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산하기관의 노사 관계에 지난 2002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개입해 온 증거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산자부는 노사 관계 개입의 근거라고 주장해온 기획예산처 '경역혁신 추진지침'을 입맛대로 취사선택해 정작 산하기관 혁신에 필요한 부분은 도외시하고 '노조 죽이기'에만 치중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산자부, 산하기관 노사관계에 지속적 개입 의혹**
산자부가 산하기관 노사 관계에 지난 2002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개입해왔다는 정황 증거들이 추가로 드러났다.
산자부는 본지 29일자 '산업자원부가 도리어 노사갈등 부추겨'라는 기사가 나간 직후, 애초 답변에서 말을 바꿔 "산자부는 산하기관 노사 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한 적이 없으며, 노조탄압은 말도 안 된다"고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다. 이번에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그런 항변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녹취록 등에 따르면, 산자부는 관련부서 실장, 서기관 등이 2002년 하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산하기관을 방문해 단체 협약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등 사실상 노사 관계에 개입해왔다. 특히 '예산 축소'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단체 협약의 개정을 요구한 정황 증거도 포착됐다.
2003년 4월 당시 산자부 기술개발과장과 서기관 등은 산자부 산하 I기관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노사 간 단체 협약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기술개발과장은 "8천억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기밀을 요하는 것도 있을 텐데,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도록 단협 조항이 돼 있다", "단체 협약을 좀 조정을 해서 외부에서 신뢰성을 가질 수 있도록,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자", "경영자의 권한을 다 발휘할 수 없는 형태로 단협이 돼 있고..." 등 단체 협약의 문제점을 직접 거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배석했던 서기관도 "노조 단협을 보았는데 단협이 좀 심하다", "단협도 기본적으로 변화해야 맞지 않느냐 이런 게 (산자부의) 기본적인 시각" 등의 얘기를 하면서 "예산이랄까 조직이랄까 이런 것들을 깎거나 줄이려고 이러는 게 아니고, 불합리하게 된 것들을 합리적으로 만들자는 차원에서 조치를 한 것"이라고 산하 기관에 대한 '예산 축소'의 이유가 단협 개정에 있음을 명백히 했다. 당시 I기관은 전체 기관 예산은 늘었으면서도 산자부에서 인건비를 낮게 책정해 사측에서 "(산자부 압력 때문에) 단협을 개정해야 한다"고 노조를 압박하던 상황이었다.
이것은 I기관 뿐만이 아니다. 산자부 산하 K기관도 2004년 3월16일 산자부 담당자가 연구원 노무담당자에게 전화해 "산자부의 기본적인 틀이 있고 K기관도 산하기관이니 산자부의 틀에 알아서 맞추어 들어와야 되지 않는가"라고 통보한 사실이 확인됐다.
며칠 뒤 K기관 경영진은 "금번 단체 협약 안은 산자부에 우리 연구원의 실상을 보고한 결과로 나온 안이며, 노조에서 사측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산자부 관계자와 협의해서 나온 안이므로 문구 수정조차도 불가하다"고 통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조 파괴된 산하기관, 부도덕의 극치**
한편 산자부는 여러 차례 이런 노사 관계 개입의 근거로 '공기업 혁신'을 말하며 기획예산처의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그 근거로 들어왔다.
실제로 산자부가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실에 제출한 '산자부 산하기관에 대한 경영혁신 요구내용' 문서에는 "산하기관장은 단체협약의 개선을 해당 노조와 협의ㆍ추진해야 하며, 그 세부 내용으로는 기관장의 인사ㆍ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제약, 근무시간중의 유급 조합활동, 과도한 노조 전임자, 과다한 휴가 및 복리수준"이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프레시안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기획예산처의 <04년도 공기업ㆍ산하기관 경영혁신 추진지침>에는 산자부가 제시한 것과 같은 '단체협약 개선'과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기획예산처 지침을 산자부가 자체 판단해 "산하기관 경영 혁신을 위해 단체 협약을 바꿔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산자부 지침대로 단체 협약이 바뀌고, 그 결과 노조가 파괴된 산하 기관의 현실은 어떨까? 한 마디로 '부도덕의 극치'이다. I기관의 경우 애초 1백여명의 노조원 중 80여명이 탈퇴해 사실상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다. 노조를 탈퇴한 직원들은 따로 5명으로 구성된 '근로자 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노사협의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내놓았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I기관의 노사협의회 개최 결과를 살펴보면 ▲1인당 3만원의 통신비용 보조, ▲아르바이트생 충원, ▲체력 증진 확대, ▲직원 1인당 MP3 지급, ▲근로자 위원 사무 공간 확보, ▲노사협의회 운영사업비 예산 편성, ▲근로자위원회 업무 병행과 회의장 청소를 위한 아르바이트생 충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산상의 이유로 노조 핵심 관계자를 정리해고했던 경영진이 7월1일부터 주5일제를 시행하면서 없어지는 연ㆍ월차 수당을 2006년 6월분까지 소급해서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받아들인 사실이다. 즉 법 개정으로 없어지는 2005년도 연ㆍ월차 수당을 미리 정산해서 상여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게는 5백여만원(3년차)에서 많게는 1천여만원(9년차)이 넘는 상여금이 일시에 지급되는 셈이다.
산자부가 경영혁신의 장애물이라고 지적한 단체 협약이 바뀌고, 그 결과 노조가 무력화되자 경영진과 일부 노동자들이 야합해 구태의연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애초 기획예산처의 '경영 혁신 지침'은 산하기관의 이런 문제를 시정하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방노동위원회, "압력 꼭 명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편 이런 산자부의 산하기관 노사관계에 대한 개입에 대해서 노동 관련 기관들도 곱지 않은 시각이다.
현재 I기관은 노조 핵심 간부들에 대한 직위해제, 휴업, 해고, 부당 노동행위 등이 모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근거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일부 "근거 없다"는 판정을 받고 나머지 사안에 대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지노위나 중노위 결정은 알고 있다"며 "민사 소송이 진행중인데 법원의 판단이 나와야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사실상 중노위와 지노위의 결정을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서울 지방노동위원회 관계자는 2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산자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얘기하겠지만, 개입이 꼭 전화를 직접 걸어 압력을 행사하거나 문서를 보내는 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상급 기관에서 갑자기 인건비를 줄인다는 통보를 준다면 경영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상급 기관 입맛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노위 입장은 판정으로 말한다"며 "우리가 사측의 행위가 '근거없다'는 판정을 내린 것은 곧 '노동조합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판단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산자부의 행태에 곤욕스러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노동부 관계자도 2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산자부가 산하기관 노사관계에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할 수는 없다"며 "다만 기획예산처의 '경영 혁신 지침'은 말 그대로 법대로 따르라는 것이라며, 법에 명시된 사항을 산하기관이 준수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겠지만 단체 협약 개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 등은 글쎄......"라고 말을 흐렸다.
현재 산자부 산하기관 노조가 지부로 소속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은 7월 공공연맹 파업에 맞춰 대규모 파업을 진행할 상황이다. K기관 노조 관계자는 기자에게 "산자부 앞에서 분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바람직한 노사 관계의 모범을 보여할 정부가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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