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8일 국토교통부에 비적정 주거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권을 증진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구체적으로 △'주거사다리 지원사업' 공급물량 확대, △최저주거기준의 개정, △고시원 건축기준 마련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고시원 화재로 인한 사상사고가 이어지고, 여름철 폭염으로 생존과 건강을 위협받는 쪽방 등 거주민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진정이 인권위에 제기되는 등 열악한 주거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상황"이라고 이번 권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비적정 주거'는 주택법상 주택인지 아닌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다운 생활이 어려운 열악한 주거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에 따라 주택법상 주택에 속하지만 시설이 열악한 반지하, 옥탑방 등은 비적정 주거에 속할 가능성이 높고 주택법상 주택이외의 거처이지만 비교적 시설이 양호한 오피스텔 등은 비적정 주거에 속하지 않는다.
인권위는 "'비적정 주거'는 그 자체가 좁은 면적, 노후화된 건물, 열악한 환경과 위생 등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 건강권, 생명권,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기준 우리나라는 주거에 대한 최소기준인 최저주거기준(국토교통부 고시)에 미달하는 가구가 111만 가구에 달했다. 2018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자 4526명, 사망자 48명이 발생하고 그해 11월 종로 고시원 화재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열악한 주거 거주민의 재난취약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와 유엔 적정 주거 특별보고관은 각각 2017년과 지난해, 이러한 대한민국 주거 상황에 우려를 표시하고 정부에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최저주거기준·고시원' 개선 필요 권고
인권위는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이 비적정 주거 거주민이 적정한 주거로 이동할 수 있는 정책임에도 공급물량이 적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급물량 확보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치나 실행계획을 수립해야한다"고 밝혔다.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쪽방, 고시원 등의 거주민에게 기존주택을 매입해 임대하거나 전세임대 주택을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연도별 공급호수를 기존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주택 공급물량의 15% 범위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5% 이하에 불과하다.
또 인권위는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이 "면적기준이 낮게 책정되어 있고 주거의 품질에 해당하는 구조·성능·환경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주거의 적정성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주거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와 생활양식이 비슷한 일본과 비교했을 때 1인 가구의 최저주거기준은 우리나라는 14㎡에 불과한데 비해 일본은 25㎡, 4인 가구의 경우 우리나라는 43㎡, 일본은 50㎡로 나타났다.
최근 가장 크게 증가한 1인 가구 거처인 고시원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실질적으로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최소기준이 필요하다"며 "실별 면적기준이나 창문 설치기준, 공용시설 설치기준 등 현재의 열악한 고시원 시설을 개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미국·영국·호주 등 외국 여러 국가가 도시 발전 과정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숙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최소 침실 면적 기준, 위생·안전·소방시설 설치기준 등 다양한 시설기준을 마련했다"며 "인간다운 삶과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고시원 최소 설치기준을 마련해야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그러면서 "주거권은 생명권·건강권·사생활의 자유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다른 권리와 불가분하게 연계된 특수한 권리"라며 "국가는 적정하지 않은 주거에 거처하는 취약계층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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