세욱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는 오래 전, 자신에게 유서를 보여주는 허세욱 씨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매몰차게 다그쳤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고 말했다. '투사 허세욱'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간 허세욱'을 보고 싶다며 그를 비판했던 것이 못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 후회와 회환은 허 씨의 유서에 적혀있던 그의 마지막 말,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는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고인의 무덤 앞에서 공통적으로 꺼낸 말은 "죄송하다"였다. 한 참가자의 말처럼, "더 나아진 것 없이 오히려 퇴보한 세상"에 대한 죄스러움이었다. "이런 세상을 바라고 열사가 분신한 것이 아니"였기에 나오는 한탄이었다.

허 씨의 회사 동료였던 이성원 전 한독운수노동조합 조합원은 "허세욱 형님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며 "그렇게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에 목소리를 냈던 고인 앞에,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추모사에서 "허세욱 열사가 떠난 지 어느덧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그 이후 가중되는 민주주의·서민 경제·남북 관계의 위기는 열사가 바라던 세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자고, 민중에게 고통을 가져올 한미 FTA를 막아야 한다고 외친 허세욱 열사의 불길처럼 뜨거운 꿈을 우린 아직 만들지 못했다"며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민주노동당은 고인에게 '명예 당원패'를 헌정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신언직 위원장도 노회찬 대표의 추모사를 대독하며 "고단한 택시 노동자의 삶에서도 언제나 헌신적이던 동지의 유훈을 이뤄내지 못해 한없이 부끄럽다. 동지가 떠날 때 부르짖었던 한미 FTA 저지는 아직도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으며, 이명박 정부가 만든 더욱 누추해진 대한민국의 현실에 다시 한 번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 2004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에 참여한 고인의 모습. ⓒ허세욱열사정신계승사업회

'별이 된 택시운전사'…<허세욱 평전> 발간

이날 허세욱정신계승사업회는 허세욱 씨의 3주기를 맞아, 생전 '배움의 노동자'였던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회는 해마다 모이는 후원금에서 기본적인 운영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허 씨가 생전에 후원하던 서울 봉천동의 '두리하나'·'맑은샘' 공부방과 생계가 어려운 장기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 자녀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날 사업회는 1600여 일 넘게 투쟁 중인 기륭전자 조합원 자녀,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의 자녀 등에게 총 600만 원의 '허세욱 장학금'을 지급했다.

▲ 고 허세욱 씨. ⓒ프레시안(여정민)
한편, 이날 추모제에서는 2년여의작업 끝에 완성된 <허세욱 평전>도 선을 보였다. 이 평전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기록과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마흔을 넘은 나이에 봉천동 철거 싸움을 시작하다가 사회 운동에 첫발을 내딛고, 급기야 분신 자살을 선택한 허세욱 씨의 삶을 총 5부로 구성해 기록했다.

책을 쓴 르포작가 송기역 씨는 "책을 준비하면서 조사해 보니, 허세욱 열사가 생전에 택시로 다닌 길이 100만 킬로미터 정도 였다"면서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운동은 아직 1만 킬로미터도 오지 못했다. 허세욱 열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부끄러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이어서 "고인은 언제나 멈추지 않고 달렸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많이 외로워했던 것 같다"며 "그때도 하얏트호텔 앞에서 사람들을 홀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린다"고 말했다.

'전부 비정규직이니까' 자신을 위한 모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사람. 가난한 활동가들을 보면 항상 먹을 것을 챙겨주었던 사람. 조용히 택시를 몰고 가 온갖 집회 현장의 가장 뒷줄을 지켰던, 참 '평범했던' 사람. 강인남 씨는 <허세욱 평전>에 이렇게 썼다.

"허세욱 님. 저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특별한 투쟁가, 실천하는 운동가로 기억하기보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택시운전사 같았다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난한 우리들의 몫이라고 모두가 느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은 세상에 대한 삐딱이, 머리에 든 것 많은 똑똑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깨우치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특별한 위치가 되어, 특별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만나고 부딪히는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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