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서의 농업농민?
지금까지 한국의 농업농민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 피해자로서의 측면이 강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와는 전혀 다르게 농업농민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라는 가해자로서의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 이전의 전통 농업은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농업이었다. 소똥은 메탄가스를 방출하는 혐기성 발효가 아니라 풀과 나무와 뒤섞여 호기성 발효를 통해 거름으로 다시 논밭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석유문명 사회로 진입하기 이전인 1960년대까지는 이런 자연순환 농업이 ‘관행농’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농업은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석유농업이 관행농이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사실은 석유이다. 우리는 석유를 먹고 살이 찌는 석유 인간인 셈이다.
논밭에 뿌려지는 농약과 비료는 화석연료로 만든 온실가스 배출원 그 자체이다.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농약과 비료를 주고 수확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는 데 모두 화석연료가 투입되는 기계를 사용한다. 곡물을 담는 포대도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가 아니라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이다.
식량생산과 소비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3%라고 계산하기도 한다.(IPCC 특별보고서 <기후변화와 토지>. 2019. 8.)
기후위기 해결자로서의 농업농민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이런 피해자-가해자 구도에 갇혀 논쟁이나 하고 있을 한가로운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는 기후위기의 적응과 극복은 전혀 모색될 수 없다.
오히려 앞으로 농민과 농업은 기후위기 해결자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사실 기존 근대 산업국가 체제의 전환을 강요한다.
뿌리깊은 발전과 개발의 패러다임을 확 뒤바꾸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는 지속불가능하며 인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제로 자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벼락보다도 더 센 충격과 발상의 전환을 강요한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농민은 사회와 국가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지금 농업농민은 우리 사회의 가장 천한 직업, 혼인조차 할 수 없는 가장 밑바닥 하층계급으로 전락해 버렸다.
기후위기는 이같은 농업농민 문제에 대해 농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촉구한다.
길거리가 아닌 바로 논밭으로 가야 생존의 길이 있다고 토끼몰이하듯 농민을 몰아간다. 당장 달라진 기후가 농작물 생산을 초토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에너지 투입의 하우스 농사는 그 에너지 비용 상승뿐만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때문에라도 규제가 불가피하고 지속불가능하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농업 농민에게 새로운 능동의 기후농업, 기후 농민운동의 개척자로서의 정체성을 요청한다.
기후농업은 식량위기의 해결사로서 소비자와 함께 당당하게 농민의 권리를 주장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인 것이다.
나아가 기후농업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해서 대규모로 새롭게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최고의 직업으로서의 농업농민 위상을 재정립해 나갈 수 있게 만든다.
한마디로 가족농 소농 중심의 자연순환농업, 기후 재생농업은 기후 비상사태 시대 청장년 귀농귀촌의 새로운 시대 흐름으로 거대한 전환을 주도할 수 있다.
농민 기본소득, 관료국가의 주권자 국가로의 전환 시금석
우리나라 농식품부의 약 5백 개에 이르는 개별 사업 예산은 거의 대부분 기업과 극소수 부농에게로 돌아간다.
일례로 농어촌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의 ‘중심지 활성화 사업’ 예산은 결국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토건 기업 돈벌이의 건축물 신축이나 개보수로 끝난다.
게다가 중심지 활성화 사업은 농식품부가 예산 집행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곧바로 농어촌공사에 위수탁을 준다.
농어촌공사가 사업 집행을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농어촌공사는 위수탁 수수료를 챙기고 곧바로 공모를 통해 사업 집행을 하는 컨설팅 기업을 선정해서 이들에게 사업의 전 과정을 위탁한다.
이런 식으로 16조가 넘는 농식품부 정부 예산은 그 상당 부분이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 컨설팅 기업과 직원들 먹여 살리는 데 쓰인다.
그리고 지구가열화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토건 사업으로 마무리되고 종친다. 기가 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미친 짓을 중단하고, 농식품부 예산을 전부 농민기본소득으로 돌리고, 농업정책을 가족농 소농 중심의 재생농업, 자연순환농업 중심으로 전환하면 수많은 청장년 일자리도 만들고 실업자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확 줄이는 일석 삼사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 관료조직을 헌법 제7조 그대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주권자 머슴 조직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의로운 농업농민의 전환
할 일이 없어지는 농식품부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없애면 어떡하느냐고, 그런 식의 농민 기본소득 주장은 관료들의 저항 때문에라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농업을 이 지경으로까지 망친 것은 농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극소수 고위 농피아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농업 관련 중앙부서와 산하단체에 포진한 농피아는 대학의 석유농업주의자 교수들과 결탁하고 몬산토(이제는 바이엘) 장학생부터 온갖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와 국내 농식품 대기업들과 유착, 막대한 국가 예산을 이들에게 몰아주면서 극소수 부농 기업농 육성에만 매달려 왔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는 석유메이저의 자금 지원으로 농약과 비료가 반드시 필요한 쌀 품종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국제쌀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 바로 1970년대 유신 통일벼였다.
박정희는 ‘녹색혁명’을 부르짖으며 농민에게 강제로 유신 통일벼 재배를 강요했다. 녹색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박정희 선글라스까지 끼던 이명박은 박정희의 충성스런 후계자임이 분명하다.
박정희와 농피아는 이같은 석유농업의 도입을 통해 오늘날 한국 농업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거점으로 만든 주범들이다.
한국 농업농민은 이들에 의한 석유중독의 경로의존성으로 결국 석유 관행농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농업지도사들의 경우 귀농귀촌자들에게 농업을 적극 권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규모화를 이룬 일부 대규모 기계화 부농들을 빼고 가격 등락 때문에 소농과 중농이 농사 지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 극소수 농피아 척결은 기후농업, 기후농민으로의 정의로운 전환에 선결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중하위 공무원들은 헌법 정신 그대로 국민들에게 충실하게 봉사하고, 공공의 머슴이란 정체성의 맥을 잇고 있는 공복들이다.
이들에게는 석유농업에서 기후농업으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촉진하고 농민기본수당을 실행하기 위한 조사연구에서부터 다양한 지원업무가 너무나 많이 새롭게 부과될 수 있을 것이다.
농민기본수당의 도입은 결코 대다수 공무원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후농업농민 세상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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