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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시대'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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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시대'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새책] '유전정보를 지키기 위한 한판 싸움'

'유전자 시대', '생명과학 시대'의 진정한 적은 누구일까? 이런 질문에 유전자 조작 작물(GMO)이나 인간 배아복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환경단체를 꼽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출간된 존 설스턴 등이 지은 『유전자 시대의 적들』(사이언스북스 펴냄)을 꼭 읽어봐야 한다.

존 설스턴(62)은 국제 컨소시엄으로 진행된 '인간 게놈(유전체) 프로젝트'의 영국 측 책임자이자, 200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생명과학자이다. 현대 생명과학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애초부터 우리 자신의 것인 유전 정보를 사유화하려는 기업과 이에 동조하는 과학자 집단과 정부"를 '유전자 시대의 적'들로 꼽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현재 어느 나라의 과학자든지 무료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분석 자료를 이용하고, 자신의 연구에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바로 그러한 자유를 잃을 뻔했던 경험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썼다. 도대체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과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전 정보 사유화하려는 세력과의 한판 싸움**

1990년 본격적으로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18개국 연구진과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만 해도 최종 목표는 "2005년까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해 그 결과물을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처음의 목표를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암과 같은 주요 질환과 관계된 유전 정보를 해명해 돈 방석에 앉을 수 있다고 달려드는 기업과 이들 회사와 연결된 일부 연구진들이었다. 이들은 태도를 돌변해 처음과 달리 자료 공개를 반대하며, 발견한 유전체에 대한 특허를 내고 진단과 치료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설스턴의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상업적인 회사는 임상과 윤리적인 면을 무시해 왔다. 이들은 의료비용의 상승을 부추길 테고, 결국 학문과 미래의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들은) 인류 보건에 미치는 장기적인 이익을 담보로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설스턴 등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1996년 2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던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북대서양 버뮤다에 모였다. 이 회의에서 이른바 '공유의 예절'이라는 문제가 본격 제기됐다. 그곳에 온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게놈 분석을 모두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해야만 했고, 함께 일을 진행하는 데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예절이 필요했다.

결국 그 회의 참석자들은 "인간 게놈 분석과 합성에 관한 각자의 연구 성과를 모두 공개하고 이를 연구자와 개발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의 '버뮤다 원칙'에 동의했다. 물론 이 원칙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대표들의 소속 국가 정부기관들이 '즉시 공개 규정'에 반대했다. 특히 많은 정부들은 미국을 신뢰하지 않았다. 미국이 무료로 공개하는 척만 하고 다른 쪽에서는 특허를 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규정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 미국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도 일본 등 다른 나라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당연한 모습이었다.

***인류 유전 정보 지키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

어렵게 '버뮤다 원칙'이 만들어졌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자들은 곧 그 근본을 흔드는 경쟁자와 상대하게 된다.

1998년 5월12일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자들은 충격과 분노, 실망에 빠졌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하다 의견 차이로 탈퇴한 미국의 연구자 크레이그 벤터가 기업의 지원을 받아 민간회사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해 인간 게놈 지도 제작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벤터는 "회사를 설립해 유전 관련 의학정보의 원천적 제공자가 되겠다"며 유전 정보를 독점해 장사를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 때부터 인류의 유전 정보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피 말리는 경쟁 끝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자들은 2000년 6월 벤터보다 초안을 먼저 발표하고, 2001년 2월12일 셀레라 제노믹스와 공동으로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 등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간 유전체지도를 완성했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후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최종 완성됐다.)

존 설스턴은 기자 회견 당시 다음과 같은 약속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이 데이터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게놈 그 자체에는 특허를 내서도 안 되고 면허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또 어떤 서류에도 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뿐입니다."

***현대 과학의 '추악한 현실' 적나라하게 드러나**

과학 저술가인 조지나 페리의 도움을 받아 1인칭 시점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지나온 과정을 회상하고 있는 이 책은 역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제임스 왓슨이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과 DNA 구조를 발견한 과정을 회고한 『이중나선』(전파과학사 펴냄)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미 『이중나선』을 읽은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40여년이 지나면서 과학 활동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했는지,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더 추악해졌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자들이 벤터의 셀레라 제노믹스와 경쟁하면서 결국 '공동 발표'라는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과학자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정치가까지 엮인 암투에 가깝다. 『이중나선』에 나온 과학자들이 보여준 진리 추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경쟁'하는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존 설스턴은 이런 현대 과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진단을 내놓는다. 소위 '스타 과학자'들과 '공공성'에 대한 고려 없이 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는 정부 또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된 기업들만 가득한 우리나라도 결코 이런 비판에 자유롭지 않다.

"지난 세기에는 과학과 인간성 사이에 균열이 있었다. 더 이상 과학을 문화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자세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주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발견한 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개발과 탐구가 단기 이윤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4반세기의 이익을 위해 개인, 기업과 국가가 광적으로 성급하게 서로 경쟁하도록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존 설스턴은 연구와 별도로 제3세계 주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필수 의약품에 대한 다국적기업의 지적 소유권 남용을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특허권의 남용과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전자 시대'에 우리는 '우리 공동의 나선(The Common Thread, 이 책의 원제)'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개인 소유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공공의 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꼭 기업을 통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국가도 역시 그렇다. 과학자는 과거에는 스스로를 전 세계적인 NGO의 일원으로 간주했으나, 지금은 과학적 기여가 이윤 추구 활동과 엮이면서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탐욕 때문에 우리 자신의 코드인 인간 게놈을 거의 사유화할 뻔했으며 그렇게 될 위협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산, 바로 '인류 공동의 나선'을 지키는 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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