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0년 경제정책의 방향을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9일 직접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내년 경제성장률 2.4% 달성 등 '경기반등 및 성장잠재력 제고'를 목표로 하는 방향을 발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삶과 생활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던 2019년을 마감하며 2020년에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소망이 담겨있길 바랬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첫 장부터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100여 쪽에 달하는 정책방향보고서에는 오직 딱 한 가지 원칙, 경제성장률을 2019년 보다 0.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정책 방향으로 정부는 지금까지 소득주도성장이나 공정경제보다는 '기업의 투자'를 가장 강조했다. 즉 정부는 2.4%성장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 주도형 성장을 전면에 내걸었고, 그 핵심은 민간(기업)·민자·공공 등 3대 분야에서 100조원의 투자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우선 그 중에서 정부가 1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 프로젝트를 신속히 지원한다는 대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대기오염물질 문제, 하수처리곤란 문제, 폐수 처리 곤란 문제 등 기후와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회색투자를 신규민간투자 우선 지원 대상에 올려놓고 규제를 풀어 전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투자세액공제 일몰 2년 연장 및 공제율 상향, 경제자유지역에 대한 외국인 규제특례 등 주로 대기업들에게 혜택이 갈 대규모 민간기업 세제지원 세트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민자 사업으로 열거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어지는 공공투자 부문에서는 더욱 공공연하게 회색뉴딜의 색조가 부각된다. 60조 원에 이르는 공공기관투자 계획에는 "공공주택, 철도, 고속도로, 항만, 등 SOC기반 확충, 발전소 건설 및 시설보강, 신재생에너지 투자"등을 중심으로 추진한다고 되어 있으나 중심은 어디까지나 재래식 회색 투자다. 반면 구색 맞추기로 들어간 녹색투자라고 해봐야 전기 승용차 기존 4만 2천대에서 6만 5천대 수준으로, 급속 충전소는 1200곳에서 1500곳으로 늘리고, 고작 수십억 수준의 2차 전지 연구개발이나 관련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정도다. 한마디로 정부는 확장재정에 기반해서 투자 주도형으로 2020년 한국경제를 끌고 가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재래식 건설투자 대대적인 활성화, 회색산업들 신규투자 조기허용, 국민부담 큰 민자 사업 활성화, 대기업투자위한 세제지원, 경제자유지역 규제특례 도입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을 뿐 녹색투자는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는 정도다.
과연 이런 경제정책으로 21세기가 세 번째로 맞는 새로운 10년의 첫 해인 2020년에 국민들의 삶이 나아질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지금 시기는 재래식의 토목건설이나 화석연료 의존형 투자, 회식뉴딜 대신에, 기후위기도 확실히 대처할 수 있고, 분배와 일자리 창출효과도 우수한 그린뉴딜에 투자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석탄발전 더 짓는 대신에, 이제부터는 정부의 면밀한 고려와 지역의 참여아래 태양이나 풍력 등 청정에너지 발전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핵심기술과 부품소재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연기관자동차 시대가 빠르게 사라져 갈 것을 대비해서, 화석연료가 필요 없는 전기 자동차등으로 빠른 전환을 시작하고 관련 산업을 다양하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종래의 에너지 비효율 건물과 건축을 또다시 대량으로 건설하기 보다는, 에너지 고효율 기술이 적용된 그린 리모델링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실시해야 한다.
이런 정책이 바로 지금 미국 민주당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되고 있는 '그린 뉴딜', 영국 노동당이 내걸었던 '녹색산업혁명', 그리고 유럽연합이 최근에 천명한 '유럽 그린 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경제사회개혁정책의 사례다. 그린 뉴딜은 2030년 탄소배출 절반 감소와 분배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매우 명시적 양대 목표를 내걸고, 10년이라는 집중적 전환 시점 안에 국가가 책임지고 자원과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고 하는 전 사회적 플랜이다. 또한 그린 뉴딜은 앞으로 10년간의 집중적인 자원재배치 전략이자.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통한 전 국민적 운동(nation wide mobilization)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그린뉴딜의 원동력은 기후위기와 분배위기에 대처하려는 시민들의 에너지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의 실천에서는 결정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그린투자를 통해서 연구개발 단계부터 경제 주체들에게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주어야 하고, 기존기업들이나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 위험도가 높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영역에 인내자본 성격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민간투자를 '유인'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그린뉴딜을 위한 새로운 전환을 시작해야 할 아주 중요한 시점인데, 정부가 막상 발표한 2020경제정책 방향은 전형적인 회색뉴딜이고, 21세기 뉴딜이 아니라 전형적인 20세기 뉴딜의 재판이었다. 이런 식의 성장은 기후위기나 미세먼지 문제와 곳곳에서 충돌을 빚을 것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며, 고용창출도 미미할 것이다. 지금은 관행적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되는 위기의 시대다. 그리고 위기는 늘 그렇듯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이제라고 생각을 전환하기를 기대한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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