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자들이 지난 2000년 연구과정에 레이저 분리장치를 이용해 우라늄235 0.2g을 추출했다는 과학기술부의 발표가 국제사회에서 간단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등 핵무기보유국들은 '연구소 차원의 단순 실험'이었다는 우리정부 해명에 대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는 분위기며, 일본 보수언론들의 경우는 "한국, 극비리에 우라늄 농축" 등의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하며 그동안 한국정부가 이같은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북한도 앞으로 열린 6자회담에서 이 문제를 반격의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박정희 정부때 극비리에 추진했던 핵무기 보유 프로젝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2탄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기까지 하다.
***BBC방송 보도하자 과기부 서둘러 발표**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 국장은 2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지난 2000년 1~2월 대덕 원자력연구소에서 핵연료 국산화를 위해 소수 과학자들이 극소량인 0.2&의 우라늄(235) 분리 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돼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 이 내용을 보고, IAEA가 현재 방한해 사찰중"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과기부 발표는 우리나라가 실험실 수준일지라도 처음으로 핵무기 제조의 핵심기술인 농축 우라늄 추출에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기부는 원자력연구소가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4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과기부는 "이 실험은 일회성 과학실험이었으며 실험관련 활동은 직후 종료되었고 관련장비도 폐기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가 지난 2월 IAEA 안전조치 추가의성서를 비준하면서 채택된 과기부 고시에 따라, 원자력연구소가 보고한 뒤에야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기부의 이같은 발표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날 과기부의 긴급 브리핑은 영국 BBC방송이 2일 IAEA의 한국 사찰 소식을 보도하며 "한국이 성공한 우라늄 농축기술은 핵무기 제조 등 군사적 관련성을 가질 수 있으나, 한국 정부는 무기 개발 의도를 부인했다"며 "긴밀한 동맹국으로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한에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온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 같다"고 보도한 데 따라 서둘러 마련된 것이었다.
***日요미우리 "한국, 지난해 IAEA에 발각됐으나 사찰 거부"**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3일 IAEA 본부가 위치한 오스트리아 빈에서 취재한 기사를 통해 지난해 IAEA가 이같은 우라늄 농축 사실을 발견, 방한해 사찰을 하려 했으나 한국정부가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이날 "한국, 극비리에 우라늄 농축"이라는 제목의 빈 발(發)기사를 통해 " IAEA가 2일 한국 정부로부터 한국 서부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지난 2000년 레이저법에 의한 우라늄 농축실험을 행해, 적은 량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이는 IAEA에 사전신고하는 의무를 소홀히 한 데다가, 핵확산방지조약(NPT)의 보장조치협정을 위반한 게 된다"며 "한국정부는 '핵연료 국산화 연구였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핵확산금지를 지상명제로 삼고 있는 미국등의 불신감이 강화될 것은 필지의 사실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 보도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IAEA의 이번 한국사찰이 과기부 발표처럼 우리정부 보고에 따른 게 아니라, IAEA가 지난해 이 사실을 적발한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IAEA는 지난 2003년 중반께 한국 원자력연구소의 환경 샘플분석 과정에 고농축우라늄을 추출해 한국측에 사찰을 요구했으나, 한국측이 이를 거부했다"며 "한국은 올해 2월 IAEA의 강제적 사찰을 인정하는 추가의정서를 비준했기 때문에 사찰을 통해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스스로 공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핵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도 과거에 (한국과) 마찬가지 레이저법으로 한국의 경우보다도 더 적은 수 밀리그램의 농축우라늄을 추출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고 덧붙였다.
***美국무부, "해선 안될 일","IAEA 통고전 미국에 사전보고"**
미국도 적잖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과거에 했던 것은 일어나선 안될 일이었다"고 비판한 뒤, "IAEA의 완벽한 조사가 마무리된 뒤에 IAEA 이사회에 보고하면 우리와 다른 이사국들은 적절한 결론을 이끌어 내고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우라늄 농축 실험에 관해 한국 정부 및 IAEA와 접촉해왔다"며 "한국은 IAEA 신고를 위한 준비과정에서 미국에도 알려줬다"고 말해, 한국이 IAEA에 보고서를 내기 전에 미국에 먼저 이같은 사실을 통고했음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은 자발적으로 이같은 사실을 보고했고 이러한 활동이 제거됐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면적이고 완벽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더 이상 우려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투명성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보여준 협조는 비확산금지조약 하에서 국가들이 어떻게 의무를 준수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란의 농축우라늄 문제와 비교한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의 실험 규모는 훨씬 작다"며 "농축실험 수준이 어떠하든 요체는 한국의 농축 실험이 폐기될 것이며 이를 위해 한국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IAEA에 협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농축 실험에 대한 파키스탄의 협력 여부에 관해서는 "현 시점에서 그에 관해 아는 바 없다"며 "한국의 농축 실험이 어떻게 이뤄졌느냐가 IAEA의 조사 분야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이어 '이 문제가 미국의 대북 핵외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결론내리지 않겠다"며, 북핵 6자회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어떤 영향도 미칠 것으로 보지 않으며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IAEA사찰단의 조사가 끝나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오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보고할 예정이다. IAEA 이사회는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북한처럼 국제연합(UN) 안보리에 제소할 수 있다. 정부는 IAEA 사찰결과를 설령 UN안보리에 보고하더라도 이는 핵프로그램을 스스로 공개하고 폐기를 선언한 리비아의 경우와 같이 제재를 위한 게 아닌 '단순 보고용'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과 AP 통신 등 일부 외신들은 IAEA가 있는 빈의 서방 외교관들이나 일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 "이는 명백한 NPT 위반"이고 "무기급 우라늄 문턱에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북한-이란과의 형성평 차원에서라도 한국의 비밀 핵프로그램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로이터 통신은 비엔나의 IAEA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방 외교관들을 인용, "한국이 추출한 우라늄 순도는 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했다"며 "무기급 우라늄의 문턱에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외교관은 또 통신에 "이번 한국 우라늄은 일반 민간 프로그램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이 프로그램이 평화적이라고 말하고 있고 IAEA는 이 문제와 관련 어떠한 판단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동시에 통신은 한 외교관을 인용, "이번 실험을 한 과학자들은 정부 운영 시설에서 일하는 정부 공직 신분"이라고 전해 정부 개입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듯한 보도를 했다.
***우리 정부, 우라늄 고농축기술 확보**
이번에 성공한 우라늄 농축은 우라늄235(0.7%)와 우라늄238(99.3%)로 조성된 천연 우라늄에서 우라늄238을 제거해 핵분열 물질인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핵연료로 쓰이는 저농축우라늄에는 우라늄235가 3% 들어 있으며,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순도 9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현재 IAEA는 우라늄235 농축 정도가 20% 이상이면 고농축, 그 밑이면 저농축으로 분류한다. 정부는 IAEA에 이번에 우리가 추출한 우라늄이 '고농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라늄 농축에는 가스 원심분리법, 레이저 농축법 등이 활용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레이저 분리장치를 이용한 레이저 농축법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농축 기술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핵폭탄 원료가 되는 우라늄235의 농축기술 확보에 성공했으며, 이에 따라 마음만 먹으면 유사시에 핵무기 생산에 돌입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 북한 핵문제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은 파키스탄에서 도입된 가스 원심분리법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방법은 미국, 일본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과기부는 "실험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IAEA도 안전조처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학자들이 실험 직후 관련 장비를 모두 폐기했기 때문에 공동선언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핵보유국들의 따가운 시선이나, 비핵보유국인 일본의 예민한 반응을 볼 때 이번 사태가 쉽게 진화될지는 미지수다.
또한 지난 1991년 남북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남북이 재처리 및 농축 시설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앞으로 열린 6자회담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한은 현재 플루토늄 추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우라늄 농축에 대해선 강력히 이를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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