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오래 전부터 "안보 정당"을 자임해왔다. 그러나 안보의 대상은 국가와 국민보다는 자신의 정당이었다.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앞세워 당리당략을 극대화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현상을 풍자하는 말이 있다. 'Wag the dog', 즉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이다.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主客顚倒)로 표현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대미 청탁'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발단은 11월 27일 YTN의 보도에서 비롯됐다. 나경원 원대대표가 미국 측 인사에게 "내년 국회의원 선거 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상회담의 취지도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총선 전 북미정상회담을 열지 말아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러자 나 대표는 "총선 전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을 뿐 자제를 요청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이 발언은 11월 방미 때 만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아니라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대북강경파였다. 특히 그는 "북미대화는 곧 붕괴될 것"이라며 협상무용론을 줄기차게 주장했었다. 이러한 볼턴의 대북관은 북미정상회담을 최대 외교업적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들면서 그의 경질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나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9월 말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안상수 의원 역시 비슷한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총선에 영향을 주는 북미회담 개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날짜가) 정해지는 게 아마 북미 회담 성공을 위해서도, 우리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도 도움 될 거다"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2018년 6월 12일 사상 최초로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다음날 열린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폭망'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자기도(해리스) '그런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는 것도 소개했다. 안 의원은 종전선언에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보수 정당과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안보 문제를 악용해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선거용 북풍을 일으키려고 했고, 야당 시절에는 정부의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이번 청탁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선거를 위해서라면 미국의 발목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처음이 아니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주한미국 대사의 대화를 기록한 미국 외교문서를 보면, 한나라당이 얼마나 정략적인 관점을 가지고 국가안보 문제에 접근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작권은 OK, 노무현은 NO!
200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전작권 전환 문제는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2006년 들어 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조속한 전환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발끈하고 나섰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를 삼단논법으로 정리해 맹공을 퍼부었다. '전작권 환수→남북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맹폭을 가하면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를 만나 전작권 전환에 합의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2006년 9월 6일 버시바우를 만난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레임 덕' 시기에 전작권 전환과 같은 중요한 안보 문제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인 대다수는 노무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진하 의원은 노무현의 의도가 "전작권 전환을 통해 미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라는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버시바우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다음 정부에서나 이뤄질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합의는 노무현 정부 때 이뤄져도 실제 전환은 다음 정부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작권 전환은 미국도 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전작권 공세는 계속되었고, 버시바우는 9월 26일 한나라당 의원들을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진 의원은 "한나라당은 전작권 이양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황진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전작권 전환 합의에 반대했다. 버시바우는 거듭 전작권 전환은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나라당은 전작권 전환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 업적이 노무현에게 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와 10월 9일 북한의 최초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전작권 전환 합의는 착착 진행되었다. 10월 20일에 열린 한미 연례 안보 회의(SCM)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09~2012년 사이에 마무리짓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10월 25일 한나라당 소속의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버시바우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상득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대선 유세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키려고 한다"며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이 한국의 반미감정 때문에 전작권 전환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 한국 정부가 들어서면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노무현 정부와 전작권 전환 합의를 하지 말아달라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들어주면 집권시 한미동맹 강화로 화답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버시바우는 "한국의 반미감정 때문에 전작권을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건강한 동맹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작권 전환 반대를 '반(反) 노무현'의 기치로 내세운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는 2006년 11월 8일 국회 연설에서 "전작권 이양 논의는 원천무효"라며 "차기 정부와 미국이 반드시 다시 협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를 2007년 대선공약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버시바우는 강재섭을 만나 설득을 시도했다.
버시바우는 한나라당의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한나라당은 전작권 전환 자체와 그 시점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이 전작권 전환 자체는 찬성하면서 그 시점은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이를 한국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혀 혼선을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강재섭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전작권 전환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을 주권 문제로 말하면서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정략적인, 너무나도 정략적인
이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나라당은 전작권 문제를 철저하게 '반(反) 노무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미국 대사를 만나 자국의 대통령을 험담하면서 전작권 전환 반대 논리를 펴려고 했다. 임기 1년 반을 남겨둔 대통령이 '레임 덕'에 있다거나 국민 대대수가 불신한다거나 노무현의 의도가 남북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노무현의 전작권 전환 의도는 '대선용'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같이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전작권 전환은 200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노무현 정부가 꺼내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2002년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한미간에는 2003년부터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대선용이 아니라 군사주권을 회복해 한국 안보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또한 노무현의 의도가 '전작권 환수→남북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에 있다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었다. 전작권 전환 자체가 노무현 정부 못지않게 부시 행정부가 원했던 것이다. 평화협정의 체결 주체도 남북미중 4자로 가자로 하자는 것이 6자회담의 합의 사항이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위해서 전작권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버시바우는 이러한 점들을 지속적으로 설명했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한나라당의 정신은 전작권 전환 합의가 2007년 대선에 미칠 유불리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 전환 합의가 이뤄지면, 이것이 노무현의 업적이 되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전작권 전환에 반대했던 것이다. 반대의 계산도 작용했다. 앞서 언급한 삼단논법을 극대화시켜 "반미" 노무현을 부각시키면,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해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한나라당의 씁쓸한 '반 노무현' 입장은 다른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10월 25일 사거리 1000km 순항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버시바우를 만난 이상득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왜 그랬을까?
동석한 전여옥 최고위원은 "노무현 정부의 발표가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가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해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여기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버시바우는 "한국의 순항 미사일 프로그램은 한국군 현대화의 일환"이자 "한국이 북한보다 기술적인 능력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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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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