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감염자로 진단받은 20명의 혈우병 환자 가운데 일부가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지금까지 보건당국과 제조업체는 관련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해왔다.
***정부,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AIDS 감염 가능성 있다"**
의ㆍ약계 전문가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 등 15명으로 구성된 '혈액제제 AIDS 감염 조사 위원회'는 1일 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90~1993년 기간에 혈우병 환자에게 발생한 AIDS 감염에 대한 역학적, 분자생물학적 연구 조사를 한 결과, 일부 혈우병 환자에서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해 감염됐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국내 혈액응고제제를 통한 감염 가능성 의심의 이유로 ▲감염자 5명이 감염 추정 기간중 국내 혈액응고제제 이외의 다른 외국산 혈액응고제제나 수혈을 받은 기록이 없으며, ▲투여된 혈액응고제제에 대한 환자-대조군 연구에서 1990년에 투여 된 국내 혈액응고제제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시 해당 혈액응고제제가 없어 바이러스 증명이 불가능한데다, 개인이 혈액응고제제를 구입, 자가 투여해 의무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의무 기록이 아예 파기된 경우, 의무 기록상 처방 상품명이 불명확한 경우 등 조사에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오대규 질병관리본부장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논란 끝에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표현을 채택했다"며 "'가능성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등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혈우병 환자, "AIDS뿐만 아니라 C형감염 등으로 확대 조사해야"**
그동안 혈우병 환우회 등 환자 단체에서는 "1990년대 이후 혈우병 환자가 혈액응고제제 때문에 C형간염 및 AIDS에 감염된 정황이 많다"고 의혹을 제기해 왔으나, 보건당국이 직접 그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은 "1989년부터 C형간염 및 AIDS 바이러스를 불활성화 처리하는 방법이 도입돼, 1990년대 이후에 혈우병 환자에 대한 혈액응고제제로 인한 오염은 사실상 없다"고 공식적으로 해명해왔다.
혈우병 환우회 한국코헴회 한재경 분과장은 1일 "현존하는 모든 기술이 100%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며 "이번 조사 결과도 결국 개연성만을 언급한 것이어서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 분과장은 "이번 조사에서 정부도 어느 정도 정황 증거를 인정한 만큼 AIDS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C형간염 등으로 확대해 좀더 명확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코엠회와 질환단체총연합회 등은 정부, 적십자사, 제약사 등을 상대로 C형간염 혈우병 환자 23명의 10억원 규모 집단 소송을 진행중이다.
한편 혈액응고제제를 생산하는 N사는 "새롭게 입증된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며 "혈우병 치료제와 같은 혈액제제는 수혈과 전혀 다른 개념의 안전한 의약품이라며, 보건 당국까지 나서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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